• 10장 분열된 조국 (16)
     
     남한의 조선공산당은 1946년 5월 7일 이른바 정판사사건(精版社事件)을 일으켰는데 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사를 발행하던 권오직, 이관술이 조선정판사 사장 박낙종과 서무과장 송언필에게 지시하여 1300만원 상당의 위조지폐를 만든 사건이다.

    공산당은 그 돈을 활동자금과 남한 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사용할 작정이었다고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이 발표했다. 그것으로 공산당은 미군정당국으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기 시작한다.

    군정당국은 9월 7일 박헌영, 이강국, 이주하 등 공산당 간부 검거령을 내렸지만 박헌영과 이강국은 피신하여 체포되지 않았다. 그리고 10월 1일, 김구의 정보대로 대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수백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이철상이 말했다.
    「달성군수하고 직원 10여명은 공산당이 불을 질러서 불에 타 죽었다고 합니다.」

    공산당의 폭동이다. 물론 이런 폭동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군정당국의 무능 때문이다.

    북한에서 소련이 공산당 일당 체제로 일사분란하게 질서를 확보한 것과는 달리 미군정당국은 좌우익정치를 허용했다. 미국만 소련 눈치를 살핀 꼴이다. 그러다보니 정권을 쥐려는 좌익이 선동하고 기세를 올린 것이다.

    대구 폭동도 9월 24일의 전국 철도 파업에 성공한 공산당이 다시 대구에서 노동평의회를 시켜 철도동정파업을 하려다가 경찰과 충돌하여 폭동으로 번진 것이다.

    앞쪽 자리에 앉은 이철상이 나를 보았다. 이철상은 박헌영의 비서 출신이라 지금도 그쪽 정보는 빠르다.

    「박사님, 북한은 지난 8월에 연안파를 통합시켜 「북조선노동당」으로 단일화시켰습니다. 이로써 북한은 일당 독재체제로 굳혀졌습니다.」

    한달 전이다. 이철상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곧 남한에서도 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을 합당시켜 「남조선공산당」으로 통일시키려고 합니다.」
    「그럼 그 지도자는 박헌영이 되겠군?」
    「예, 박사님.」

    시선을 내린 이철상이 길게 숨을 뱉는다.
    「그러면 남북한은 「남노당,「북노당」의 두 공산당 세력이 기반을 굳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한반도는 공산당 국가가 되는 것이다.
    미군정당국이 뒤늦게 공산당을 억제한다고 해도 그렇다.

    보라. 전국에서 폭동과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좌우합작 기구로 정국을 운용하다니.

    내가 이철상에게 물었다.
    「이군, 자네는 박헌영의 비서였으니 잘 알 것이다. 한반도가 공산당으로 통일된 국가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이철상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저도 일년 전까지는 그것이 목표였습니다.」

    내 시선을 받은 이철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그런데 소련이 주장하는 노동자, 농민의 세상이 허상 같습니다. 특히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 볼수록 그렇습니다.」
    「자네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거야.」

    혼잣소리처럼 말한 내가 긴 숨을 뱉았다.
    「훗날 역사가 증명 해주겠지.」

    내 가슴에 다시 찬바람이 스치고 지나는 느낌이 들었다. 대세론(大勢論)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중이 원한다면 그것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 대중, 그 민족의 운(運)이다.

    그때 내가 머리를 들고 말했다.
    「끝까지 밀고 나갈테다. 그래서 민족이 나를 따른다면 그것도 내 민족의 운이 되겠지.」

    그것이 또한 지도자의 운이 될 것이다.
    신념이 있다면 길이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