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17)

     「김일성을 잘 아시오?」
    내가 물었더니 김구와 김규식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1946년 10월 중순경의 늦은 저녁, 둘이 내 거처로 찾아와 응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둘의 대답이 늦어서 내가 다시 물었다.
    「보신적이 있소?」
    「없습니다.」
    김구가 먼저 말했다.

    「저도 이름만 들었습니다.」
    하고 김규식이 대답했다.

    당시의 김일성의 본명이 김성주(金成柱)로써 1912년생으로 소개 되었는데 그러면 35세다. 그때 내 나이가 72세, 김구가 71세, 김규식이 66세였으니 셋의 아들뻘이다.

    그때 김구가 말했다.
    「중국 동북항일연대에서 활동하다가 보천보 전투에서 활약했다고 합니다.」
    「중국공산당원이라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김규식이 거들었다.

    중국군에 가담하거나 소련군 소속으로 항일 활동을 한 애국자가 많다. 김일성도 항일투사인가.

    머리를 든 내가 김구와 김규식을 번갈아 보았다.
    「고당(古堂)의 소식은 들으셨소?」
    「요즘은 듣지 못했습니다.」
    김규식이 말했고 김구가 머리를 끄덕였다.

    고당(古堂)이란 조만식을 말한다. 1883년생인 조만식은 당시에 64세가 되겠다. 메이지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1932년에는 조선일보 사장을 지낸 조만식은 북한 땅의 거목이다. 전혀 이름도 생소한 소련군 소령 김일성에 비하면 조만식은 북한 땅은 물론 전 조선민중에 굳게 뿌리를 내린 인물인 것이다.

    그 조만식이 해방 후에 북한에 조선민주당을 창당하여 당수가 되었는데 반공과 반탁을 주장했다가 결국 공산당에 의해 와해되었고 본인은 연락이 끊긴 것이다.

    내가 길게 숨을 뱉으며 말했다.
    「연금 상태라고 들었지만 나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소.」

    이것은 박기현을 통해 들은 정보다. 조만식은 간디의 무저항국민운동을 이상으로 삼았으니 폭력적 저항을 했을 리는 없다.

    그때 김규식이 말했다.
    「조선민주당은 부당수인 최용건이 접수했다고 들었습니다. 최용건은 김일성과 공산당 동지라고 하는군요.」
    「북한은 하루가 다르게 체제를 정비해가고 있는데 남한은 이렇게 되어있으니 큰일이오.」
    내가 본론을 꺼냈고 둘의 얼굴은 긴장 한 듯 굳어졌다.

    나는 지난 6월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연설을 한 후로 미군정당국은 물론이고 좌우합작을 지지하는 대중들로부터도 비난을 받고 있다.

    내가 말을 이었다.
    「군정당국의 시대착오적인 좌우합작위원회 주장과 미국무부의 친소정책은 결국 남한 땅까지 소련 위성국으로 만들고야 말 것이오.」

    좌우합작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규식이 쓴웃음을 지었으나 김구는 묵묵히 듣는다. 김구는 군정 당국으로부터 임정을 인정받지 못한 채 1년이 넘도록 투쟁해왔다.

    군정은 나와 김구가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결성하여 우익을 통합시키자 곧장 좌우합작위원회로 기세를 꺾었다. 내가 하지를 공산당 첩자라고 비난할 만 했다.

    길게 숨을 뱉은 내가 두 지도자를 보았다.
    「내가 미국에 가야겠소.」
    놀란 듯 둘이 눈을 크게 떴지만 입은 열지 않는다.
    「가서 의회 지도자들을 만나야겠소. 가능하다면 트루만도 만날거요.」

    이제는 그 방법밖에 없다. 미국은 의회 민주주의 국가다. 가서 부딪치리라. 그러나 고종 특사로 초대 루즈벨트를 만나러 갈 때보다 더 암담했고 절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