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20)

     놀란 스튜어트가 우두커니 나를 보았다.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누구인가? 일본 점령군 총사령관이며 육군 원수로 하지의 직속상관이기도 하다.

    1880년생이었으니 당시 67세.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에 1930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에 미육군참모총장을 지냈으며 1937년에 퇴역했다가 1941년에 복귀, 1944년에 미국에서 두 번째로 육군 원수에 오른 인물이다.

    당시 일본 점령군 총사령부 총사령관과의 통화는 하지도 쉽게 하지 못했으리라.
    윤병구가 전화로 군정의 교환원에게 한국의 이승만이 동경 총사령관 맥아더와의 전화를 신청했더니 놀랐는지 기다리라면서 끊었다.

    「이 전화도 진주군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되오?」
    「아마 그럴 것입니다.」
    「하지 장군이 국익에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통화가 안되겠군?」
    「그, 글쎄요.」
    「소련과의 우호에도 해가 된다면서 통화를 막을 수도 있지 않겠소?」
    「그런데 왜 원수 각하께 전화를 하시려는 것입니까?」
    「내 방미를 도와달라고 말할 작정이오.」

    쓴웃음을 지은 내가 말을 잇는다.
    「맥아더 원수가 허락하면 하지 장군도 부담이 덜어지지 않겠소? 책임을 맥아더 원수가 질 테니까 말이오.」

    「원수 각하를 잘 아십니까?」
    하고 스튜어트가 조심스럽게 물었으므로 내가 대답했다.
    「윌슨 대통령 시절에 몇 번 만났소.」

    윌슨이 프린스턴 총장 시절에 가난한 동양 유학생인 나를 아껴주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측근 관리들에게 내 이야기는 많이 해준 것 같았고 맥아더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우연히 만났을 때도 반가워했다.

    가끔 인간의 인연이 신의 배려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바로 맥아더와 나, 그리고 한국과의 인연이 그렇다.

    맥아더와 통화가 이뤄진 것은 스튜어트가 돌아간 지 세시간쯤이 지난 후였다. 그동안 스튜어트와 하지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통화를 막자니 겁이 났을 것 같다.

    「리, 왠일이십니까?」
    나보다 다섯 살 아래지만 맥아더는 나를 친구처럼 대한다.

    「장군, 부탁이 있소.」
    나는 대뜸 용건을 꺼냈다.
    「내가 미국에 가야겠는데 여기서 날 못가게 하는구려. 내가 반미 성향의 인사인데다 소련과의 우호관계에 해를 끼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거요.」

    맥아더는 듣기만 했고 나는 말을 이었다.
    「장군, 다 맞는 말이오. 이곳 미군 고위층과 나는 사이가 좋지 않고 그것이 반미가 되었소. 그리고 북한을 위성국으로 만든 소련을 비판하는 것도 사실이오. 하지만 내가 1941년 7월에 일본의 미국 침공을 예측했듯이 소련도 곧 미국의 적이 됩니다. 미 국무부는 오판하고 있는거요. 장군.」

    「국무부에 소련 스파이가 많아요. 리.」

    맥아더의 짧고 단호한 말에 나는 퍼뜩 정신이 났다. 아마 총사령관의 대화를 도청한 인간들이 있었다면 기절초풍을 했을 것이다.

    맥아더가 말을 이었다.
    「내가 하지한테 지시하지요, 리.」
    「장군, 고맙습니다.」
    「하지는 국무부 지시를 거부할 만한 입장이 아니오, 리.」
    「알고 있습니다.」
    「이 전화를 도청하는 놈이 있다면 장군이건 뭐건 다 영창에 넣겠소.」

    이것이 맥아더 스타일이다. 육군 원수까지 오른 위인이니 뭐가 두렵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