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21)
      
     다음 날, 돈암장을 방문한 김성수 등 한민당 간부들과 이야기를 마친 내가 대문 앞까지 배웅하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오후 8시 반쯤 되어서 주위는 어둡다.

    11월 하순이었지만 포근한 날씨여서 내가 옆으로 다가선 이철상에게 말했다.
    「작년 이맘때는 날씨가 추웠는데 올해는 좀 낫구나.」
    「북한은 춥습니다.」
    몇일 전에 다시 평양에 다녀온 이철상이 말했다.

    우리는 잠깐 어둠에 덮여진 마당 복판에 서 있었는데 이곳은 성북구 동소문동으로 조용한 지역이다.
    마당으로 어느 집에서 밥 짓는 구수한 냄새가 흘러들었고 아이 울음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그래서 내가 숨을 들이켰다가 뱉으면서 말했다.

    「조국에 돌아온지 이제 일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실감이 안나는구나.」
    「박사님, 저도 미국에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이철상이 갑자기 주저앉았으므로 나는 바라보기만 했다.
    주저앉았던 이철상이 다시 땅바닥에 비스듬하게 누웠는데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쥐었다.

    「이 사람아, 어디 아픈가?」
    하고 내가 허리를 굽혔을 때 옆에서 돌이 튀겨지는 소리가 났다.
    「이 사람아, 철상이!」

    내가 조금 목소리를 높였을 때 마루에 서있던 박기현이 뛰어 내려왔다.
    「박사님! 왜 그러십니까?」
    「철상이가.」

    그때 쓰러져있던 이철상이 안간힘을 쓰면서 소리쳤다.
    「박사님! 피하십시오! 제가 총에 맞은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박기현이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들더니 내 몸 위로 엎어졌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경비원! 경비원!」

    마당으로 경비원 둘이 달려들었고 넘어져있던 내가 박기현의 부축을 받아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루에 오르면서 내가 박기현에게 말했다.
    「안사람한테는 비밀로 해라.」
    아직 프란체스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다.

    응접실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더니 밖으로 나갔던 박기현이 가쁜 숨을 내쉬며 돌아왔다.
    「이철상은 복부를 총탄이 관통했습니다. 그래서 안윤택이가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손에 묻은 피를 헝겊으로 닦는 박기현의 두 눈이 충혈 되어 있었다.
    「암살대가 쏜 것입니다. 그리고,」
    박기현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목표는 박사님입니다. 빗나가서 옆에 있던 이철상을 맞춘 것입니다.」

    나도 짐작하고 있었으므로 박기현만 보았다.
    돌이 튀겨지던 소리는 총탄이 날아가 옆쪽 정원석을 맞춘 것이리라.

    이윽고 내가 물었다.
    「누가 한 짓 같으냐?」
    「군정 당국입니다.」
    자르듯 말했던 박기현이 길게 숨을 뱉는다.
    「공산당일수도 있습니다.」

    이제 공산당은 나를 가장 큰 적으로 매도하고 있다. 공산당의 암살대상 1순위가 이승만이라는 것이다.

    박기현이 말을 이었다.
    「둘 다 상대편의 짓이라고 떠넘길 수가 있을 테니 박사님은 가장 위험한 상황입니다.」

    국무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군정당국이 내가 미국에 가기 전에 이곳에서 암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비밀로 해라. 알려져서 좋을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