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23)

     내가 워싱턴의 칼튼 호텔에 여장을 풀었을 때는 1946년 12월 7일이다.
    전에는 한달 반 쯤 걸려야 한국에서 이곳까지 왔지만 지금은 사흘 걸렸다. 비행기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국무부 관리들의 태도는 비이성적이요.」
    그날 저녁, 내 방에는 미국 친지들과 동지들이 모였는데 굿펠로 대령이 말했다.

    굿펠로(Goodfellow)는 내 충실한 협력자다. 한국에 있을 때는 대령으로 예편 될 때까지 하지와 나 사이의 연락과 자문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 이제는 내 후원자를 자임한 것이다.

    굿펠로가 말을 이었다.
    「박사님에 대한 적대감이 굉장해요. 도무지 내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요.」

    얼굴이 상기된 굿펠로가 둘러앉은 동지들을 보았다.
    「내가 지인한테서 들었는데 아놀드(A·V·Arnold) 군정장관은 박사가 강력한 지도력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했답니다. 그리고 하지는,」

    숨을 고른 굿펠로가 말을 이었다.
    「박사가 비현실적인 주장만 늘어놓는 골칫덩어리라고 보고 했다는군요.」

    「그놈들이라면 그럴 만합니다.」
    임병직이 말했고 옆에 앉은 임영신이 머리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무능과 무식을 박사님에 대한 비난으로 감추려는 수작이예요.」

    머리를 든 내가 모두를 둘러보았다.
    「번즈 장관을 만나야겠는데 대답은 듣지 못했지?」
    「못했습니다.」
    면담 신청을 했던 내 정치고문 로버트 올리버(Robert T. Oliver)가 대답했다.

    올리버가 말을 잇는다.
    「면담에 응해줄 것 같지가 않습니다.」

    국무부가 나를 원수 보듯이 했지만 나는 한국에서 작성한 건의서를 전달할 계획이었다.
    건의서에는 한반도가 공산화 되면 한국과 중국에 이어 동북아시아 전체가 공산화 될 것이며 일본 만으로는 방어하기 힘들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공산당 지배를 받도록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니 한반도에는 내전이 일어나 혼란 상태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따라서 미국은 대소 유화정책을 폐기 시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대소 유화론자는 소련의 첩자일 가능성이 많으며 곧 매국노나 같다. 그렇게 썼으니 대소 유화론자 번즈가 본다면 기절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탁자 위에 놓인 건의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자, 내일부터 이걸 의회 위원들, 언론사에 배포하자구. 의원들과 약속시간을 접하고 언론사 인터뷰도 마련해요.」

    나는 워싱턴 생리에 익숙하다. 어지간한 미의회 의원보다도 낫다고 자부한다.
    미국은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다. 의원은 곧 국민의 대리인이며 대변자다. 그 잘난 국무부 관리들도 의원 청문회에 불려나오면 사시나무처럼 떠는 것이다.

    「아서 반덴버그, 윌리엄 놀랜드, 로버트 태프트 의원과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올리버가 말했고 굿펠로가 거들었다.
    「스타크먼 의원도 약속 했습니다.」

    그리고 우호적인 기자들을 모아야 한다. 언론은 여론을 만드는 중요한 도구인 것이다.

    그때 방 안으로 박기현이 들어섰다. 얼굴이 굳어져 있었으므로 내가 영어로 물었다. 미국인 동지들에 대한 배려였고 방 안의 모든 한국인은 영어에 능통하다.
    「무슨 일인가?」

    그러자 박기현이 어깨를 솟구쳤다가 내리면서 말했다.
    「어제 조선독립당이란 단체에서 국무부와 의회, 백악관과 각 언론사 앞으로 이승만이 한국의 어떤 대표권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전보가 왔다고 합니다.」

    또 왔구나. 나는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