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26)

    「바꿔야 합니다.」
    내가 소리치 듯 말하자 기자 회견장은 잠깐 정적에 덮여졌다.
    칼튼 호텔의 소연회장을 빌어 기자회견장을 만들었는데 예상보다 더 모였다.
    워싱턴은 미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세계 질서가 잡혀지고 국가가 분할되기도 하는 것이다.

    워싱턴이 각 국가의 치열한 로비 전쟁터라는 사실을 그 당시의 한국인 중 누가 실감하고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 로비 방법을 터득하고 정관계 인사들과 인연을 맺고 있는 한국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되었겠는가?

    내가 미국으로 가겠다니까 이승만이 또 실패할 외교를 하려는 모양이라면서 비아냥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들었다.

    나는 다시 말했다.
    「미국은 소련의 위협에 대비해야 합니다! 지난 1941년 12월 7일의 일본 진주만 침공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서 나는 탁자위에 놓인 책을 들어 흔들었다.

    내가 1941년 7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기 넉달 전에 쓴 ‘Japan Inside Out(일본내막기)’이다.
    나는 그 책에서 일본이 곧 미국을 침공할 것이라고 썼다.
    그러자 이곳 사람들은 전쟁을 조장한다면서 비웃었는데 넉달 후에 그것이 사실이 되었고,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제 나는 다시 한번 예언을 하는 셈이다.
    카메라 플래시 섬광이 터지고 기자들이 열심히 적는다. 내가 다시 목청껏 소리쳤다.
    「미국은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이제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대결시대가 된 것입니다!
    한반도가 소련의 수중에 들어가면 아시아 대륙은 모조리 공산화가 될 것입니다!」

    회견장에는 의회 의원들도 몇 명 보였고 호텔 직원, 투숙객도 있었다.
    그 중 몇 명은 내 외침에 공감한 듯 머리도 끄덕여 주었지만 어디 내 터질 것 같은 가슴에 비할 수 있겠는가?

    머리를 돌린 나는 구석에 서 있는 임병직, 임영신, 박기현 그리고 서너명의 동포를 보았다.
    임영신과 동포 몇 명은 제각기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회견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 왔더니 로버트 올리버가 따라와 말했다.
    「번즈가 신문사 쪽에다 기사를 내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미리 의원들 한테 부탁을 했어. 신문사에 국무부 압력을 막아 달라고 말일세.」

    목이 아팠으므로 나는 냉수를 따라 갈증이 난 사람처럼 다 마셨다.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박기현이 낯 선 백인 한 명과 함께 들어었다.

    「박사님, 국무부 직원이라고 하는데요, 여쭤 볼 말씀이 있답니다.」
    영어로 말한 박기현이 곧 한국어로 낮게 말을 잇는다.
    「제가 신분을 확인했습니다. 국무부 차관보실 소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담 크림슨입니다.」
    「크림슨씨, 이승만입니다.」
    인사를 마친 우리가 소파에 마주보고 앉았을 때 크림슨이 정색하고 묻는다.
    「한국의 정세는 어떻습니까? 특히 북한쪽 말씀입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이렇게 물어준 국무부 관리는 처음이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회견때 소리 친 목이 아팠지만 나는 북한이 어떻게 소련에 의해 적화되어 있는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비록 크림슨이 말단 관리라도 상관없다.
    내가 정성을 다해 이야기를 했더니 크림슨도 정색하고 경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