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28)

    「희망이 있군.」
    번즈의 사임 기사를 보면서 내가 말했더니 굿펠로가 쓴 웃음을 지었다.
    「박사님은 조그만 일에도 희망을 찾아 내시는 군요.」
    「한국 속담에 손가락 한 개만한 틈 때문에 제방이 무너진다고 했소.」

    「국무부에는 아직도 대소 유화론자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정색한 굿펠로가 말을 잇는다.
    「한국에 하지가 버티고 있습니다. 박사님의 앞길은 아직도 험난합니다.」
    방안에 모인 동지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덮여졌다.

    번즈의 후임으로는 마셜이 거론되고 있다.

    그때 방안으로 박기현이 들어섰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다.
    박기현이 앞에 서서 말했다.
    「박사님, 김 주석이 한국 전역에서 모인 국민대표자회의를 소집하려고 합니다.」
    나는 눈만 크게 떴고 박기현의 말이 이어졌다.
    「대표자는 2천명 정도가 될 것 같은데 그들에게 대표자 의장을 선출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모두 박기현의 입만 보았으므로 방안은 잠깐 무거운 정적에 덮여졌다.
    난데 없는 일이다.
    내가 미국에 와 있는 동안 한국정세는 여전히 불안정했으며 혼란했다.
    곳곳에서 폭동과 소요가 그치지 않았으므로 김구도 특단의 조치를 내었으리라.

    그런데 왜 하필 내가 밖에 나가 있는동안 나한체 상의도 없이 그러는가?

    내가 입을 열었다.
    「대표자회의 소집하는 목적이 무어라고 하던가?」
    「대표자회의를 임시정부로 승인하도록 요구하면서 반탁의 중심역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박기현이 대답하지 모두 서로의 얼굴을 본다.
    그러면 대표자회의 의장이 곧 임시정부 주석이 된다.

    아직도 김구는 임정 주석의 신분이었지만 남한 전역의 대표자가 모인 자리에서 의장이 되면 명실상부한 주석이 될 것이다. 내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라도 단독정부가 세워진다면 오죽 좋겠는가?」

    「이럴 수는 없습니다.」
    갑자기 소리치듯 말한 것은 임병직이다. 눈을 치켜뜬 임병직이 아직도 손에 쥐고 있던 탄원서를 탁자 위에 내동댕이 쳤다. 소련의 야욕을 경계해야 된다는 장문의 탄원서다.
    나와 임벽징, 임영신, 로버트 올리버, 굿펠로까지 이곳에서 며칠 밤을 새워 작성해 놓은 것이다.

    그때 임영신이 이어서 소리쳤다.
    「이것이야 말로 정권욕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박사님이 외국에 나가 계신동안 갑자기 대표자회의를 소집하다니요?」

    나는 김구의 애국심, 의지, 그리고 독립에 대한 열망까지를 존경한다.
    김구는 내가 갖추지 못한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때 느낀 점이 있었다.
    그래서 방안의 동지들에게 말했다.
    「김주석이 시기를 잘못 택했어.」

    머리를 저은 내가 말을 이었다.
    「하지가 용납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말을 멈춘 개가 길게 숨을 뱉았다. 김구는 내 워싱턴 활동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나를 젖혀두고 대표자회의를 소집한 것 같다.

    나는 배신감 따위로 좌절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능력이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면 격렬해진다.
    동지들의 시선을 받은 내가 말을 이었다.
    「한국인들은, 아니, 적어도 남한 국민들은 나, 이승만을 지지하고 있어. 나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는 말이네.」
    내 말이 끝났어도 모두 조용했다. 우리는 지금 영어로 이야기 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모두 공감을 못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