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30)

    지금 생각해도 가소롭고 분하다.
    내가 귀국하지 못하도록, 그것이 안되면 가능한한 귀국을 늦추도록 미국무부는 물론 하지까지 온갖 수단을 다 쓰고 있었던 것이다.

    1947년 4월8일, 한 달여동안 출국하려고 투쟁한 끝에 민간여객기 노스웨스트 편으로 미네아폴리스를 떠나면서 나는 또 자만심으로 내 자신을 위로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을 탈출 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비행기는 너무도 쉽게 태평양을 건너 도쿄에 닿았다.
    도쿄에 도착했더니 맥아더 원수가 보낸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점령군 총사령부 총사령관실로 나를 데려 온 맥아더가 웃음 띈 얼굴로 말하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박사, 국민의 지지를 받는 자고 곧 승자요.」
    맥아더가 하지와 국무부의 방해공작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미국에 가서 알게 되었지만 하지는 직속 상관인 맥아더를 거치지 않고 미국무부와 소통하고 있었다. 전시(戰時)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점령지 관리에 관한 사항인 것이다.
    내가 나보다 다섯 살 연하인 68세의 노병(老兵)에게 말했다.

    「장군, 나는 지금 미국과 전쟁을 하고 있소.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습니까?」
    맥아더가 웃지도 않고 말을 잇는다.
    「박사가 모스크바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시오. 아마 진즉 실종처리 되었을 거요.」
    이것이 군인인 맥아더의 사고(思考)다.
    그리고 맞는 말이다. 나는 갖은 압력과 무시, 탄압을 받았지만 미국이었기 때문에 살아서 이곳까지 왔다.

    내 표정을 본 맥아더가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 때문에 맥아더는 내 앞에서 빈 파이프만 물고 있다.
    「박사, 한국은 나름대로 독립운동을 했다지만 수백만의 연합군, 수십만의 미군장병의 희생으로 해방이 되고 지금 독립국가가 되려는 거요.」
    맥아더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총사령관 집무실을 울렸다.
    「하지나 미국무부 입장에서 보면 남한의 거친 행동은 귀찮고 배신감까지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꺼요.」
    그건 안다. 미국에 있을 때 많이 들은 이야기다.
    제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민죽은 나설 자격이 없다는 말은 40년전에 시오도어 루즈벨트 한테서도 들었으니까. 그때 맥아더가 말을 잇는다.
    「박사, 하지가 아직 입국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 같소. 그들은...」
    맥아더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이번 5월에 국무장관 마셜과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와의 미-소 공동위원회가 열릴 텐데
    박사가 방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소.」
    당연한 일이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맥아더에게 말했다.
    「장군, 날 중국으로 보내 주실 수는 있지 않겠소?」
    맥아더의 시선을 받은 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장개석 총통한테 말이오.」
    「그렇군.」
    같은 웃음을 지은 맥아더가 머리를 끄덕였다.
    「장총통과 박사는 같은 배를 타고 계시지.」
    「부탁합니다. 장군.」

    맥아더는 웨스트 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로 1925년인 46세때 미 육군 최연소 육군소장이 되었고, 1930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에는 미 육군참모총장으로 최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그때 맥아더가 말했다. 내 의도를 알아챈 것이다.
    「좋습니다. 보내드리지요.」
    나는 중국을 통해 귀국할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