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➀

    장제스(蔣介石)는 1887년 생이니 1947년 당시에는 61세가 된다.
    나보다 12년 연하다. 자꾸 나하고 나이를 비교하여 기술(記述)하는 것은 내 연상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내 나이를 알려주려는 뜻이다.

    그렇다. 나는 73세다. 참 잘도 오래 견디어 왔다.

    「박사님, 오랫동안 존경해 온 박사님을 뵈오니 기쁘기 한량이 없습니다.」
    나를 만난 장제스가 정색을 하고 말했는데 비록 중국어였지만 조선어 통역의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그 표정만으로도 진심을 읽을 수 있겠더라.

    이곳은 상해, 장제스가 부인인 그 유명한 송메이링과 함께 나를 만나려고 한구(漢口)로부터 찾아 온 것이다. 내가 장제스의 손을 잡고 진심을 담아서 화답했다.
    「주석 각하, 부디 공산당을 몰아내고 대륙을 지키시오.」
    그만한 덕담이 어디 있겠는가?

    내 말을 들은 장제스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장제스는 이미 40세때인 1926년에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이 되어 그 1년전에 죽은 쑨원(孫文)을 계승했다. 1927년에 상해에서 혁명을 일으켜 공산당을 몰아내었고 1928년에 북경을 점령하고 남편의 국민당정부를 수립하여 국민정부 주석이 되었다.
    1937년부터는 국공(國共)합작으로 항일전쟁을 수행했는데, 중국 국민정부의 주석이며 국민당 총재, 군사위 주석에 육해공군 대원수를 맡은 중국 대륙의 지도자다.

    나는 앞에 앉은 대륙의 지도자 장제스를 보았다.
    장제스는 이제 다시 공산당과 결별하고 내전을 시작했는데 전황이 밝지만은 않다.
    장제스가 말한다.
    「박사님, 하지가 귀국을 방해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중국 국가주석 전용기를 빌려 드릴테니 그걸 타고 가시면 하지가 착륙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주석 각하.」

    해방된 제 나라도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여서 나는 부끄럽기도 했고 분하기도 했다.
    장제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그 다음이다.

    머리를 든 내가 장제스에게 말했다.
    「주석 각하, 부디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민주주주의 국가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박사님.」
    장제스가 다시 진심을 담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저는 공산당과 싸운 경험이 많습니다. 그들은 조직력이 강하고 민중을 현혹하는 재주가 뛰어납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노동자 농민의 세상은 다 허상이고 거짓말입니다. 인민을 기구처럼 부리는 공산독재 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열변을 토하는 대륙의 지도자 장제스를 바라보았다.
    중국도 일본에 대항시키기 위해서 미국은 국공합작을 지원했고 지금은 거대한 공산조직 세력에 밀린 장제스가 고전중이다.

    조그만 한반도 남쪽에 좌우연립정부를 세우려는 것과 닮지 않았는가?
    내가 손을 뻗쳐 장제스의 손을 두손으로 감싸 쥐었다.
    「주석각하의 건투를 빕니다. 우리, 대륙과 한반도에서 공산당 세력을 몰아내고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합시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장제스도 내 손을 마주 잡고 대답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박사님만을 지지합니다.」

    이 말의 의미가 깊다.
    김구의 중경 임시정부에 대한 최대 지원세력은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정부였던 것이다.

    장제스는 한국에서 공산당과 분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나에게 동지의식을 느꼈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내 성격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주관이 분명한 사람이다.
    공산당 통일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