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③

     

    「외출할 수 없습니다.」
    내 앞에 선 소령이 던지듯 말했을 때는 1947년 5월 초순, 내가 귀국한지 열흘쯤 되었을 때였다.
    돈암장의 응접실 안이다.

    나는 미군정청 연락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소령을 물끄러미 보았다.
    금발의 백인이다. 푸른 눈동자를 보니 영국계 같다. 20대 후반쯤 되었을까.
    아마 한국이란 나라는 이곳에 배치받기 전에는 듣지도 못 했겠지.
    응접실 안에는 지난 번 총에 맞았다가 퇴원한 이철상과 임벽직, 장기영도 와 있었다.

    「뭐라구?」
    하면서 화가 난 장기영이 이유를 물으려고 하는 것을 내가 손을 들어 저지하고는 소령을 보았다.
    「소령, 누구의 지시요?」
    「진주군 사령관의 지시입니다.」
    소령이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두 눈이 똑 바로 내 시선에 꽂혀 있었는데 마치 기(氣)싸움을 하는 것 같다. 정색한 내가 다시 물었다.

    「그 이유는?」
    「사회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혼란을 일으킨단 말인가?」
    「모릅니다. 나는 그렇게 지시를 받았을 뿐입니다.」
    소령의 거침없는 대답을 듣다못한 장기영이 버럭 소리쳤다.
    「그럼 네 사령관을 이리 오라고 해! 네 사령관이 직접 박사님한테 말하라고 하란 말이다!」

    「닥쳐!」
    소령이 눈을 치켜뜨며 맞받아 소리쳤다.
    두 손을 허리에 붙였는데 벨트에 찬 권총을 위협적으로 보이려는 자세다.
    아마 이런 장면도 예상하고 대비했으리라. 방에는 소령 혼자 들어왔지만 밖에는 부하 병사들이 있을 것이다. 소령의 목소리가 응접실을 울렸다.

    「이 시간부터 미스터 리는 돈암장 밖의 출입을 금지한다.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경비대장에게 허가를 받아야 하며 외부인 출입도 금지시킨다. 또한,」
    소령의 시선이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에 닿았다.
    「전화선도 차단한다. 전화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이것도 경비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연금된 것이다.
    아니, 돈암장이 감옥으로 바뀌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내가 소령을 향해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
    「이번 미-소 공동위원회를 방해할까봐 이러는 건가?」
    「나는 모릅니다.」
    차갑게 말을 자른 소령이 방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외부인은 한시간 안에 나가 주십시오.」
    「어디, 너희들 두고 보자.」
    이번에는 임병직이 소령에게 소리쳤다.
    「내가 장담컨대 국민들이 돈암장을 둘러싸고 너희들을 포로로 잡을 것이다. 이젠 미국 놈들도 우리들의 적이다!」

    「닥쳐!」
    소령이 다시 소리쳤을 때 장기영이 나에게 말했다.
    「박사님, 군중들을 몰고 오겠습니다. 박사님이 갇혀 계시다면 금방 수만명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러면 공산당이 바라는 세상이 되겠지.」
    내가 영어로 말을 잇는다. 소령이 들으라고 그런 것이다.
    「공산당이 기회를 놓칠 것 같은가? 미국 철수를 외치면서 내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킬 것이네. 그럼 미-소 공동위원회도 필요 없는 공산당 세상이 될 것일세.」

    그리고는 내가 머리를 돌려 소령을 보았다.
    「소령, 알겠는가? 미국은 지금도 소련에 끌려다니고 있어. 자꾸 악수(惡手)를 두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