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⑥

    돈암장으로 돌아오는 중에 나는 총성을 듣고 달려오는 경비대장 머빈 대위와 박기현 등을 만났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박기현이 소리쳐 물었으므로 나는 잠자코 뒤쪽만 가리켰다.
    부하들을 이끈 머빈이 바람처럼 그 쪽으로 달려갔다.

    박기현과 함께 돈암장으로 돌아 온 나에게 프란체스카가 겁에 질린 얼굴로 묻기에 오발 사고라고 했다.
    돈암장에서도 총성이 들린 것이다.

    응접실에 이철상까지 셋만 남았을 때 내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박기현이 대번에 말했다.
    「암살자가 마음을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동료를 쏘고 맞 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내 생각도 같다.
    뒤에서 울린 총성은 잭슨이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쏘았을 것이리라.

    잠시후에 굳어진 얼굴로 돌아 온 머빈이 나에게 물었다.
    「박사님, 습격자는 하나였습니까?」
    「그렇소.」
    심호흡을 한 내가 말을 이었다.
    「잭슨이 내 목숨을 구해주었소.」
    「놈이 먼저 쐈습니까?」
    「그런 것 같소.」
    「잭슨의 훈장을 신청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머빈이 몸을 돌렸다.

    현장에 다녀 온 고용인 김씨의 말을 들으면 잭슨과 조선인 사내는 각각 권총을 움켜쥐고 죽었는데 조선인은 소음기가 끼워져 있는 소련제 권총을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산당 놈들입니다.」
    박기현이 말했고 이철상이 거들었다.
    「암살자 둘 중 하나가 박사님을 구한 것입니다. 돌아가서는 경호원이 맞쏘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잭슨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20분 전까지만 해도 오스틴에 돌아가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날 꿈을 꾸던 20살짜리 청년이 지금은 시체가 되어있는 것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만리 타국에서 한국인 노인을 경호하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나쁜 놈들.」
    내가 낮게 말했지만 둘은 다 들었다.

    잠자코 시선을 내린 둘을 외면한채 내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암살과 테러로 대사를 이룬다는 놈들은 소인배다. 그렇게 이룬 것은 그렇게 망할 것이다.」
    나로서는 악담을 했지만 속이 풀리지가 않았다.
    날 살려준 그 암살범에 대한 감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잭슨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할애비 나이인 내가 죽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쯤 후인 1947년 7월19일, 여운형이 차를 타고 가다가 혜화동에서 암살을 당했다.
    암살자가 쏜 총에 맞은 것이다.
    몽양 여운형은 좌익이었지만 온건파에 속한다. 해방이 되자 여운형은 1945년 9월6일에 선포된 조선인민공화국 부조석이 되었는데 나를 주석으로 추대했다.
    1919년 상해임정의 의정원의원을 지낸 여운형은 독립투사이며 공산당의 원로였다.
    1886년생인 몽양은 해방은 제 눈으로 보고 혼란기인 1947년, 62세로 동포의 손에 죽었다.
    이 또한 분한 일이다.

    「고하(古下)가 죽고 나서부터 정국이 더 혼란스러워지더니 이제 몽양까지 당했으니 극단주의자들만 남았다.」
    아직도 연금상태였던 내가 돈암장 응접실에서 쥐어 짜내듯이 말했다.
    그 자리에는 장택상, 조병옥, 임영신에다 장기영 등이 모여 있었다.

    여운형은 극좌 극우 양쪽으로부터 배척을 당한 상태였던 것이다. 내 눈 앞에 해방되던 해 연말에 암살당한 고하 송진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의 신임을 받았던 송진우가 살아 있었다면 다른 정국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