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⑫

    1948년 1월22일, 소련 외무상 안드레이 그로미코는 유엔 선거감시위원단의 입북을 거부했다.
    소련은 본래 유엔 선거감시위원단의 구성부터 반대해 온 입장이었다.
    그 이유야 그럴 듯 했지만 이미 북한은 공산주의체제로 완전히 굳여져 있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다시 허물고 남북한 총선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남북한 대표자가 유엔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엔선거감시위원단을 인정할 수 없고 입북을 허용할 수 없다는 소련의 궤변을 믿는 자들은 공산당 뿐이었다.
    소련은 북한을 내어 줄 생각이 해방 전부터 없었으며 소련의 꼭두각시 김일성은 아무런 결정권도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애초 내가 말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운(運)이란 것이 따른다.
    남한 땅에서 남로당을 창설하고 북으로 올라간 박헌영이 그 명성과 조직력에도 불구하고 중국군과 소련군 부대를 전전한 나이 어린 김일성에게 권좌를 빼앗긴 것을 보면 분명히 인간에겐 운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 지도자 운에 의하여 국가가, 민족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나는 임병직한테서 소련의 입북거부 소식을 들었을 때 쓴 웃음만 지었다.
    나 뿐만 아니라 김구, 김규식도 다 소련이 그러리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소련의 거부선언 이후까지 그들이 남북한 총선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것은 지금, 바로 말하겠다.
    나를 견제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남한 단독 총선이 되면 내가 지도자가 되기 때문에 성사될 가망이 없는 남북한 동시 총선만 부르짖었다.
    북한의 지도자가 누구인가? 스탈린이다. 김일성이 아니다.
    스탈린이 북한을 총선에 내주겠는가? 안될 줄 알면서도 남한 단독 선거는 절대로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적(利敵)행위나 같다. 그 동안 남한에서 공산당의 테러와 폭동이 갈수록 대규모로 번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임병직이 잇사이로 말을 잇는다.
    「소련의 유엔 선거감시단 입북 거부로 남한정세는 더 혼란해졌습니다.」
    「북한은 어떤가?」
    내가 묻자 임병직이 시선을 들었다. 알면서 묻느냐는 표정이다.

    그렇다. 내가 일부터 물었다.
    북한은 평온하다. 그러나 지금도 하루에 수천명씩 피난민이 38선이남으로 내려온다.
    그들이 다 지주인가? 아니다. 못사는 백성들이 훨씬 더 많다.
    「북한에서 남한처럼 했다면 아마 다 죽었을 것입니다.」
    임병직이 쓴 웃음을 짓고 말했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이런 무질서, 난동, 이기주의 발호라면 차라리 소련식 압제가 나을지모르겠습니다.」
    「아니야.」
    머리를 저은 내가 정색했다.
    「지금 난동을 부리는 건 모두 공산주의자들이네. 국민들이 미국식 대의민주주의에 익숙해지면 저런 폭동은 일어나지 않네.」

    그때 응접실로 박기현이 들어섰다.
    「박사님,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이 연합하셨습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한 박기현이 앞쪽 자리에 앉더니 내 눈치를 보았다.
    「남북한 동시선거를 촉구하겠답니다.」
    그러자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 하지도 소련과 북한이 어떻게 해왔는지 알 테니까 두고 보자.」

    나와 김구는 조금 소원해진 것이 사실이다.
    좌우합작론자인 김규식은 젖혀두고 김구와 나는 우익의 기둥역할을 해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생각하지만 그 당시, 해방 직후의 그 격변기에 공산당과 끝까지 선명한 대결을 펼치면서 미군정을 때로는 이용하고, 때로는 미국 정계까지 움직여 남한 정세에 유리하게 해온 내가 김구보다는 대한민국에 득이 되는 인물이었다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