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⑰

    그렇다. 분단(分斷)되었다.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달도 안된 1948년 9월9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했다.

    미리 1년도 더 전에 다 갖춰놓고 온갖 핑계를 대며 남북한총선을 거부면서, 남한의 공산화를 시도하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바로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한 것이다. 이것이 공산당의 진면목이다.

    정정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남 핑계를 대면서 흉계를 꾸민다. 이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 됨으로써 가장 급하고 중요했던 과업이 해결될수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의거하여 역적과 반역자를 구분, 처단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혁명이 일어나 대한민국 헌법을 뒤엎는 정권이 세워지지 않는한 역적과 반역자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었다.

    우선 현재, 대한민국 전역에서 폭동과 암살을 일으키는 공산당 무리가 대한민국의 반역 세력이며 역적이 된다.

    지금까지 남한은 국호도, 헌법도 정하지 못한 무정부 상태였기 때문에 폭도들은 반역범으로 처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급한 일은 정국 안정이요.」
    1948년 9월 하순쯤 되었다. 국
    무회의에서 내가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다.

    이제 신생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었지만 나는 물론이고 국무위원 누구도 감회에 젖은 얼굴이 아니다. 한달 반쯤전에 정부수립이 된 신생 국가인 것이다.

    더구나 공산당의 무장 봉기는 더욱 치밀해졌고 대규모화 되어간다. 내가 내무장관 윤치영에게 물었다.

    「제주도는 어떻소?」
    「아무래도 계엄령을 선포해야 될 것 같습니다.」

    윤치영이 그늘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주도의 무장 좌익세력의 폭동은 심해져서 밤과 낮의 주인이 바꿔진다고 했다.

    낮에는 경찰과 군부대가 치안을 장악했다가 밤에는 무장 공비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나는 소리죽여 숨을 뱉았다.

    미군은 9월 15일부터 철수를 시작하고 있었으므로 도와줄 형편이 아니다.
    대한민국 경찰과 국군의 힘으로 막아야 한다.

    그때 국무총리겸 국방장관 이범석이 말했다.
    「반민특위에서 현재 경찰에 친일 분자가 많이 섞여있다면서 경찰부터 조사한다고 합니다」

    나는 잠자코 시선을 돌렸다.

    해방후부터 정부수립이 되었을때까지 3년동안 무정부상태였기 때문에 일제와 결탁했던 매국노, 친일 분자의 청산을 제대로 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국회는 지난 8월 5일, 정부 수립과 동시에 반민족 행위 처벌법에 대한 기초특별위원회 구성안을 제의하여 통과시켰고 9월22일에는 반민족행위 처벌법, 즉 반민법의 법률을 확정하여 공포했다.

    그러나 행정부는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은 정국 안정이며 곧 공산당폭동 진압이니만치 선후를 가리자는 입장이었다. 입법부의 의지대로 법률을 공포했지만 민생 현장을 맡은 행정부와는 입장 차이가 있다.

    그때 부통령 이시영이 말했다.
    「의원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으니 만치 입법부에서 완급을 조절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지난 7월 17일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이 제정된 후에 7월20일 국회에서 정,부통령 선거를 통해 대총령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198명 중에서 내가 180표, 김구가 13표, 안재홍이 2표, 그리고 서재필이 1표를 받았지만 미국 시민이라 무효표가 되었다. 그리고 곧 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이시영이 113표를 얻어 65표를 얻은 김구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것이 초대 정,부통령 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