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⑲

    내란과 같은 상황인데도 친일분자 청산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은 대통령인 내가 국론(國論)을 이끌지 못한 때문이다.

    책임이 나한테 있다. 이범석을 만난 다음날 내가 내무장관 윤치영에게 말했다.
    「장관, 전국 공무원에게 훈령을 만들어 보내시오.」

    긴장한 윤치영을 향해 내가 말을 이었다.
    「악질적인 독립운동 방해 세력외에는 친일 세력이란 존재하지 않다고 하시오.」

    윤치영이 잠자코 있는 것은 내 말이 미흡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중은 친일 매국노의 처단을 원하고 있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제의 부역자, 친일 행위자를 찾기 시작하면 결국 36년동안 외국에 나가 있던자만이 살아 남을거요, 36년동안 일제와 접촉 안해본 한국인은 없어, 나중에는 신사에 절 한번 했다는 죄로 잡아가게 될것이오.」

    내 목소리가 컸기 때문인지 경무대의 접견실 안은 조용해졌다.
    접견실 안에는 외무장관 장택상, 재무장과 김도연, 농림장관 조봉암까지 와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 내가 말을 이었다.

    「내가 친일파 청산을 미루는 이유가 친일파로부터 뇌물을 먹었다든지, 친일파와 비밀 청약을 맺었다는둥 소문이 무성한 모양인데 그 해명은 하지 않겠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테니까. 」

    그때 김도연의 시선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난 총선에서 한국민주당은 198명 의원중 29명을 당선시켜 12%의 의석율을 차지했다.

    예상했던것보다 낮은 결과였다. 그러나 한민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우익 정당이며 나를 지지했다. 민중들은 한민당에 악덕·지주계급이 포함되어 있는데다 친일 부역자가 다수 끼어들어 있다고 매도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중세의 마녀 사냥처럼 공포정치, 강압정치로 민중을 단속하며 한편으로 대리만족을 이끌어 줄수도 있을 것이다. 한민당은 내각제를 주장했다가 결국 내 주장에 따랐지만 그 댓가로 각료에 대거 포함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임명한 한민당 각료는 재무장관 김도연 한명 뿐이다.

    그때 외무장관 장택상이 말했다.

    「하지만 정국이 안정되고나면 악질적인 친일 분자는 꼭 잡아 처단하겠다고 말씀 하셔야 됩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내가 크게 머리를 끄덕이자 윤치영이 메모를 했다. 내가 말을 이었다.

    「반민특위는 철저하고도 공정하게 조사를 해야 될것이요.」

    이제 여수 순천까지 계엄이 선포된 준(凖)전시 상황인 것이다.
    각료들이 물러나갔을 때 방안으로 박기현이 들어섰다. 박기현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특별보좌관 역할을 한다. 그것은 비공식 직함으로 내 집사 역할과 비슷하다. 앞에 선 박기현이 정색하고 말했다.
    「각하, 민심이 나쁩니다. 공상당보다도 친일 역적이 먼저 처단해야 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시선만 주었고 박기현의 말이 이어졌다.
    「각하께서 이제 대통령이 되셨으니 공산당만 몰아내고 친일파들하고 남한을 들어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소문이 잘 먹히겠다.」
    내가 웃지도 않고 말했더니 박기현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렇다고 한민당쪽에서 각하를 고맙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지난 개각으로 각하께 배신 당했다면서 불만을 늘어놓은 상황입니다.」

    그러자 내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그래도 내가 나이먹은것만 빼고 지난 30년 동안보다는 지금 사정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