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21)

    김구는 대외적으로는 미·소 양국군이 철수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화론 이다. 전쟁은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핑계, 소심한 승세라고 말했다.

    이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이다. 「같은 민족끼리는 죽일 수 없다.」는 말은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좌익의 폭동과 테러로 하루에도 수십 명 씩 죽어나가는 마당에 이제 남한의 대통령이 되어있는 나를 비방하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내가 시선을 들어 김구를 보았다. 윤치영은 입을 꾹다문채 듣기만 한다.

    「아우님이 김일성이를 만났으니 양국의 수뇌를 놓고 판단 하실수가 있겠군. 그래, 김일성은 어떤 인물인가?」
    「제가 평양 온길에 고당(古堂)을 데리고 돌아가게 해달라고 했지요.」
    김구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고당이란 조만식이다.
    해방이 되었을 때 국민들은 조선 민주주의의 3대(大)거목으로 이승만과 김구, 조만식을 꼽았다고 했던가?

    그런데 그 조만식이 김일성에게 잡혀있다. 소문만 났고 몇 년째 보이지 않는다. 내 시선을 받은 김구가 말을 이었다.
    「그랬더니 김일성이가 그럽디다. 제가 무슨 권한이 있습니까? 소련군 당국의 허가가 있어야 됩니다, 합디다.」
    「고당이 소련군에 죄를 지었나?」
    「그래서 내가 당신 권한이 그것 뿐이오? 그래갖고 어디 자주(自主)정부라고 할수 있겠소? 하고 말았지요.」
    「김일성이 성품은 어떤 것 같나?」
    「말씀 드렸다시피 소련군 꼭두각시 올시다. 제 마음대로는 사람 하나 빼줄수 없는 인간이오.」

    나는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다.
    30여년 중국 땅 임정에서 활약했던 김구 마저도 김일성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해방후에 난데없이 나타났으니 독립운동가들은 물론이고 남북한 백성들도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이 소련군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은 책임 회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화제를 돌렸다.

    「아우님, 내가 미국 생활을 오래해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속성을 잘 아네, 그래서 남북한이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세.」

    김구는 앉은 키도 큰 거인(巨人)이다. 내가 부드러운 시선으로 김구를 보았다. 
    북한의 김일성을 중심으로한 지도체제는 확고하다. 인민군은 무장 상태나 병력에서 한국군의 두 배가 넘는다.

    이제 건국한지 1년도 안된 신생 대한민국은 제대로 국가 체제나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정색하고 김구에게 물었다.
    「아우님은 대한민국이 북한처럼 강대국의 위성국이 되리라고 생각 하시는가?」
    「형님은 김일성이하고 다르시지요.」

    소파에 등을 붙인 김구가 길게 숨을 뱉고나서 말을 잇는다.
    「하지만 미국의 영향력은 벗어나기가 힘들 것입니다.」

    김구는 미·소 양국에 치우치지 않는 민족 자결의 외교, 국가관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미국 위주의 사고에 젖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옆쪽에 앉은 윤치영에게 시선을 주면서 말했다.
    「오늘 내무장관도 아우님의 고견을 듣고 크게 깨달았을것 같네.」

    자리에서 일어선 내가 김구를 향해 웃어보였다.
    「나도 아우님의 진심을 듣고 많은 위안을 받고 돌아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