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22)

     해방전,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3개 애국세력이 존재했다.
    그것은 해외의 독립운동 세력, 국내의 독립운동 세력, 그리고 국내의 저항세력이다.

    국내의 저항세력은 살기 위해서는 어쩔수없이 일제에 현력하는「시늉」을 내지만 「애국」인사라고 나는 간주한다. 결정적인 시기가 왔을 때 이 저항 세력이 거대한 분출을 일으켜 대세를 만들어온 것이다.

    독립운동가 일부가 국내 저항세력을 무시, 또는 친일로 몰아붙인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잘못되었다.
    고하(古下) 송진우가 암살당하기 며칠전에 임정 요원들과 회식을 했을 때 신익회가 이런말을 했다.
    「국내에 있던 인사들은 크거나 작거나 다 친일 인사다.」

    그랬더니 장덕수가 소리쳤다고 한다.
    「그럼 난 숙청감인가?」

    신익회는 이른바 해외파 독립운동가이고 장덕수는 국내 저항세력으로 분류되겠다. 그때 송진우가 말했다고 들었다.

    「여보, 해공, 표현이 맞는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발 붙일곳도 없는 임정을 누가 오라고 했기에 그런 큰 소리가 나오는가? 중국에서 궁할 때 무엇을 해먹고 살았는지 여기서는 모르고 있는지 아는가?」

    송진우 또한 국내 저항인사다. 그런데 우연인지 송진우, 장덕수는 둘 다 대한민국 건국을 보지 못하고 암살을 당했다.

    나는 공공연히 말했지만 국내에서 부대끼며 견딘 저항세력이 독립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그들이 독립운동 자금을 대었으며 민중들에게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매개 역할을 했고 민중들의 삶도 개선시켰다. 그들이 없었다면 해외의 독립운동가들은 그저 집없는 개 꼴이 되었을 것이다.

    감히 누가 국내 저항 세력을 친일로 비판하는가?
    송진우 말을 비약하면 일제의 압박을 벗어난 해외에서 독립운동 한답시고 무위도식 하거나 허세나 부린 운동가들도 많을 것이다.

    더구나 그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으로 독립을 쟁취한것도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 독립운동가들의 기세로 보아 한국땅에서 살아남은 백성이 몇이나 될까? 신사 참배 했다고 처형 할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해외 독립운동가에 속한다. 죽을 고비도 몇 번 겪었고 나라 없는 수모, 돈 업는 수모 당한 것을 열거하면 끝도 없으니 말 않겠다.

    다만 해외에서 독립운동 할 때 나를 가장 절망 시킨 것은 같은 운동가의 모함과 음모였다. 파벌이 다르다고 국가 대사(大事)가 걸린 일을 깨부수면서 나를 공격했다.

    그래서 나는 친일파 색출이나 숙청 작업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싶었다. 누구는 친일파 숙청이 먼저고 그 다음이 국가 수립이라고 했지만 탁상공론이고 일고의 가치가 없는 발언이다.

    해방후의 남북의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내가「덮어놓고 뭉치자」고 한 것이 그런 맥락이다. 단칼에 두부 자르듯이 할 수가 있는 일인가? 이상주의 지도자는 국가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내가 지금 한민당 이야기를 하려고 그런다. 송진우, 장덕수가 다 한민당이다. 가장 고생을 많이한 국내의 저항 세력이다. 또한 해방후에 가장 먼저 민주주의 체제의 정치조직을 결성하여 나를 도와준 조직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연히 한민당은 내부 구성원에 친일 행적자가 포함되어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내가 한민당과 야합하여 친일 행적자를 두둔한다는 비난이 일어났다.

    그쯤은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친일분자가 섞여 있다고 해도 한민당은 대한민국 건국이념에 맞는 민주주의 이념의 정당이며 국내 저항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