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장 대한민국 ②

     나는 당파에 구속되지 않는다. 상해임정에 6개월간 머무는 동안 파벌에 싸여 고난을 겪은 후부터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다.

    그러나 지도자는 자신의 파벌만 싸안고 국정을 운영하면 안된다고 믿는다. 모두 내 경험에 의한 산물이다.
    그래서 건국 이후로 나는 수시로 각 당파의 응원을 받아 정책을 집행했다. 그것이 독촉, 한민당, 무소속, 대한청년단이나 국민회, 인민구락부 의원까지 다양하다.

    당파를 떠나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호응해 줘야 옳다. 나는 그것을 워싱턴에서 배웠다.
    대통령이 정책지지를 받으려고 반대당 위원들에게 로비를 하는 것을 보고는 과연 저것이 민주주의라고 감동했다. 주장이 다르다고 제꺽 제꺽 암살하면 쓰겠는가?

    내가 1949년 초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을 때 거의 전원의 의원이 찬성했다. 이견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대마도는 조선조 세종때인 1419년, 삼군도체찰사 이종무에 의하여 정벌되어 때 조선령이 되었던 땅이다.

    「이렇게 모든 의원의 동의를 얻으면 신이 나는 법이지.」
    내가 경무대에 찾아온 이기붕에게 말했더니 대답대신 길게 숨을 뱉는다. 이기붕은 이제 서울시장이다. 성품이 착실했고 부지런했으니 일을 잘 할것이라고 보았다.

    「각하, 한민당 세력이 개헌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를 하셔야 됩니다.」
    「그래야지.」

    말은 했지만 정황이 녹녹하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 한민당 세력이 개헌 준비를 하는동안 농지개혁법, 국가보안법, 그리고 반민특위문제까지 정리해야만 한다.

    그때 다시 이기붕이 말했다.
    「각하, 이제는 각하의 정책을 지원할 확실한 여당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확실한 여당.」

    내가 한마디씩 힘주어 말했다.
    「지금은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지금도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각하.」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견디었다. 대한민국은 신생국이다. 인간으로 치면 아직 아이나 같은 존재다.
    30년전인 1919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총회에서 나는 이미 이렇게 말했다.

    「우리 조선은 아직 교육받은 인재가 부족해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또한 권위를 분배하고 민주 정부의 책임을 질 인재도 부족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수립되고 나면 10년간은 강력하고 전체적인 중앙집권제 정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대통령이 되기 30년전에 했던 말이다.
    경제가 발전되려면 정치적 안정이 필수적이며 대통령제가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내각제는 국민이 성숙한 민주시민의 교양을 갖췄을 때 맞는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1945년 8월15일 해방을 얻고 나서 1948년 8월15일 건국이 되기까지의 3년은 온갖 사건이 다 어우러진 전장(戰場)속같은 나날이었다.
    좌와 우, 기득권자와 없는 자, 친일과 반일, 독립운동가도 제각각 파벌로 나뉘었으며 그것이 또 남북의 땅덩이로 갈라져있다.

    3천만 민중은 환호했지만 곧 그 전장의 안으로 내던져 졌다. 그렇다고 건국 후에 정국이 안정된 것도 아니다. 신생 대한민국은 그래서 여전히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