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장 대한민국 ③

    신성모는 윤치영의 뒤를 이어 2대 내무장관이 되고나서 1949년에는 국방장관을 맡았다. 그러나 신성모는 군인 출신이 아니다. 1891년생인 신성모는 당시 58세로 보성전문을 졸업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신채호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

    그러다가 난징 해양대학을 졸업한 후에 영국으로 건너가 1등 항해사 자격증을 획득하고나서 상선 선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래서 경무대 비서관들은 신성모를 마도로스 신이라고 불렀는데 별명이 잘 어울렸다.

    단단한 몸에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바다를 보는 뱃사람처럼 보인다. 국방장관 신성모가 중앙청의 내 집무실에 불려왔을 때는 1949년 8월 중순쯤 되었다. 나는 신성모가 소파 앞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본론을 꺼내었다.

    「장관, 국군 사기는 어떤가?」

    「좋습니다.」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신성모가 바로 대답했다.

    「명령만 내리시면 북진통일을 할 수 있습니다. 각하.」

    당시의 한국군은 10만명 수준으로 8개 사단과 2개 연대 규모였다. 북한국은 소련군의 전폭전인 지원을 받아 한국군의 두배가 넘는다.

    나는 화를 잘 내는 편이다. 그날도 신성모의 대답을 듣자마자 버럭 소리쳤다.

    「시끄러워!」

    놀란 신성모가 눈을 크게떴고 내 호통이 이어졌다.

    「내가 왜 선장인 자네를 국방장관 시킨 줄 알아? 광복군 출신도, 중국군도, 일본군 출신도 아니기 때문야! 그것은 객관적인 자세로 군을 평가하고 나한테 조언을 하라는 것이었어! 나한테 아부나 하라는 것이 아냐!」

    그러자 신성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닭의 똥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그 얼굴로 신성모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각하께 조금이라도 위안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만두게.」

    나는 눈물에 약하다. 나이 들어서 그런지 내 앞에서 우는 것을 보면 자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달래듯이 말하자 신성모는 눈물을 그쳤다.
    인재가 부족한 상황이다.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재를 기용 하는 것이 국정(國政)의 최우선 정책일것이니 그 결과는 후일 평가가 될 것이다.

    눈이 벌개진 신성모가 나간 후에 비서 윤근수가 시침이를 뗀 얼굴로 들어섰다. 신성모가 울고 나간 것이 한두번이 아닌터라 이제는 이야기거리도 안될 것이다.

    「각하, 해주에서 포목상을 하셨다는 박기순씨의 손자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누구?」

    내가 되물었더니 윤근수가 되풀이 하고나서 덧붙였다.

    「어머님이 꼭 옷감을 떠가지고 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을때도 찾아 오셨다던데요.」
    「아아.」

    내가 벌떡 일어섰더니 놀란 윤근수가 눈이 둥그레졌다. 겁을 먹은 얼굴이 된 것이 결례를 안했나 걱정이 된것 같다.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술독이 들어서 코끝이 붉었던 분, 아버지와 비슷한 연세로 박생원이라고 불리웠던가? 데려오라고 했더니 윤근수가 40대쯤의 사내와 함께 들어섰다.

    양복은 입었으니 남의 옷을 빌린 것 같고 눈동자의 초점이 멀다. 정신이 반쯤 나가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왜 찾아 왔는지.

    「자네가 박생원 손자인가?」

    하고 내가 물었더니 갑자기 사내는 털썩 방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큰 절을 한다. 하긴 바닥이 양탄자여서 방으로 착각할만 했다. 그것을 본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신성모를 탓할 것도 못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