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장 대한민국⑧

    신생국이니 제도에 익숙한 관료가 드물다.
    경찰과 군에서 어쩔 수 없이 채용했던 것처럼 일제 시절에 근무했던 사람들로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농지개혁과 함께 역점 과업으로 추진했던 것은 교육사업이다.
    하와이에 있을 때 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학교를 세우고 가르쳤던 나다. 해방이후 한국어 교과서를 제작하는 것에서부터 교사 양성과 학교 건설이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 되었다.

    일제시대에 총독부가 식민지 지배를 위해 가장 공을 들인 과업이 바로 교육사업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한국 역사와 문화를 부정하는 교육을 시킴으로써 아이들을 친일파로 개조했다.
    국방이 밖을 기키는 국가 사업이라면 교육은 안을 지키는 국가 사업이다. 내가 국민학교 교과서를 읽어 보았더니 교묘하게 위장되고 조작된 부분이 너무 많았다.

    1949년  국민학교 의무교육의 영향으로 교육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었지만, 교육계에 남아있던 친일파는 다 청산되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좌우익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터라 강력한 지도 체제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이것 보게, 장과, 교육계 인사의 친일 행적자는 분명히 가려내어야 하네.」
    1049년의 어느날 내가 교육부장관 안호상(安浩相)에게 말했다.
    「경찰과 군부에 남아있던 친일파 무리보다 그들이 더 악질이야」

    경찰과 군의 친일파는 거의 소탕되고 있었지만, 교육, 문화계는 뿌리가 더 깊었으며 은밀했다.
    드러난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몸 안의 병균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중앙청의 집무실 안이었다. 안소상이 머리를 들고 나를 보았다.
    「지난 4년동안 혼란기에 교육, 문화계에서 좌익 세력의 활동이 활발해졌습니다. 친일파를 가려내는 작업에만 열중하다가 좌익이 침투한 것입니다.」
    「가려내야지.」
    정색한 내가 안호상을 똑바로 보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이 누구인가? 북한 아닌가?」
    「그렇습니다.」
    「교육, 문화계에 좌익이 날뛰게 만드는 것은 반역에 공모하는 것이네, 곧 반역자 일당이나 같지.」
    내 입술이 떨렸으므로 나는 손끝으로 눌러야 했다.

    교육 문화계의 좌익 무리는 내란을 일으키는 좌익 폭도보다 더 교활하며 잔인하다.
    그들은 국가라는 몸의 내부를 갈기갈기 찢지만 뭇음띈 겉모습을 하고 손에는 펜을 쥐고 있다.

    안호상이 집무실을 나갔을 때 비서 윤호기가 다가와 나에게 묻는다.
    「각하, 양성남씨 손자라는 사람이 면회를 신청했습니다만,」
    「누구?」
    「양성남이라고 오산교회의 교인이었다는데 각하께서 YMCA 선교사업을 하실 때---」
    「아아.」
    기억이 난다. 30여년전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식민지가 되어있는 한국땅에 돌아왔을 때 만났었지, 그때 양성남의 안내로 사형당한 둑립군 정기군의 집을 찾아갔지 않았던가? 드때 윤호기가 말을 이었다.
    「확인해보니까 각하께서 그사람 조부를 만나신 것은 확실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들어오라고 해.」
    그러자 윤호기가 몸을 돌렸다. 나는 하루에 면회객 서너명은 꼭 만난다.
    대통령을 만나자고 멀리 시골에서 몇일간을 여행하여 온 사람도 있고 양성남 손자같은 인연도 있다. 민심을 듣기도 하고 어려운 사정을 풀어주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