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장 대한민국 ⑭ 

    「북한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내 앞쪽 자리에 앉은 이철상이 말했다. 한 때 박헌영의 비서였다. 이철상은 이제 대통령 특별 보좌관 신분이 되어있다.

    정색한 이철상이 들고 있던 서류를 읽는다.
    「북한은 올해 초 1949년 신년사에서 김일성이 ‘국토의 완정(完整)’과 조국의 통일을 위해 궐기하자’고 했습니다. 이것은 북한 체제하의 통일을 의미합니다.」

    나는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정부수립 만1년이 지나 1949년 말인 지금, 남한 주둔 미군은 고문단 600여명만 남겨놓고 철수했으며 미국무장관 에치슨의 극동방위선 축소방침도 발표만 남은 상황이다.

    남한은 이제 스탈린이나 김일성에게 무주공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머리를 들고 이철상을 보았다. 이철상은 38선을 넘어 평양에 다녀온 것이다. 평양에서 상황을 실제로 보고 듣고 온 이철상만큼 정확한 정보원이  있겠는가?
    「전쟁이 일어나면 안돼, 지금은 시기가 아니야. 아직 대한민국이 토대가 갖춰지지 않았다.」

    내가 한마디씩 낮게 말하고는 물었다.
    「김일성이가 남침할 것 같은가?」
    「지난 8월에 시티코프를 설득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시티코프는 북한 군정을 맡았다가 1949년 1월 12일에 북한주재 소련대사로 부임한 인물이다.

    이철상의 말이 이어졌다.
    「지난 3월 5일,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스탈린과 김일성 회담에서는 남침하겠다는 김일성에게 스탈린이 일단 말렸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첫째 북한 인민군이 남한군에 아직 압도적이지 못하고, 둘째 남한에는 아직 미군이 남아있으며 셋째로는 38선에 관한 미ㆍ소 협정이 유효하다는 이유를 대었다고 합니다.」

    서류에서 시선을 뗀 이철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차츰 분위기가 변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8월에 시티코프를 만나 강력하게 남침을 주장했고 스티코프도 찬성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는 것입니다.」
    「-----」
    「평양의 당 간부들도 스탈린도 찬성하리라고 합니다.」

    나는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하반기에 들어서 주변 분위기는 더 나빠졌다.
    미군은 6월29일 철수를 완료했으며 소련은 8월 9일 원폭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위용을 과시했다.
    9월에 들어서 남로당의 빨치산 투쟁이 본격화 되었고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하면서 북한은 10월 6일 중국와 국교를 수립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은 에치슨 라인으로 한반도에서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내 눈치를 살핀 이철상이 말을 이었다.
    「시티코프에게 김일성은 전쟁이 나면 남한 전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투쟁이 일어나고 빨치산과 연합하면 남한 정부는 순식간에 무너진다고 했다는데요.」
    「자네 생각도 그런가?」
    하고 내가 불쑥 물었더니 이철상이 시선을 내렸다.

    그러나 대답은 했다.
    「북한 공산당 간부 대부분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박헌영이 빨치산에 기대가 크겠군.」
    「그렇습니다.」

    이철상이 말을 잇는다.
    「8월달의 시티코프와의 회담에서 장담을 했다고 합니다.」

    북한이 수시로 소련과 남침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이다.
    김일성은 서두르고 있다. 남한이 안정을 찾기 전에 남침을 하여 무력 통일을 하려는 것이다.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 과연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