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미녀들이 말하는 황당한 “우리 민족”  
     평양 아가씨들은 합창했다. “남조선엔 없는, 있을 수도 없는 민족성이지요.” 
    장진성    
     
    이 사진속의 미녀들은 중국 심양 서탑에 있는 북한 음식점 “평양관” 아가씨들이다.
    나는 오랜만에 고향의 향수를 맛보기 위해 이 평양관으로 들어갔다.
    북한 보위부와 중국 공안에 쫒기던 탈북방황길에서 인공기 무늬의 이 간판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전율했던 추억에 절로 웃음이 났다. 점심식사를 하기엔 좀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선지 평양 아가씨들은 우리 식탁으로 몰려와 메뉴를 들여다 보는 서울 손님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 “서울에도 냉면이 있습니까?”
    ‘김혜영’이란 명찰을 붙인 아가씨가 불쑥 이렇게 물었다.
    나는 북한 사투리를 숨기려 애쓰며 냉면은 우리 민속음식인데 당연히 서울에도 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 말이 참 가관이었다.
    “하긴 남조선 인민들도 겉모양은 우리랑 같은 민족이니 냉면을 먹겠지요...”
    나와 함께 갔던 분은 서울 토박이다. '겉모양 민족'이란 말에 힐끗 그 여자를 쳐다보며 반문했다.
    “그럼 남과 북은 속이 뭐가 어떻게 다른데요?”
    빙 둘러섰던 아가씨들이 거의 합창하듯 했다.
    “다르지요, 완전히 다르지요.”
    “뭐가 다른데요?” 우린 동시에 물었다.

    “남조선엔 없는, 있을 수도 없는 민족성이지요.”
    “글쎄 그게 뭔데요?” 사진 속의 오른 쪽 여자가 한 발 나서며 재잘거렸다.
    “남조선은 미국의 식민지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김일성민족입니다.”

    나도 지금쯤 북한에서 살았다면 이 말을 똑같이 했을 것이란 생각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서울 토박이인 나의 동행자는 억이 막히다 못해 화가 나 있는 얼굴이었다. 그 분은 대구 유니버시아드 때에도 북한 미녀들이 비에 젖는 김일성 사진을 안고 난리쳐 한국 국민들을 경악시켰었는데 참 대단하다고 비꼬았다. 그 말을 칭찬으로 들었는지 평양관 아가씨들은 활짝 웃었다.

    그렇다. 북한 정권이 주장하는 민족성이란 김일성민족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계 유일의 해괴한 주체년호를 사용하는 북한은 김일성이 출생한 1912년을 그 원년으로, 4월 15일은 태양절이라고 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이 대남선전용으로 말하는 “우리 민족끼리”도 엄연히 따져보면 김일성민족주의자들끼리란 뜻이다. 진정한 우리민족끼리였다면 반보수대연합이란 배타조건이 없어야 하며, 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평도에 포격을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십년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이중적인 “우리민족끼리 전략”을 합법화했다.
    북한도 “우리민족끼리”하자고 하는데 우리도 “우리민족끼리”로 화답해야 한다며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을 포기했고, 몇 조에 달하는 금품과 쌀을 퍼주었다. 북한의 대남선전 문구인 우리민족끼리란 그들 내부의 햇볕정책 역이용전략 포장용이었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지금껏 우리 북한학계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우리 민족끼리 함정용어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하는 경고조차 없었다.
    남북정상회담이란 정치 이벤트성에 집착하던 나머지 오히려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전략에 대한 화해와 평화 부분을 자유민주주의식으로 부풀려 해석하며 반역적인 동조를 했다.

  •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세종연구소 김광철 객원연구위원이 쓴 “북한의 민족정체성 왜곡과 우리 민족끼리 전략 비판”이란 논문은 탈북자인 내가 보기엔 가장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저술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 논문을 보면 북한에서의 민족성이 어떻게 이념화, 체질화 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허구성 김일성민족이란 것이 어떻게 대남적화통일의 무기로 진화되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가질 수 있다.

    아니 남한 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세뇌까지 깰 수 있는 교과서적인 논문이다. 나는 중국 심양의 평양관 아가씨들도 이 논문을 보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게 된다.

     <장진성 /탈북 시인, 뉴데일리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