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장 대한민국 (21)

    김일성은 1950년 3월 30일 다시 소련을 방문하여 한 달 가깝게 체류했다가 4월 25일에 귀국했다. 그리고는 다시 보름후인 5월 13일 박헌영과 함께 중국을 방문했는데 사흘 후인 5월 16일에 돌아왔다.

    남한은 국회의원 선거로 정신이 없었고 나 또한 김일성의 행보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며칠 후에 내가 국방장관 겸 총리서리 신성모에게 물었다.

    「신장관, 방위 태세는 충분한가?」
    「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각하.」
    신성모의 대답은 시원스럽다. 경무대 2층의 집무실에는 신성모와 이철상까지 셋이 둘러앉아있다.
    내 특별보좌관격인 이철상은 신성모를 싫어했다.

    내 인사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는 않았지만 신성모의 말에는 꼭 꼬투리를 잡았다. 신성모도 그 눈치를 알고서 이철상하고는 아는 체도 않는다. 그런 둘을 마주보고 앉게 한 것은 처음이다. 내가 다시 물었다.

    「4월 한 달 동안 김일성이 소련에 가 있으면서 스탈린한테 군사 원조를 많이 받아왔다고 하네, 지금 북한군 장비가 대폭 증강되고 있다는 거야. 알고 있는가?」
    「예, 저도 압니다.」
    신성모의 시선이 힐끗 이철상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깨를 편 신성모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군도 착실하게 군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적을 경시 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두려워하는 것도 군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국군은 싸우면 이긴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말은 좋은데,」
    그 때 이철상이 헛깃침을 하고 나섰다.
    「5월 중순에 김일성, 박헌영이 모택동과 만나서 전쟁이 일어나면 지원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합니다. 장관은 알고 계십니까?」
    「그건 소문이요.」

    일언지하에 자른 신성모가 나에게 말했다.
    「중국군은 오합지졸입니다. 10만 명이 몰려와도 전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은 지난 2월 14일 모택동이 소련을 방문하여 스탈린과 중ㆍ소 우호동맹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다. 소련과 중국은 동맹국이 된 것이다. 김일성에게도 희소식이다.

    그 때 이철상이 다시 말했다.
    「제 정보에 의하면 소련은 군사지원은 충분히 하겠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중국이 함께 싸우라고 했답니다. 이것은 이미 소련과 중국이 북한의 전쟁 계획을 승인한 것이나 같습니다.」
    「그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정보요?」
    마침내 신성모가 눈을 치켜뜨고 이철상을 보았다.

    「이선생은 그 정보원을 밝혀 주셔야겠소, 그래야 내가 확인해서 조치할 것 아닙니까?」
    「믿을만한 정보원입니다. 그러나 밝힐 수는 없습니다.」
    「그럼 믿을 수가 없소.」
    「나는 알고 있어.」

    마침내 내가 이철상 편을 들었다. 이철상은 북한 노동당 간부로 재직하고 있는 고향 선배, 친구들로부터 정보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철상은 믿지만 그 정보원은 알 수가 없다. 판단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이 선거네, 빨치산 소탕이네, 내각제 개헌이네, 그리고 여러 가지 국가기반을 갖춰가고 있는 동안 이미 공산주의 체제를 갖춘 북한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네.」
    「국군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신성모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전쟁 준비만 안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