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6.25 ⑤  

    6월 25일 오후 10시경에 민복기와 함께 조병옥이 들어왔다. 조병옥의 부리부리한 눈은 충혈 되어있었다.
    「각하, 전황이 좋지 않습니다.」
    조병옥이 소리치듯 말했으므로 나는 시선만 주었다. 조병옥도 분할 것이었다.

    「국군이 결사 항전을 하고 있습니다만 놈들의 장비와 병력에 밀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병옥이 경무대로 찾아와 소식을 전하는 것은 혹시 국방부장관 신성모나 참모총장 채병덕의 낙관적인 보고만 받고 판단을 그르칠까 염려가 되는 것 같다.

    「벌써 수만 명이 살상 되었겠구만.」
    문득 내가 말했을 때 내 말끝이 떨려나왔다. 가슴 속에 있던 말이 저절로 뱉어진 것이다. 그러자 조병옥이 이를 갈아 붙이듯 말했다.

    「6월 10일에는 조만식선생을 이주하, 김삼룡과 교환하자고 하고, 다시 6월 16일에는 남북한 국회를 단일 입법기관으로 연합하여 헌법을 채택하자는 평화통일 제안을 한 것은 모두 김일성이 그 어린놈의 간계였습니다.」
    그리고 전방 지휘관의 대폭 교체와 24일의 집단 외박 허가, 안팎에서 공산당 무리는 대한민국을 난도질했다. 내가 입을 열었다.

    「조장관, 어서 돌아가 일해. 나는 여기서 딱 지키고 있을 테니까.」
    「야전지휘관의 보고를 직접 들으셔야 합니다. 각하, 전황이 결코 ----」
    「알고 있네.」
    「다시 들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조병옥이 서둘러 돌아갔다. 저녁 무렵이 되면서부터 경무대에서도 은은한 포성이 들리고 있다. 시내에 다녀온 비서관은 분위기가 흉흉하다는 것이다.

    전라도에서는 이미 빨치산들이 몇 개 도시를 점령했고 형무소가 개방되어 갇혔던 빨치산이 모두 풀려나왔다고 했다. 아침부터 피난민이 서울을 떠나고 있는데 오후가 되면서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다.

    머리를 든 내가 옆쪽에 서 있는 비서관 고재봉을 보았다.
    「이보게, 맥아더 장군을 바꿔주게.」
    「예, 각하.」

    고재봉이 전화기를 들고 교환에게 지시했을 때 프란체스카가 우유 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섰다.
    「우유 드세요.」
    늦은 시간까지 내가 2층 집무실에 있는 것이 불안했을 것이다. 그 때 이번에는 포성이 더 크게 울리면서 유리창이 가볍게 떨었다.

    「이렇게 분할 수가 있나?」
    내가 한국어로 혼잣소리를 했다.
    「내가 건국 이후라도 김일성이처럼 독재를 했다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토양도 조성되지 않은 곳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퍼뜨려만 놓았더니 이기심과 무질서가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그 기회를 이용하여 공산당 무리는 내란을 일으켰고 친일파 세력은 나를 독재자로 비난하며 도태 시키려고나 했다.

    그 때 고재봉이 전화기를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각하, 동경 연합군사령부 사령관 부관 휘트니 장군입니다.」
    전화기를 받아 귀에 붙인 내가 대뜸 물었다.
    「장군, 맥아더 사령관을 바꿔 주시오. 급합니다.」
    「지금 주무시는데요. 각하.」
    휘트니가 정중하게 말했다.

    「제가 내일 아침에 전해드리면 안될까요? 각하.」
    그래서 내가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했다.
    「미국이 이번 전쟁에서 책임을 지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군은 지금 대한민국 영토에 남아있는 미국인을 다 사살하고 미국과 단교할 거야. 그렇게 전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