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6.25 ⑦  

    조병옥과 이기붕, 신성모까지 달려온 것은 27일 새벽이다. 나는 마악 잠이 들었다가 깨어 나왔더니 조병옥이 먼저 다급하게 말했다.
    「각하, 인민군이 곧 서울로 들어올 것 같습니다. 피하셔야 되겠습니다.」

    포성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귀에 익어서 그런지 감각이 무디어져 있었지만 조병옥과 이기붕의 표정이 절박했다.
    「각하, 서울은 저희들한테 맡기시고 피난을 가시지요. 그것이 국가를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허어, 말은 잘한다.」

    내가 소리치자 방안이 조용해졌다. 창밖은 칠흑같은 어둠에 덮여졌고 포성으로 유리창이 떨리고 있다. 방안에 둘러선 각료, 비서들의 얼굴은 침통하다.

    나는 그날의 장면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한 말도 다 기억할 수 있다. 내가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임진왜란 때 임금 선조가 황망히 한양성을 버리고 떠난 기록을 알고 있나?」

    모두 눈만 껌벅였고 나는 말을 이었다.
    「백성들이 앞을 가로막고 엎드려 통공했어. 버리고 가지 말라고 말이야. 그 때 왜군은 겨우 충주를 지나고 있었어.」
    「----」

    「백성을 뿌리치고 임금은 정신없이 도망쳐 평양을 거쳐 명과의 국경인 의주까지 닿고는 겨우 숨을 돌리네.」
    「----」
    「그리고는 거기에서 명에 사신을 보내 입국하게 해달라고 하지. 그랬더니 명 황제는 조선왕이 왜군까지 끌고 들어올까 봐서 100명만 들어오라고 하네, 100명만 말야.」

    문득 목이 메었으므로 나는 말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지만 350년 전하고 왜 이리 닮았는가? 그 무능한 임금 선조처럼 땅 끝으로 도망가 대국의 지원을 기다려야만 하다니 말이네.」
    「각하께선 선조하고는 다르십니다.」

    이기붕이 겨우 말했지만 시선을 내리고 있다. 그 때 포성이 울리더니 금이 가 있었던지 유리창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깨졌다. 그 때 내가 말했다.
    「돌아가서 기다리게. 국군은 지금도 싸우고 있네.」

    그 때 비서관 황규면이 전화기를 내밀었다.
    「참모총장입니다.」
    내가 가만 있었더니 신성모가 전화기를 받아서 건네주었다. 전화기를 귀에 붙이자 채병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각하! 적이 의정부로 진입했습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막지 못했는가?」
    내가 묻자 채병덕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겨우 말한다.

    「예, 각하, 우리 국군은 모두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 전투 중에 도망친 군인은 한명도 없습니다.」
    「----」
    「각하! 국군의 희생이 헛되면 안 됩니다! 어서 피하셔서 전세를 만회해야 됩니다.」

    채병덕의 말은 맞다. 내가 왜란 때의 선조와 비교하면서 버티기 경쟁을 하는 것도 부질없는 것이다. 지금도 말하지만 나는 선조대왕과는 다르다. 그 임금은 8명의 부인한테서 14남11녀 나 생산했지 않았는가? 그것부터 다르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내가 방안에 둘러선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 준비를 하게. 그리고,」
    시선을 든 내가 구석 쪽에 서있는 경무대 경찰서장 김장흥을 보았다.
    「자네가 우리 부부만 인도해주게.」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조병옥과 이기붕, 신성모가 다가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인사를 했는데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