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6.25 ⑨  

    대구역에 마중 나와 있던 경북지사 조재천이 내가 앉아있는 객차 안으로 들어서더니 절을 했다.
    「각하, 이렇게 뵙게 되어서 ---」
    「그보다, 조지사.」
    내가 조재천의 말을 끊고 물었다.

    「지금 전황이 어떤가?」
    「예, 그것이---」
    조재천은 내가 열차에서 내리지도 않아서 당황한 것 같다. 밖에는 마중 나온 공무원과 시민까지 백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이 또 내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그래서 부끄러워진 내가 밖으로도 못 나가고 조재천을 부른 것이다.

    조재천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내가 서두르듯 말했다.
    「조시사, 나가서 나 마중 나온 시민들을 다 보내게. 더운데 저러고 있으면 안 돼.」
    조지사가 눈만 크게 떴으므로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서 돌려보내고 오게.」

    그때서야 조재천이 허둥지둥 몸을 돌리더니 열차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돌려보낸다.
    무더운 날씨였다. 돌아와 내 앞에 앉은 조재천이 이마의 땀을 손끝으로 씻으면서 대답했다.

    「아직 서울이 함락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각하. 하지만 위급하다고는 ----」
    「허어.」
    내 가슴이 미어졌다. 「우리 아이들」이 기를 쓰고 서울을 지키고 있구나. 그런데 나는 대구까지 도망 왔단 말인가? 내가 옆에 선 황규면을 보았다,

    「황비서, 돌아가자.」
    「예, 각하.」
    「각하, 피곤하실 텐데 대구에서 조금 쉬었다가 가시지요.」
    조재천이 만류했지만 나는 머리를 저었다.
    「내가 최전선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 근처에는 있어야 도리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20분 만에 기차를 돌려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역에는 충남지사 이영진과 서울에서 내려온 윤치영, 허정까지 마중 나와 있었는데 인민군은 의정부 춘천 방어선을 돌파했고 개성 문산을 점령한 인민군 6사단이 서울로 남진 중이라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역장실로 올라가던 내가 문득 머리를 돌려 열차를 보았다. 그 때 열차 기관실 아래로 내려와 서있던 기관사가 나에게 경례를 했다. 머리를 끄덕여 보인 내가 걸음을 늦추고는 옆을 따르던 황규면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 기관사는 서울로 돌아가지 못할 것 아닌가?」
    물론 황규면이 대답하지 못했고 내가 다시 물었다.
    「식구들이 다 서울에 있을 텐데 그럼 여기서 어떻게 지낸단 말인가?」

    그 때 옆에서 걷던 윤치영이 버럭 소리쳤다.
    「역장! 역장 어디 있나!」
    역장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던 터라 내막은 모른 채 부르는 소리만 듣고는 질겁을 하고 다가왔다.

    그 때 내가 황규면에게 말했다.
    「저, 기관사한테 생활비 좀 주게.」
    「예, 각하.」
    다가온 역장한테는 윤치영이 지시를 했으므로 나는 다시 발을 떼었다.

    내 눈에는 다 피난민이요, 다 내 잘못으로 이 난리가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김일성에 대한 분노만 치솟았는데 허둥대는 백성, 근심 섞인 표정의 기관사 얼굴을 보았더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하루 종일 기차를 탄 셈이어서 나는 그날은 충남지사 관사에서 묵기로 했다. 저녁에 그날 처음으로 밥을 먹고 났을 때 황규면이 다가와 보고를 했다. 기관사한테 수고비로 2만원을 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