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독립정신'을 탈고하다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29) 내가 저술한 「독립정신」은 수감 5년이 지난 1904년 2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6월 말까지 4개월여 만에 탈고했다. 제국신문에 기고했던 논설들을 활용했기 때문에 빨리 완성 시킬 수가 있었다.「독립정신」을 쓰게 된&nb

    2010-06-23
  • <101> "일본 공사의 허락을 받아야 석방됩니다"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28) 「나리는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방이 안된답니다.」거침없이 말했지만 기석(奇石)이 힐끗 내 눈치를 보았다. 감옥서의 면회실 안에는 둘 뿐이었고 입회 간수는 보이지 않는다. 기석의 뇌물을 받고 비켜 준 것이다.쓴웃음을

    2010-06-22
  • <100> 모두 하느님의 뜻이다

    2010-06-21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100)인간의 목숨은 모질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연약하다. 감옥소에서 엿새만에 콜레라 환자가 70여인으로 늘어났고 사흘째부터 시체가 실려 나갔다.감옥서 서장 이하 옥리들이 고군분투를 했지만 전염병을 막을 자 누가 있으랴.

    2010-06-21
  • <99> "여기서 개죽음 하면 안돼"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26) 다음날 저녁 무렵, 내 전갈을 듣고 제중원 원장 에비슨이 달려왔다. 전갈은 아침 일찍 보냈기 때문에 나는 그야말로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왜냐하면 하룻밤 사이에 설사병 환자가 열두 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안쪽

    2010-06-19
  • <98> "성안에 전염병이 돈답니다"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25) 「저 방에 설사 환자가 셋이나 있소.」죄수 하나가 내 옆을 지나면서 말했다. 내가 눈으로 물었더니 죄수가 안쪽 감방을 가리켰다.「냄새가 지독해서 모두 도망쳐 나왔습니다.」「이보게, 자네는 냄새가 안나는가?」내가 나무랬더니 도둑질을 하다

    2010-06-18
  • <97> "민중아 깨어라, 네 잠을 깨우리라"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24) 감옥서의 학당은 1902년 10월에 개설되었는데 서장 김영선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김영선에게 진정서를 올려 학당 개설을 부탁한 것은 말보다도 글로 써 올리는 것이 예의일 것이며 증거로도 남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0-06-17
  • <96> "임병길의 자손이어, 들으시라"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23) 임병길(林炳吉)은 나보다 7살 연상으로 군부(軍部) 정위(正尉)였으니 무관이다. 또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간부인터라 나하고 막역했던 사이였다.내가 투옥된 후에 임병길은 만민공동회 동지들과 함께 조병식, 신기선 등의 저택에 폭탄을 투척

    2010-06-16
  • <95> "산아, 함께 못해서 미안하다"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22) 「산아, 너는 커서 무엇이 되겠느냐?」하고 내가 물었더니 봉수(奉秀)가 대답했다. 봉수의 아명이 태산(泰山)이다.「시위대 장교가 되지요.」봉수는 이제 여섯 살이 되어서 가끔 감옥서에 심부름을 왔다가 자고 가기도 한다. 감옥서에

    2010-06-15
  • <94> "이 나라는 망했다가 다시 태어나야"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21) 감옥서 서장(署長) 김영선(金英善)은 나를 우대(優待)했다. 김영선에게 독립협회의 후원자이며 중추원 의장, 법부대신을 지낸 한규설이 청을 넣었기도 했지만 김영선의 호의는 진실했다. 그가 배려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독서와 저술활동을 할 수

    2010-06-14
  • <93> "우남, 나는 내일 새벽에 죽네"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⑳  안경수(安駉壽)는 일청한(日,靑,韓) 삼국동맹론을 주장했는데 당시의 개화파 세력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일, 청, 한 삼국동맹론이란 요약해서 말하면 서양 침략세력을 동양 3국이 함께 대항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동양

    2010-06-12
  • <92> 40여명을 기독교 신자로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⑲  차분하게 글을 쓰다가도 문득 석방되어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그럴때면 아무나 붙잡고 사정을 하고 싶다. 나를 도와주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힘을 쓰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 더 초조해진다.그러면 부

    2010-06-11
  • <91> "하와이로 이민 갑니다"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⑱  「아니, 여길 왜?」내가 면회 온 오선희에게 처음 한 말이었다. 다소곳하게 앉아있던 오선희가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1900년 4월이다. 이제 감옥생활이 차츰 몸에 배어가고 있었지만

    2010-06-10
  • <90> "자네는 백성들의 희망이야"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⑰  한성감옥서(漢城監獄署)는 조선조 초기부터 존속했던 전옥서(典獄署)의 이름을 바꾼 것으로 시설이 열악했다. 그러나 판결을 받고나서 칼을 벗고 수족 묶인 것까지 풀리자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나는 그해(1899) 12월에 두 번 감일등(減

    2010-06-09
  • <89> 종신징역형을 받다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⑯  판결이 났다. 최정식은 사형이 언도되었고 나는 태1백(笞一白)과 종신징역이다. 나의 황제폐위 음모 가담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벗겨졌으며 탈출 미수도 종범(從犯)으로 처리된 것이다.선고를 받은 1899년 7월 11일, 최정식은 그

    2010-06-08
  • <88> 황제의 충신 홍종우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⑮  간수가 나를 데려간 곳은 평의원 건물 한쪽의 방이었다. 방문을 연 간수가 먼저 나를 밀어 넣고는 말했다.「들어가 기다리시오.」방에 들어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빈 방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대여섯개가 놓여졌고 벽에 붙여

    2010-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