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7> 한국에서 온 전보

    10장 분열된 조국 (23) 내가 워싱턴의 칼튼 호텔에 여장을 풀었을 때는 1946년 12월 7일이다. 전에는 한달 반 쯤 걸려야 한국에서 이곳까지 왔지만 지금은 사흘 걸렸다. 비행기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국무부 관리들의 태도는 비이성적이요.」그날 저녁, 내 방에는

    2011-03-17
  • <326>미군정의 적개심

    10장 분열된 조국 (22)출국 허가증이 나왔다고 합니다.」 군정당국에 다녀온 박기현이 조급한 표정을 짓고 말한다. 이철상이 저격당한 지 사흘째가 되는 날이다. 생명은 겨우 건졌지만 이철상은 두달은 더 병원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박기현이 말을 이었다. 「맥아더 원수가

    2011-03-16
  • <325> 빗나간 총탄

    10장 분열된 조국(21)   다음 날, 돈암장을 방문한 김성수 등 한민당 간부들과 이야기를 마친 내가 대문 앞까지 배웅하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오후 8시 반쯤 되어서 주위는 어둡다. 11월 하순이었지만 포근한 날씨여서 내가 옆으로 다가선 이철상에게 말했다.「작년 이맘

    2011-03-14
  • <324>맥아더 "국무부에 소련 스파이 많아"

    10장 분열된 조국 (20) 놀란 스튜어트가 우두커니 나를 보았다.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누구인가? 일본 점령군 총사령관이며 육군 원수로 하지의 직속상관이기도 하다. 1880년생이었으니 당시 67세.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에 1

    2011-03-13
  • <323>나 아니면 누가 대한민국을 세우랴

    10장 분열된 조국 (19) 그렇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 제각기 자신의 입장과 명분만을 추구하는 바람에 한반도는 격랑속으로 빠져들었고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역사는 승자(勝者)의 기록이다. 그 예로 백제를 보라. 찬란했던 문명, 일본과 중국 땅에까지

    2011-03-11
  • <322> 이 매국노를 끌어내라

    10장 분열된 조국 ⑱    -322-   돈암장(敦岩莊)은 1939년에 지은 전통 한식 건물로 나는 물론이고 프란체스카도 좋아하는 집이었다. 장덕수가 마련해준 집이었는데 그것을 주선해준 송진우는 이제 암살을 당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테러와 암살이 횡행하는 시기였

    2011-03-10
  • <321>김일성을 아시오?

    10장 분열된 조국 (17) 「김일성을 잘 아시오?」내가 물었더니 김구와 김규식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1946년 10월 중순경의 늦은 저녁, 둘이 내 거처로 찾아와 응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둘의 대답이 늦어서 내가 다시 물었다.「보신적이 있소?

    2011-03-09
  • <320>정판사 위폐...대구 폭동

    10장 분열된 조국 (16)  남한의 조선공산당은 1946년 5월 7일 이른바 정판사사건(精版社事件)을 일으켰는데 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사를 발행하던 권오직, 이관술이 조선정판사 사장 박낙종과 서무과장 송언필에게 지시하여 1300만원 상당의

    2011-03-08
  • <319> 단독정부 세우시지요

    10장 분열된 조국 ⑮   1946년 3월 20일부터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린 신탁통치 문제에 대한 미·소 공동위원회는 두달 가깝게 끌다가 5월 6일에 결렬되었다. 그러나 하지는 여운형과 김규식을 좌우 대표로 삼아 각각 5명씩의 좌우 인사들로 구성된 합

    2011-03-07
  • <318>어떤 놈도 민주의지는 못 꺾는다

    10장 분열된 조국 ⑭   그러나 김규식은 좌우합작을 주장하고 나와 합류하지 않았다. 미군정의 정책에 따른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에 그 좌우합작이란 정책이 부질없고 오직 소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루즈벨트 정권의 임시방편적 정책이라는 증거가 드러났지만 1946년 당

    2011-03-06
  • <317>북한은 단독정부 수립했습니다

    10장 분열된 조국 ⑬       「한반도의 운명은 지난번 얄타회담에서 결정이 되었어.」내가 자르듯 말했더니 김규식이 잠자코 시선만 주었다. 돈암장의 서재 안이다. 오후에 불러낸 김규식과 나는 둘이서 오랜만

    2011-03-04
  • <316>소련에 매달린 미국

    10장 분열된 조국 ⑫ 하지는 소련과의 협력 관계를 아직도 중시하는 미 국무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그도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남한 땅에서 미국무부의 지시에 어긋나는 일을 할 이유도 없었고 할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의 경직된 자

    2011-03-03
  • <315> 70노인의 투지

    10장 분열된 조국 ⑪  내 나이 71세, 38세 때인 1912년 조국을 떠나 33년만에 해방을 맞아 노인이 되어 귀국했다. 1945년에 71세면 오래 산 노인 축에 든다. 한국인은 꼭 유교사상 때문이 아니라 어른을 존중하고 노인을 공경하는 풍습이 몸

    2011-03-02
  • <314>소련의 꼭두각시

    10장 분열된 조국 ⑩   그리고 다음날인 1946년 1월 2일, 조선 공산당은 성명을 발표했다.「우리는 신탁통치를 찬성한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느닷없는 발표여서 전 국민은 물론이고 군정청까지 경악했지만 놀람이 가라앉자 곧 이해가 되었다. 소련이 지시를 내린 것이다

    2011-03-01
  • <313>송진우 암살 배후는?

    10장 분열된 조국 ⑨   대통합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내 생각은 하루도 안 되어서 산산조각이 났다. 다음날인 1945년 12월 30일 새벽, 한민당의 수석부총무이며 우파의 거목인 송진우가 원서동 자택에서 암살 된 것이다. 저격범은 체포되었는데 청년단

    201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