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그 일리노이 촌놈이...

    10장 분열된 조국 ⑧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에서 미, 영, 소 3국의 외상이 모여 합의한 이른바 「모스크바 3상회담」 결과는 AP통신에 의해 그날 저녁에 한국에도 발표되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은 향후 5년간 미국과 소

    2011-02-27
  • <311> 하지 對 이승만의 싸움 시작되다

    10장 분열된 조국 ⑦   「이보시오, 장군.」내가 부르자 하지(John R. Hedge) 중장이 몸을 돌렸다. 미 제24군단장 하지는 전형적인 야전형 무장으로 전투에는 용명을 날렸으나 정치는 서툴렀다. 한반도는 이제 전장(戰㙊)이 아니다.

    2011-02-25
  • <310>김구와 재회

    10장 분열된 조국 ⑥    백범(白凡) 김구가 귀국한 날은 1945년 11월 23일이다. 중경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미군정 사령부의 정책 때문에 김구 일행도 개인 자격으로 C47 군용기를 타고 귀국했다. 나는 김구가 귀국한 그날

    2011-02-24
  • <309> 미국을 이용해 소련을 막자

    10장 분열된 조국 ⑤  그래도 나는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11월 2일, 조선공산당 대표이며 조선인민공화국의 실세인 박헌영이 돈암장을 방문했을 때 내가 물었다.「박비서장. 친일, 반일 가려내는 일보다 뭉쳐서 독립과 통일을 이루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지 않으시오?」「제

    2011-02-23
  • <308>북은 이미 공산당국가

    10장 분열된 조국 ④  나는 철저히 중립 입장을 취하면서 귀국한지 1주일째가 되는 날인 10월 23일, 전국의 65개 정당 대표들을 내가 머물고 있는 조선호텔로 모이도록 했다. 그리고는 2백여명 대표들의 합의로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즉 「독촉」을 발족

    2011-02-22
  • <307>인공 주석 이승만

    10장 분열된 조국 ③   나는 귀국도 하기 전인 1945년 9월 14일에 남한에서 선포된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석으로 임명되었다. 조선인민공화국, 즉 인공은 8월 20일에 서울에서 결성된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이 주도권을 장악한 상태였는데 좌우 합

    2011-02-21
  • <306> 너는 내 특별보좌관이다

    10장 분열된 조국 ②   「박사님!」외치는 소리가 너무 컸고 울림이 강했기 때문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조선호텔 현관 밖에는 수백명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내가 몸을 돌렸더니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백의(白衣)민족. 그렇다. 우리 민족은 흰 웃을 잘

    2011-02-20
  • <305> 좌익의 단결은 놀랍다

    10장 분열된 조국 ①   해방이 되고나서 내가 서울에 도착한 1945년 10월 16일까지 두달 동안 한반도는 38도선으로 남북한이 분리되었으며 각각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했다. 점령군인 것이다. 남한은 미 제24군단장 하지 중장 휘하의 아놀드 소장이

    2011-02-18
  • <304>무식하거나 나쁘거나

    열 번 째 Lucy 이야기 ④   부질없다. 둘 사이의 논쟁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둘 사이의 인연을 알려주려고 나는 김동기가 보낸 팩스 카피를 가져온 것이다. 둘의 갈등은 바로 한국 내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승만 수기를 읽은 터라 한국인의 분열과

    2011-02-17
  • <303>반역자들의 가설

    열 번 째 Lucy 이야기 ③   오후 6시, 호텔 2층의 일식당 방 안에서 세 남녀가 둘러앉았다. 인사를 나눌 적에 김태수와 고지훈은 다소 멋쩍은 표정들을 지었지만 곧 정상을 회복했다. 둘 다 교양과 지성 면에서 최고 수준의 한국인들이다.주

    2011-02-16
  • <302>우연과 인연

    열 번 째 Lucy 이야기 ②   로스엔젤리스의 김동기씨가 전화를 해왔을 때는 오후 3시경이다. 나는 저녁에 고지훈, 김태수와 만날 약속을 정하고 나서 방으로 돌아와 쉬는 중이었다. 「루시양, 벌써 열흘이 되었군요.」인사를 마친 김동기가 웃음

    2011-02-15
  • <301>선택은 내가 하는 것

    열 번 째 Lucy 이야기 ①   그렇다. 1912년 3월 26일, 자신의 38세 생일이 되던 날 도망치듯 조선 땅을 떠난 이승만은 33년이 지난 1945년 10월 16일, 미국 점령지가 된 조국에 불청객처럼 돌아왔다. 조국은 일제 식민지에서

    2011-02-14
  • <300>33년만의 조국 땅

    9장 시련의 20년(27) 1945년 10월 16일, 마침내 나는 김포 비행장에 도착했다. 1912년 3월 26일, 38살 생일이 되던 날 조국을 떠나 33년만에 71세의 노인이 되어서 귀국한 것이다. 무국적자로 떠돌다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현실은 감개를

    2011-02-13
  • <299>여운형, 나를 인민공화국 주석으로

    9장 시련의 20년 (26) 9월 초에 미국무부에서 여권을 발급해 주었지만 군으로부터 한국 입국 허가증을 받아야만 했다. 맥아더 사령부는 즉시 입국 허가증을 발급했는데 여권 소지자의 신분에 「주미 한국 고등판무관」이라고 기재했다. 내가 제출한 서류상

    2011-02-11
  • <298>해방되자 좌우 갈등인가

    9장 시련의 20년 (25)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사흘 후인 8월 9일에 다시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8월 10일에는 그때까지 뜸을 들이고 있던 소련군이 일본령 만주를 공격하면서 곧장 북한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8월

    2011-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