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김구의 전화

    9장 시련의 20년 (24) 당시의 한반도에 대한 미국 측 정책은 좌우합작 연립정부를 겉으로 표방하되 안으로는 신탁통치를 추진하고 있었으니 내 폭탄발언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루즈벨트가 병사한 후에 대통령직에 오른 트루만도 당혹했을 것 같다. 병사한 루즈벨트

    2011-02-09
  • <296> 소련 참전 댓가는 한반도

    9장 시련의 20년 (23) 1945년 2월 초, 독일의 패망이 가까워지면서 얄타에서 루즈벨트와 처칠, 스탈린이 모여 회담을 연다. 이른바 「얄타회담」이다. 주로 동유럽의 전후(前後)처리문제에 대해서 토의했지만 나는 2월 8일 루즈벨트와 스탈린의 양자

    2011-02-08
  • <295>한국을 소련에 넘겨줄수 없어!

    9장 시련의 20년 (22) 「좌우합작은 성립될 수가 없는 사상누각이오.」내가 말하자 임병직과 장기영 등은 머리를 끄덕였다. 워싱턴 구미위원부의 사무실 안이다. 1944년이 되면서 전황은 연합군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국력(國力)의 차이, 즉 미국의

    2011-02-07
  • <294>"코리언은 자립능력 없음"

    9장 시련의 20년(20) 제2차 세계대전으로 빠져든 세상은 적과 동지로 나뉘었다. 일본은 독일, 이태리와 동맹을 맺고 아시아를 석권하려는 대야망을 품었는데 초기에는 승승장구해서 그것이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다. 필리핀, 싱가폴, 동남아 지역에다 오스트렐리아 북방까지 진

    2011-02-06
  • <293> 소련이 미국의 동맹이라...

    9장 시련의 20년 (20) 「미국은 런던에 있는 유럽의 망명정부를 원조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망명정부도 미국의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내가 말했더니 알저·히스가 머리를 들었다.미국부 안의 특별보좌관실에서 나는 국무장관 특별보좌관 알저 히스를 만나고 있다.

    2011-02-04
  • <292>중국 재벌 송자문의 농간

    9장 시련의 20년 (19)  1912년에 다시 조선 땅을 떠나 1941년이 될 때까지 30년 동안 나는 무국적자였다. 미국 시민권은 언제든지 획득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고국으로 돌아가는데 지장을 줄 이유도 없었지만 나는 무국적자로 남았다.

    2011-02-03
  • <291> 미국은 러시아에 조선을 내주려나

    9장 시련의 20년 (18)  이번에는 프랭크린 루즈벨트다. 1905년에 내가 가져간 청원서를 읽었던 대통령은 제 26대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그리고 지금 내가 제출한 임정 승인 요청서를 거부한 대통령이 제

    2011-02-02
  • <290> 김구는 좌우합작했는데 나는?

    9장 시련의 20년 (17) 히틀러는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더니 1939년에는 체코스로바키아까지 합병했다. 유럽의 전운(戰雲)이 짙어지는 한편 중일(中日)전쟁은 장기전의 양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국공합작(國共合作)으로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2011-02-01
  • <289> 실패의 기록이 성과

    9장 시련의 20년(16) 「도대체 당신이 지금까지 이룬 일이 뭡니까?」교민회 총무 하정섭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1939년 초, 나는 교민 장태연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마악 저녁을 마친 참이었다. 테이블에는 20여명의 남녀 교민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다행히

    2011-01-31
  • <288>피흘리는 분열

    9장 시련의 20년 ⑮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그렇게 소리치며 들어온 사람은 한인회 간부 박기옥이다. 한인학교 사무실에 앉아있던 내 앞으로 박기옥이 서둘러 다가서며 말했다.「박사님, 일본군이 베이징 근처의 노구교(盧構矯)에서 사건을 일으킨

    2011-01-30
  • <287>나의 신부 프란체스카

    9장 시련의 20년 ⑭   내가 프란체스카와 결혼한 것은 1934년 10월 8일이다. 뉴욕 몽클레어 호텔에서 오랜 친구인 윤병구 목사와 존 헤인즈 홈즈 박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는데 내 나이 59세, 프란체스카는 34세였다. 렉싱턴 애버뉴에 위치한 몽클레어 호텔은 내

    2011-01-29
  • <286> 날 사랑하는 것 같군요

    9장 시련의 20년 ⑬   나는 그날 모스크바를 떠났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모스크바에는 일본 고위층 손님이 와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가 건설한 만주의 동청철도(東淸鐵道)를 매입하려고 왔다고 했다. 만주 땅이 일본군에 점령된 마당이니 비싸게 받으려면 비위를 맞춰야 될

    2011-01-28
  • <285>즉시 돌아가랍니다

    9장 시련의 20년 ⑫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가 끝난 후에 나는 러시아행을 추진했다. 한, 중, 러, 3국의 연합으로 일본을 견제하자는 구상을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미 조선독립군을 지원한 전력이 있는데다 조선 국내에서는 김재봉, 박헌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과 고려

    2011-01-27
  • <284> 프란체스카를 만나다

    9장 시련의 20년 ⑪   「감사합니다.」인사를 한 나는 테이블에 앉았다. 드루시 호텔의 식당 안이다.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두 여자가 차지한 테이블에 합석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합석을 허락해 준 인사를 했다.웨이터에게 주문을 한 나는 식당 안

    2011-01-26
  • <283>하와이 반대파의 방해

    9장 시련의 20년 ⑩    피가 마르고 뼈가 깎이는 것 같다는 말이 있다. 모질고 독한 고통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나는 가만있을 때, 그것도 사무실이나 침실에서도 문득 그런 느낌을 받는다. 감옥서에서 고문을 받을 때도, 그 열악한 환경에서 콜레라 환자와 함께 있을 때조

    2011-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