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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에 버스 정류장서 버스를 기다려 본 사람들이라면, 가장 원하는 게 언제 내가 원하는 버스가 오는지를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컴퓨터로 인터넷에 들어가면 서울시와 경기도서 그에 대한 답을 주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버스정류장서 노트북을 키고 있을 수는 없고, 버스 정류장마다 도착 정보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모두 설치되어 있지도 않다. 휴대폰으로 무선 인터넷에 들어가면 나오기는 하는데 무선 인터넷 비용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사용방법과 인터페이스가 편하지도 않다. 필요는 발명을 낳는 법.
한 어린 고등학생이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 폰을 이용해 그런 정보를 아주 간단히 편하게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80년대 서울대 학생시절 제대로 된 한글 워드 프로세서가 없어 아래아 한글을 만들었다는 이찬진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바로 그 학생이 만든 아이폰을 통해 서울과 경기지역의 버스도착시간을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 '서울버스(Seoul Bus)'의 등장으로 경기도와 서울시가 진땀을 빼고 있다.
◇앱스토어 다운로드 1위 '서울버스', 사용不可 왜? = 고등학생 유주완(17·경기고)군은 지난 4일 자신의 위치를 입력하기만 하면 인근 버스 정류장의 버스 도착 시간은 물론 차량번호까지 알려주는 새로운 개념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애플 앱스토어에 올렸다. 이른바 '서울버스'라 명명된 이 프로그램은 배포가 되자마자 하루에 1만 번 가량이 다운로드 될 정도로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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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기도는 이같은 프로그램이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11일 서울버스에 대한 경기지역 버스교통정보를 차단시켰다.
개발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하지만 경기도 버스정보시스템을 무단으로 이용했고 만약 책임 소재가 불거질 시 책임주체가 명확치 않아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처럼 하루아침에 서울버스의 정상적인 운용이 어려워지자 네티즌들은 경기도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각종 항의글을 달며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한 경기도 측의 무책임한 처사를 맹비난했다.
한 네티즌은 "국가가 앞장서 개발해야 할 프로그램을 일개 고등학생이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부가 감사는 하지 못할 망정 되레 차단시켰다는 점에서 실망을 금치 못한다"고 밝히며 "버스정보시스템 역시 국민의 세금으로 개발·운영되고 있는 것인데 이를 좀더 편리하게 무료로 이용하겠다는 게 대체 뭐가 잘못이냐"는 비판을 가했다.
◇네티즌 '성화'에 경기도 '두손두발' = 이처럼 서비스 차단 이후 네티즌의 항의가 빗발치자 경기도는 17일자로 버스교통정보 공유 차단을 해체, 경기지역 정류장에 대한 정보 열람을 재개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서울버스 앱' 서비스 차단과 관련, 관계자를 통해 "이유 불문하고 즉각적인 개통을 지시"하는 한편 "경기도가 나서서 제공해야 할 버스운행 정보를 제한한 것은 도민들께 크게 사죄해야 할 일"이라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경기도의 즉각적인 조치에도 불구 네티즌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모 인터넷사이트 자유토론 게시판에는 "당연한 일을 잘한 일이라고 치장하는 꼴" "'책임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한다"는 내용을 담은 글이 수백여개가 달리며 성난 '넷심'을 대변하고 있다.
아이디 Constant라는 네티즌은 "다시 서비스가 재개되었다니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이번 대변인 성명에서 '이유 불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경기도는 잘못하지 않았지만‥'이라는 뉘앙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네티즌은 "국민의 세금으로 관련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다 자신들과 상의하지 않고 한 국민이 무단으로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 국민들의 호응을 얻는다 하여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건 어떤 식으로든 경기도의 잘못"이라며 "정식 사과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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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 인터넷토론방 게시판에 올라온 네티즌의 항의글. ⓒ 뉴데일리
◇"법적 책임 전무…애플 애플리케이션 '법제화' 시급" = 이번 일로 서울시 역시 곤혹스럽긴 마찬가지. 서울시 교통정보센터 측은 "서울버스로 인해 시스템에 부하가 걸려 현재 개편 예정인 교통정보 시스템을 연기해야 될 처지"라고 답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 서울시 도로정보시스템 홈페이지 내에서도 흐름에 따라 도로의 정체 상황이나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기는 하다"면서 "최근 이 시스템을 스마트 폰이나 개별 단말기에 연동시키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개인이 개발하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으로 인해 원천 정보를 쥐고 있는 당사자(정부)와 지속적인 마찰이 빚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경기도도 스마트폰이나 PDA를 이용한 교통서비스 제공 계획을 세우고 관련 연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럴 경우 공공정보를 활용하는 제2 제3의 프로그램이 등장할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불분명해져 왜곡된 정보 제공 등 불특정 다수에 대한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든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사전 협의 없이 정보를 가공·재처리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향후 예기치 못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1월 아이폰이 국내에 갑작스럽게 퍼짐에 따라 이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며 "공공정보를 토대로한 애플리케이션 상용화에 대한 법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개발 비용 절감시킨 유군에 되레 감사해야" = 반면 또 다른 IT관련 종사자는 "만일 유군이 수도권 버스정보를 이용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이를 '유료화' 시켰다면 분명 문제가 발생했겠지만 유군은 개발 목적 자체가 공익 차원이었고 지금껏 앱스토어 상에 무료로 다운로드 받게 끔 해왔다"며 "시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버스정보시스템을 이용, 정부가 해야할 일을 대신했다는 측면에서 유군의 행위는 비난받을 만한 부분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경기도가 민간기업의 요청도 거절해 오는 등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공공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스마트폰과 PDA를 통한 서비스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힌 만큼 또 다른 예산 소요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오히려 막대한 개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유군의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경기도가 적극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문제의 서울버스를 개발한 유군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보차단을 해제한 경기도의 조치에 대해 감사의 의사를 표한 뒤 "앞으로 경기도가 원하면 무보수로 추가 개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유군은 "개발 당시, 어차피 정부 공공기관의 사이트이고, 버스 정보는 일반인들이 보는 것과 동일한 것이여서 문제가 안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