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韓은 왜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을까?

  • ▲ 김용철씨. ⓒ 뉴데일리
    ▲ 김용철씨. ⓒ 뉴데일리

    천안함 사건이 北의 도발에 의한 것임은 부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가 제시됐음에도 여전히 딴소리를 하는 무리들이 있고 그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있다.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 후 여론조사를 보면 신뢰 72%, 불신 25%, 이도저도 아닌 쪽이 3%였다. 얼핏 보면 그래도 대다수가 진상조사 발표를 신뢰한다고 안도할지 모른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28%에 달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불순한 자들, 무책임한 자들, 잘 속는 대중들

    왜 이런 것일까? 우선 두 가지를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불순한 무리들의 선동이다. 대중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때문에 큰 거짓말에는 의외로 잘 속는다. 명백한 거짓말도 목청을 높여 계속 우기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게 대중의 속성이다. 다음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적지 않는 자들의 무책임한 언동이다. 불순한 자들이 집요하게 선동을 계속하고 영향력이 큰 개인 혹은 집단이 그에 편승하게 되면 대중의 ‘잘 속는’ 약점은 더욱 증폭되기 마련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당장의 눈앞의 정략적 이해 때문에 반역적 선동에 앞장섰고 덕분에 불순한 무리들의 선동은 더 성공적으로 퍼져나갔다. 결국 현재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불신은 불순한 자들, 무책임한 자들 그리고 잘 속는 대중들의 합작품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이른바 나름의 합리적 의심의 문제다. 항간에는 “도대체 왜 北韓이 하필 그런 때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이 상존한다. 합조단의 발표를 신뢰하는 쪽도 그런 의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단지 北韓이란 원래 그렇게 황당한 미치광이들이라는 생각을 갖는 정도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황당하다는 것을 뒤집으면 곧바로 불신이 될 수도 있다.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은 조금만 선동하면 “그랬을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너무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공지영씨의 경우, 합리적인 듯 어설픈 의심

    대중만이 아니라 제법 식견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는 지식층에도 이런 혼란이 적잖이 퍼져 있다. 꽤 이름 있는 작가인 공지영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6.2 지방선거에서 유시민을 지지했는데 천안함 사건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왜 보수정권이 선거를 앞두면 꼭 北이 도발을 할까.” “왜 DJ와 노무현 정권 선거에서는 北이 도발을 하지 않았을까.” “北은 자기들이 도발할 때마다 자기들의 적대적인 세력들이 승리한다는 것을 모를까.”

    불순한 무리들의 책동은 언제나 이런 일견 합리적인 듯한, 그러나 어설픈 의심의 틈새를 파고든다. 나름 지식인이라는 자들조차 왜 이런 것일까? 바로 北韓의 전략전술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北韓은 이미 마르크스 레닌주의조차도 버린 지 오래인 사실상의 왕조 국가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의 뿌리는 여전히 레닌과 스탈린을 거치며 정교하게 다듬어진 공산주의 전략전술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그 특유의 전략전술을 살펴보면 北韓의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사실은 그들 나름의 일관성을 가지고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힘의 시험’이라는 개념

    공산당의 전략전술에 ‘힘의 계산’과 ‘힘의 시험’이라는 개념이 있다. 힘의 계산과 힘의 시험은 그 語義(어의)의 유사성 그대로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전략전술적 함의를 갖고 있다. 공산당이 총파업이나 전면적인 봉기 등 본격적인 공세에 앞서 자신의 역량과 상대의 대비태세를 점검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전략전술의 교과서는 ‘결정적 행동’을 취하기 전에 반드시 이러한 힘의 계산과 힘의 시험을 위한 행동을 통해 我他(아타) 쌍방의 역량을 점검할 것을 권하고 있다.

    힘의 계산은 주로 자신의 역량을 가늠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평화적 시위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힘의 시험은 최종공세를 앞두고 상대방의 역량을 점검하는데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힘의 시험을 위한 행동은 대체로 高强度(고강도)이며 때로는 본격 공세 직전의 1차 공격 자체가 되기도 한다. 상대의 취약점이 충분히 드러나고 테스트 행동이 기대 이상의 효과로 상대를 크게 흔든다면 본격적 공세에 곧바로 돌입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상의 개념은 원래 한 국가 내에서의 공산당의 전략전술상의 것이지만, 국가 대 국가라는 대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냉전시기 소련이나 지금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장 민감한 시기를 선택해 의표를 찌르라"

    한편 이상과 같은 목적의 행동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시기선택 문제다. 공지영씨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왜 하필 이런 때에?”라는 의문을 가지듯이 일반적으로 당하는 쪽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공산주의 전략전술의 교과서는 행동선택의 조건을 일단 이른바 ‘과실의 성숙’이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즉 정세가 무르익었을 때를 말하는 것인데 사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조건의 성숙은 그렇지만 시기선택의 문제는 통념 이상의 통찰이 필요하다. 통념으로 볼 때는 결코 그들 자신에게 이로움이 없고 상대편에 오히려 이로운 시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택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기선택의 원칙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인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바로 “주목도가 높은 민감한 시기”라는 기준이다. 즉 어떤 이유로 인해 상대측의 긴장도가 높아지고 內外(내외)의 시선이 쏠리는 시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은 “상대방의 의표를 찌른다”는 것이다. 즉 순진한 눈으로 볼 때는 결코 그럴 리가 없다고 볼 시기에 느닷없이 행동에 돌입하여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기습이다.

    사실 6.2 선거처럼 큰 정치적 이벤트가 있는 시기는 당연히 여러 가지로 호조건에 해당된다. 첫째 이런 시기에는 경쟁 당파 간 긴장이 최고조가 되고 쌍방 지지세력 간 대립이 팽팽해진다. 당연히 약간의 행동만으로도 큰 주목을 끌 수 있다. 둘째 더욱이 그간의 경과에서 잘 드러났듯이, 정치적 이해의 대립 때문에 상대진영 전체가 일치된 대응보다는 여론의 분열이 더 심화되는 상황에 빠져든다. 많은 이들이 “하필 이때”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이중의 노림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때도 대형도발 했다

    시기 문제와 관련해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하는 것은 사실 어리석은 愚問이다. 간단히 말해 北韓은 그때도 도발을 했다. 제1차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에 일어났고 제2차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에 일어났다. 모두 김대중 정권 때 일어난 일이다. 물론 공지영씨의 말처럼 직접적인 선거 시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시기와 관련해 더 기막힌 내용이 눈에 띈다.

    제1차 연평해전 1년 뒤 같은 날 이른바 6.15선언이 있었다. 2002년 2차 연평해전이 일어난 6월 29일은 6.29선언이 있었던 날임과 동시에 韓日 월드컵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해는 노무현이 당선된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이기도 했다. 민감한 시기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는가?

    덧붙여 한 가지 더 살펴보자. 김대중, 노무현은 두 차례 연평해전에도 불구하고 6.15니 10.4니 하는 등의 허무한 선언에 몰두했지만 김정일은 그 쇼의 대가로 퍼주는 돈으로 핵무기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김대중, 노무현이 北韓 김정일을 짝사랑했을지는 몰라도 그의 원칙은 일관돼 있었던 셈인데, 사실 그 점은 김정일이 이미 선군정치라는 개념으로 애초부터 명백히 밝혀놓았던 것이었다.

    결국 공씨처럼 보수 진보 운운하는 것은 남쪽 바보들의 망상이고 김정일은 그 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점을 이해하려면 적과 자기편에 대한 그들의 준칙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北韓에겐 자신의 추종자 外 모두가 敵

    레닌의 볼셰비키는 1905년 러시아 1차 혁명의 결과 제헌의회가 수립되는 등 민주제가 출발했지만 민주정파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온건 민주정파의 입장에서 볼 때 레닌의 이러한 행동은 분명 위기에 처한 짜르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이적행위였다. 실제로 이러한 분열 덕분에 짜르는 결정적 위기를 모면하고 민주세력을 일단 패퇴시킬 수 있었다.

    한편 1917년 2차 러시아 혁명 당시에도 레닌은 혁명적 패배주의라는 전략으로 독일과 싸우는 러시아의 패배를 외쳤다. 더욱이 당시 레닌은 적국 독일이 제공한 밀봉열차를 통해서 귀국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보자면 당연히 이적행위였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北韓의 행동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민주당 등의 입장에서 볼 때 천안함 사건은 일단은 한나라당에 유리한 쓸데없는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레닌의 볼셰비키가 짜르나 적국 독일에 이로운 이적행위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처럼 北韓도 마찬가지다. 볼셰비키처럼 北韓도 자신의 직접적 추종세력을 제외한 모두가 결국에는 敵이다.

    당연히 北韓이 南韓의 민주당 따위의 입장을 배려해야 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민주당 등은 정략적 이해 때문에 시키지 않아도 北韓의 나발수 노릇까지 하지 않았는가.
    알아서 기는데 더 무엇을 고려할 것인가?

    北韓의 ‘힘의 시험’ 책동에 여지없이 약점 드러낸 南韓

    천안함 사건은 공산주의 전략전술상 ‘힘의 시험’의 전형적인 사례다. 그들은 나름의 전략전술적 원칙에 따라 시기를 선택하고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드러났듯이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었다.

    南韓의 야당들은 정략적 이해 때문에 노골적으로 親北대열에 합류했으며 국론은 크게 분열되었다. 6.2 지방선거 결과도 고무적이다. 南韓 국민의 상당한 정도가 여전히 정부의 발표를 불신하고 있으며 참여연대라는 단체는 거리낌 없이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 뭘 모르는 일부 종교인들은 北韓에 대한 지원재개와 남북정상회담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北韓은 손해를 본 게 없다. 南韓은 北韓에 대해 결코 군사적 응징을 못하고 있다.
    응징은커녕 사실상의 인질인 개성공단도 그대로다. 北韓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도 여전히 北韓을 감싸고 있다. 당연히 안보리 결의의 전망도 불투명하다.

    北韓은 어뢰 한방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우리를 시험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험에서 약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공산주의 전략전술의 교과서는 ‘힘의 시험’은 본격적인 공세의 前 단계임을 가르치고 있다.
    다음 단계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