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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참모진 교체 뒤 '서민경제 살리기'를 우선 과제로 던진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현장을 찾았다.
매주 열리는 비상경제대책회의 대신 현장 방문을 택한 것인데 이 대통령이 찾은 곳은 바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미소금융(무담보 소액신용대출) 사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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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서민경제 활성화 사업인 미소금융의 운영 실태를 직접 점검하기 위해서다. 미소금융사업은 신용 부족으로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이 어려운 서민들에게 창업이나 운영자금을 부담보.무보증으로 지원하는 소액대출사업이다. 대기업들 출자로 작년 말 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이 대통령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비롯됐다. 이날 회의에서 이 대통령에게는 각종 보고서가 올라갔다. 보고서를 살피던 이 대통령은 미소금융과 관련한 보고 내용에서 시선을 멈췄다.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표적 사업인데 실적이 매우 저조했기 때문. 이 대통령은 바로 "은행 지점 내듯 좋은 사무실, 거창한 사무실을 만들려니 (지점 개설이) 더디고 서민의 접근이 어렵다"고 지적하고 "재래시장, 소상공인들이 접근하기 쉽게 이분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점을 개설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지금까지 99억2000만원 가량 대출됐는데 향후 10년 안에 2조원이 서민금융으로 활용되려면 연간 (대출규모가) 2000억원은 돼야 한다. 1200여명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데 이 수준이면 아직 서민이 체감하는데 부족하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또 "미소금융이 대부분 대기업 출자인데, 본인이 아니다 보니 미흡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대기업 CEO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며 "공정위 등 금융당국이 주로 담당하지만 국민 복지 차원에서 해당 부처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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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진에게 이런 지시를 내린 이 대통령이었지만 현장 상황을 직접 파악해봐야 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읽힌다. 김희정 대변인은 "국무회의에서 미소금융에 대해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 하라'는 지시를 했고 같은 맥락에서 현장을 점검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뜻이 반영돼 (미소금융 사업장을) 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참모진들의 말처럼 이 대통령은 이날도 현장에서 계획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사업장에서 200m 거리의 오찬 장소까지 가는데 만 40분이 소요됐다. 이동하면서 재래시장 상인들과 일일이 대화를 하는 것은 물론 악수를 청하고 함께 사진 찍기를 원하는 상인들의 요구도 다 응해주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을 핸드폰으로 찍으려다 배터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도 제법 있었다.
동행한 김 대변인이 "이 대통령을 옆에서 본 느낌은 저희한테 업무를 받으실 때 보다 (현장 방문 때) 훨씬 기뻐하는 것이었다. 역시 현장을 많이 다녀야 겠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할 만큼 이 대통령은 현장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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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참모진에게 가장 먼저 던진 메시지도 "전체적으로 서민을 위한다는 것이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실질적으로 도움 되게 하라"는 것이었고, 이날도 이 대통령은 직접 나섰다. 10년 째 옷가게를 하고 있는 정모(42.여)씨의 대출 신청 서류를 보던 이 대통령은 정씨가 모 캐피탈 회사에서 대출한 기록을 보고 진동수 금융위원장에게 "(캐피탈 회사의) 이자율이 얼마냐"고 물었다.
금융권 대출이 어려울 만큼 생활이 힘든 정씨가 대기업 회사의 대출 이자가 높을 경우 갚기 힘들 것이라 판단에서 물은 것인데 이자율이 40~50%란 답변이 나오자 이 대통령은 "사채하고 똑같잖아. 사채 이자 아니냐"며 "이 사람들이 구두 팔아서 40% 넘는 이자를 어떻게 갚느냐. 일수 이자보다 더 비싸게 받아서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정씨에게는 "(정씨가 대출받은 캐피탈이 소속된) 그룹이 미소금융도 하지요?"라고 물은 뒤 "미소금융에서 돈 빌려서 캐피탈 이자 부터 갚는 걸로 해봐요"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정씨도 "아!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라고 반색했다.
이 대통령은 재차 정씨에게 "나는 미소금융에서 빌려서 이것(정씨가 캐피탈에서 빌린 대출금) 부터 좀 갚았으면 좋겠다"며 "그리고 남는 것으로 운영자금을 구상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 대통령은 거듭 "캐피탈 이자가 이렇게 비싸요?"라고 물은 뒤 "큰 재벌에서 이자를 일수 이자 받듯이 이렇게 받는 것은 사회 정의상 안 맞지 않느냐"며 "이렇게 높은 이자를 받고 캐피탈이 돈을 빌려둔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한 뒤 "내가 현장을 제대로 몰랐다는 것과 똑같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이 하는 캐피탈이 이렇게 이자를 많이 받으면 나쁘다고 본다"며 "장사하는 분들이 용을 써서 일하는데 이렇게 이자를 많이 받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옆에 있던 정준양 포스코 회장을 보면서 "(미소금융이) 대기업이 하는 일중에 작은 일이어서 소홀히 할 수 있다. 대기업들이 애정을 갖고 했으면 좋겠다"며 "(미소금융이라는 것이) 이자를 좀 낮춰서 빌려주는 것일 뿐인데 대기업도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인식만 하면 미소금융이 참 잘 될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 회장도 "대통령이 중산층.서민과의 소통과 지원책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들도 앞장서서 미소금융을 더 열심히 하겠다"며 "아직까지는 진도가 미흡한데 하반기 조금 더 기준을 조정해 미소금융이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도록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