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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소치 동계올림픽을 잡아라!"
올해 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토리노 세계선수권에서 1,2위를 차지, 자타공인 '피겨여왕'에 등극한 김연아가 오랜 휴식을 끝내고 마침내 기지개를 켰다.
23일부터 25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특설링크에서 열리는 '삼성 애니콜 하우젠 2010 올댓 스케이트 서머' 아이스쇼에 참가키로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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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아이스쇼는 김연아의, 김연아를 위한 대회다. 총연출은 김연아의 안무 코치 데이비드 윌슨이 맡았으며 김연아가 광고 모델로 활동 중인 삼성하우젠과 애니콜이 공식 후원사다.
참가 선수 중에는 김연아의 소속사 올댓스포츠 소속인 곽민정과 김해진이 포함됐다. 물론 이번 공연의 주최/주관사는 올댓스포츠다.
이번 아이스쇼는 공식대회는 아니지만 김연아에겐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새 '갈라 프로그램'인 '블릿프루프(Bulletproof)'를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며, 자신의 롤모델이 되어 준 미셸 콴과 기념비적인 듀엣 공연을 펼치게 됐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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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팝가수 머라이어 캐리의 히트곡 '히어로(Hero)'를 배경으로 선보일 김연아와 미셸 콴의 듀엣 공연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안무를 맡은 데이비드 윌슨은 "어린 시절 미셸 콴을 보고 성장한 김연아와, 김연아의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린 미셸 콴이 서로 영감을 주고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듀엣 무대를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영웅'과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듀엣 무대를 펼치게 된 김연아의 심정은 어떨까. 같은 동양계인 탓에 미셸 콴의 각별한 관심을 받아온 김연아는 이날 공개 리허설과 기자회견장에서도 유독 돈독한 관계를 보였다. 미셸 콴의 눈짓과 건네는 말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우상이었던 스타와의 교감을 즐기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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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연아는 롤모델로 삼았던 미셸 콴보다 너무 빨리 성장했다. 피겨스케이팅 종목에서 이미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김연아는 더이상 이룰 목표가 없다.
미셸 콴은 현역 시절 전미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를 휩쓸면서도 올림픽 메달과는 인연이 없어 줄기차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정상의 위치를 고수해 왔다. 역으로 금메달이라는 이루지 못한 목표가 있었기에 미셸 콴이 오랜 시간 챔피언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
반면 김연아에겐 이같은 절실한 목표가 사라졌다. 남은 건 연패달성에 대한 기록 뿐이다. 목표를 상실한 탓인지 김연아의 눈빛에서도 어떤 각오보다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만이 느껴졌다.
공개 리허설에도 링크장을 휘저으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 미셸 콴과는 달리 김연아는 자주 앉아 쉬는 모습을 노출하며 다소 활기를 잃은 듯한 표정마저 읽혀졌다. 물론 윌슨의 지도가 시작되자 언제그랬냐는 듯이 적극적으로 안무를 따라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능동적으로 분위기를 이끄는 미셸 콴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을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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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장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는 느껴졌다. "하반기에 펼쳐지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건너뛸 예정"이라는 당초 방침을 재확인 한 김연아는 "이번 아이스쇼를 제외하면 올해 김연아 선수의 경기 모습을 볼 기회는 전혀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은 구체적으로 결정난 내용이 없다"며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혀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여전히 김연아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 중임을 드러낸 대목이다. 내년 3월에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참가 의사를 밝힌 김연아가 이번 그랑프리 대회에 불참할 경우 공백 기간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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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선수는 각종 순위 경쟁 대회에 참가, 자신의 기량을 연마·발전시키는 한편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음으로서 정신적으로 재각성하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즉 반복 훈련과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자신의 몸에 경기 메카니즘을 각인시키고 다른 선수와의 경쟁을 통해 이를 재점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끊임없는 노력과 경기 참가가 필수적인데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대회 참가를 등안시 할 경우 선수의 기량은 퇴화할 수 밖에 없다. 만일 김연아가 이번 시즌을 접고 곧바로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면 상식적으로 볼 때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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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라이벌' 아사다 마오는 이변이 없는 한, 두 번의 정규대회와 한 번의 파이널대회 출전이 가능한 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 정상적으로 대회를 치르며 컨디션을 조절한 마오와 한 시즌을 건너 뛴 김연아의 대결은 출발부터가 다르기에 김연아의 상당한 고전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이같은 김연아에게 '여제' 미셸 콴의 방한은 큰 힘이 돼 줄 수 있다. 절정의 기량을 오랫동안 유지해 온 미셸 콴의 조언과 격려가 의외로 김연아에게 새로운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이번 아이스쇼를 계기로 4년 뒤 열리는 소치 동계올림픽에 대한 목표를 김연아가 품게 될 가능성도 있다.
과연 김연아가 미셸 콴처럼 피겨를 지배하는 위대한 선수가 될지, 아니면 피겨에 끌려다니는 반짝 선수에 그칠지 김연아의 다음 행보에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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