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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이성을 상실했고, 누리꾼은 광기에 빠졌다.
38살의 젊은이가 예상치 못한 전염병에 걸려 사경을 해매는 위중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소식에 ‘팩트’를 생명으로 여겨야 할 언론은, 어느 때보다 신중한 사실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독’이란 욕망에 눈이 어두워 ‘뇌사’와 ‘사망’이란 초대형 오보를 냈다.
사랑하는 아들과 가족이 듣도 보도 못한 전염병에 감염돼 위중한 상태에 빠진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든 환자 가족의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오보가 주요 종합일간지와 대형 통신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잃어버린 한국 언론의 저급함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미친 건 언론만이 아니다. 누리꾼들은 사람의 죽음을 조롱과 저주의 대상으로 삼는 극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속칭 진보를 자처하는 누리꾼들은, 자신들이 신주 모시듯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목숨이 위독한 환자에게 “뒈져버리라”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담을 퍼부었다.
메르스에 감염돼 서울대병원 격리병상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35번 확진자(서울삼성병원 의사) 박모씨가 뇌사에 빠졌다가 사망했다는 오보가 나왔다.
35번 환자 뇌사설은 이날 오후 7시 50분께 한국일보가 단독으로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한국일보는 35번 확진자인 박모씨의 뇌 활동이 모두 정지돼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가족들이 장례절차를 밟고 있다고 보도했다. -
그러면서 “12일까지 박씨가 버티기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는 서울시 관계자의 말과, “이날 오전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젊은 친구인데 안타깝다”는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의 말을 각각 인용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박씨에 대해 30대이고 지병도 없었으며, 가벼운 알레르기성 비염 정도만 앓던 사람이 뇌사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는 보건당국도 예측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한국일보는 “환자의 가족들이 ‘박원순 시장이 스트레스를 줘 면역력이 약해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약 40분 뒤에는 YTN이 오보를 냈다.
YTN은 이날 오후 8시 32분쯤 35번 환자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YTN은 의료계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박씨의 뇌 활동이 오늘 오후부터 사실상 정지됐다. 오늘 저녁 끝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면서, “어제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오늘은 혈액순환을 강제로 해주는 장치인 에크모를 착용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고 보도했다.35번 환자에 대한 뇌사 혹은 사망 오보는 인터넷 상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
보수논객인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이날 밤 트위터에 35번 환자 박씨의 뇌사 소식을 다룬 오보 기사를 링크로 올리면서, “서울시가 또 허위사실로 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군요”라고 썼다.
변희재 대표가, 35번 확진자 오보와 관련돼 서울시의 책임을 묻는 이유는, 오보를 낸 매체들이 대부분 서울시관계자와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의 말을 빌려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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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 대표는 이에 대해 “35번 의사분 뇌사 상태라는 허위기사, 서울시관계자의 말로 시작됐는데, 이 관계자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희재 대표는, 35번 환자에 대한 뇌사 및 사망 오보를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며, “검찰은 즉각 서울시를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 대표는 “35번 의사 뇌사 상태라는 서울시와 모 중앙일간지 허위기사, 메인에 좋다고 내걸었던 친노포털, 기사 슬쩍 내려놓고는 정정기사도 안 올린다”며 일부 포털의 무성의한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변 대표는 이어 “서울시와 친노포털의 뇌사 선동 거짓 보도를 본 가족, 친지, 친구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변 대표는 35번 환자 박씨가 격리병상 입원 중 종합편성채널 인터뷰에 응해 박원순 시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서울시와 친노포털의 뇌사 허위보도에 산소호흡기 떼고 방송 나와 마이크 잡아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35번 환자 상태를 둘러싼 오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해명자료를 배포하면서, “35번 환자가 뇌사상태라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현재 호흡곤란이 있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을 뿐, 생명이 위독한 상황은 아님을 주치의를 통해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대책본부는 “환자 상태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로 환자 가족을 포함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조장했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이보다 앞선 10일 오후에는, 투병 중인 35번 확진자에게 저주를 퍼붓는 게시글과 댓글들이, 좌파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에 올라왔다.
‘박원순 시장에게 악담 퍼붓던 35번째 의사환자 상태 의중이라네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쓴 누리꾼은, 환자 박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반기기라도 하듯, 조롱을 쏟아냈다.
이 누리꾼은 “종편 기어나와서”, “입건방 함부로 떨면” 등의 표현을 쓰면서, 환자 박씨를 원색적으로 조롱했다.
“산소 호흡기 장착이라고 합니다. 종편 기어나와서 악다구니 쏟아 내면서 박원순이라는 사람이 그런짓 잘하는 거라고 막말 퍼붓더디, 입건방 함부러 떨면 안된다는 걸 반면교사로 보여주는거 같습니다”
-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곧 이 글에는 환자 박씨를 저주하는 댓글들이 붙기 시작했다.
상당수의 누리꾼들은 게시글 작성자와 같이, 환자 박씨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사실을 놀이감 다루듯 대했다. 심지어 일부 누리꾼은 환자 박씨를 유기견보다 못한 사람에 비유하는가하면, “그냥 고통 받고 뒈졌으면 좋겠다”는 사람으로 해서는 안 될 막말도 내뱉었다.
이들은 투병 중인 박씨의 상태를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위중한 상태를 즐기는 듯한 비이성적 태도를 보였다.
일부 누리꾼이 “사람이 아픈데 이런 식의 비아냥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 “생명은 정치적인 잣대로 놀림감이 될 만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반박 댓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다른 누리꾼들로부터 큰 공감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다른 누리꾼들은 반박 댓글에 “미운사람까지 걱정해줘야 그게 인간다운 거라면 차라리 인간답지 않겠다”며, 재반박 댓글을 달았다.
“아마도 살아나면 또 악다구니 쏟아낼 것”
“저 사람이 무사하길 빌어줄 시간에 저는 버려지는 유기견들을 떠올릴 것”
“빨리 쾌차해서 감옥이나 감옥”
“아무감흥도 없다. 지 팔자 지가 꼰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그냥 고통 받다가 뒈졌으면 좋겠다”
"뒈지거나 그에 준하는 고통을 받아야“
“타인 목숨 귀한 줄 모르고 정치질이나 하던 의사에게까지 베풀 수 있을 만한 측은지심은 없다”
“이래서 사람은 주댕이 함부로 털면 안됨”
- 인터넷 커뮤니티 오유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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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박원순 시장은 지난 4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1일 확진 판정된 35번 환자는 29일부터 증상이 시작돼 31일 오후 병원에 격리됐다”며, “해당 환자는 감염이 된 상태에서 30일 1,565명이 모임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했고, 서울시는 이들 명단을 모두 확보, 자발적 자택격리 조치를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의 심야 긴급기자회견에 대해 환자 박씨는, 4일 밤 프레시안에 이어 5일 아침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경미한 증상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재건축조합 집회에 참석했다는 박원순 시장의 발언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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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박씨는 “대권을 노리는 박원순 시장이 메르스 사태라는 국가적 재난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이용하고 있다”며, “이런 사람을 어떻게 시장이라고 믿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박씨는 박원순 시장이 자신을 의사로서의 직업윤리와 양심을 저버린 사람처럼 표현했다며, 박 시장의 기자회견은 “국민의 불안감을 초래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박씨는 입원 중인 상태에서도 언론 인터뷰에 응하면서, 자신이 메르스에 감염된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당히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박원순 시장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오유’에서 벌어진 누리꾼들의 막말 사건은,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누리꾼들의 천박한 의식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위중한 상태에 놓은 사람을 조롱하고 심지어 그의 죽음을 반기는 태도까지 보였다는 점에서, ‘인격살인’이나 다름이 없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오보를 낸 YTN은 11일 밤 “35번 환자는 에크모를 착용 중”이라고 짤막한 정정보도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