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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회동 사흘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으로 정국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문 채 추가 언급을 삼가고 있다.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천정배 대표, 박주선 최고위원, 장병완·김성식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는 일제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화제삼아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하지만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혼자 교육 문제에 관해 길게 이야기하다가 모두발언 말미에 "국민통합을 위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도록 정부의 조치를 촉구한다"고 한 마디 덧붙이는데 그쳤다. 분량으로 따지면 전체 모두발언의 38분의 1 정도에 그쳤다.
최고위원회의 직후에도 취재진을 만나 현안에 대해 입장을 언급하는 관례를 무시하고 묵묵무답으로 국회를 나섰다. "이 (임을 위한 행진곡)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훈처장 해임촉구결의안을 내는 것에 동의하는지" 취재진의 질문에 쏟아졌지만 "아까 말씀드렸다. (언급) 안 할 것"이라는 말만 남겼다.
이 정도면 '의도된 침묵'으로 볼 수 있다. 38석 제2야당의 대표가 취재진과 거리를 유지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 정국에서 침묵을 유지하는 것에 어떠한 의도가 담겨 있는지를 놓고 분분한 추측이 제기된다.
민생·경제·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정국이 조성돼야 하는데 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정쟁으로 정국이 흐르고 있는 것에 대한 못마땅한 심리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철수 대표는 총선 기간 내내 '문제 해결 정당'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은 제3당이 '문제 해결'에 나서기 어려운 이슈에 속한다.
특히 이러한 이념 이슈의 찬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쟁은 고정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는 보수정당 새누리당과 친노·친문·운동권정당 더불어민주당이 지지층 결집을 하기에 유리하다. 확고한 고정 지지층 없이 현안과 정국 흐름에 따라 정당 지지율이 널뛰기를 하고 있는 국민의당으로서는 유리할 게 없는 흐름이다.
이날 기사가 안 될 줄 알면서도 국민대표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고, 교육과 미래일자리 문제에 대해서 길게 메시지를 재탕삼탕한 것은 이러한 불만 심리의 표출이라는 관측이다.
내년 12월 대선을 겨냥해 지지층을 확대하고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데, 특정 권역의 여론에 매몰되는 이슈라서 의도적으로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광주를 제외한 여타 지역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제창과 합창을 막론하고 그 곡을 제대로 부를 줄 아는 국민도 드물다.
야권의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 표심은 호남 표심대로 굳히고 유지해가면서 여타 권역과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해나가야 하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로 차기 대권 주자가 지나치게 큰 목소리를 내는 게 장래를 생각하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대표는 최고위 직후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을 뒤로 한 채 "최고위원회에서 협의한 결과, 원내에서 진행하기로 했다"며 "그 정도 하자"고 말을 아꼈다. 호남을 대표하는 박지원 원내대표와 공개 발언의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가 한줌 '운동권'들 사이에서만 폭발력 있는 이슈에 불과하기 때문에 언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철수 대표는 친노·친문·운동권 정당인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할 때부터 '운동권'들의 공격에 대해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해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낙천(落薦)당한 정청래 의원이 지난 2월 국회에서 안철수 대표를 겨냥해 "운동권을 비판하는 분들, 5·18 때 어디서 무얼했나? 6월 항쟁 때 뭐했나?"라고 비난했을 때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대부분의 중도 성향 국민들이 '운동권'들의 "그 때 뭐했나" 식의 매도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운동권'들이 민중의례 때 사용하는 곡으로서, 광주 권역 외의 일반 국민들은 사실 그 곡이 제창되든 합창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교육과 미래일자리 등을 강조한 자신의 메시지를 가려가면서까지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