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承晩과 盧泰愚를 빼고

    독도와 韓中수교를 이야기할 수 있나?


    趙甲濟 
       

  •   飮水思源이란 말이 있다.
    우물 물을 마시는 사람이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獨島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평화선으로 독도를 영토로 확보한 이승만을 빼고, 韓中수교 20년을 이야기하면서 盧泰愚 당시 대통령의 공적을 언급하지 않는다.

    역사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다.

    역사는 오늘의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현실을 누가 만들었는가를 가르쳐준다. 이 대단한 나라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고 많은 先人들과 恩人들의 노력과 도움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게 역사이다. 역사는 사람들을 겸허하게 만든다. 역사적 교양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오만하다.
     
      전교조 등 좌익세력은 젊은 세대에 背恩忘德을 가르친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미워하고 미워해야 할 사람들을 존경하도록 가르친다. 이런 亡國的 교육을 받은 세대가 한국 사회의 主流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무역액은 2011년에 2206억3000만 달러였다. 1992년 수교 당시 63억8000만 달러에 비해 약35배가 증가했다. 중국은 2004년부터 한국의 최대 交易(교역)상대국이 되었으며, 2009년부터는 전체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과 일본을 합한 것보다 커졌다. 對中 무역수지는 1992년을 제외하고 흑자를 지속했으며 통관기준으로 2011년엔 477억8000만 달러 흑자였다. 2011년의 전체 무역수지 흑자는 321억4000만 달러였다.
      
      지난 20년간 對中 투자는 20.7배 증가했다. 1992년 1억4000만 달러 수준이던 對中 투자는 2010년엔 29억2000만 달러로 늘고, 투자 누적액은 2010년 말 기준으로 355억8000만 달러로 對美 투자 누적액(373억7000만 달러)과 비슷하다. 한국의 3위 투자 대상국은 중국의 일부인 홍콩(122억5000만 달러)이다.
      
       부시 정부의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국장을 지낸 한국계 미국인 빅터 차는 최근 저서 '불가능 국가'(The Impossible State)에서 韓中 수교야말로 두 나라의 관계를 결정한 2大 사건 중 하나였다고 평가하였다. 다른 하나는 1950년 10월의 중공군 개입이다. 빅터 차는 兩國의 공동 번영에 큰 기여를 한 韓中수교의 공로자로 한국의 盧泰愚 대통령과 중국의 鄧小平을 꼽았다.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자, 盧 대통령은 이를 對中수교의 기회로 삼았다. 국제사회가 중국을 제재할 때 盧 대통령은 이를 말리는 입장을 취하였다. 특히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온건한 대응을 부탁하였다. 우리는 수교가 안 된 상태에서 열린 1990년 북경 아시안 게임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盧 대통령은, 다른 아시아 나라 지도자들에게 게임을 보이콧하지 않도록 로비를 했으며, 2만2000명의 한국 관광객들을 보냈다. 현대 등 자동차 회사들은 400대의 자동차를 중국에 제공하였다. 한국 기업들은 1500만 달러의 협찬 광고를 냈다. 한국이 공식, 비공식으로 중국을 지원한 금액은 약1억 달러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은 위기 때 도와준 한국을 영원히 잊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두 나라는 곧 무역대표부를 설립하고, 다음 해 중국은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였으며, 그 다음해 國交를 맺었다. 중국이 그때까지 유지해오던 '원 코리아 정책'을 '투 코리아 정책'으로 바꾼 것이다. 등소평이 북한정권의 반발을 누르고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은 경제적 이유에서였다. 개방전략에 나선 중국으로선 무역과 투자면에서 한국이 매력적이었다. 북한은 경제적 부담만 되었다. 한편 서울올림픽 성공의 연장선상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한 북방정책은 공산권과도 경제적으로 상호 이득이 되는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이어서 등소평의 전략과 맞아 떨어졌다.
      
      북한은 중국 정부에 북경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는 한국 팀의 규모를 축소시킬 것, 태극기 게양을 불허할 것, 한국 회사의 광고를 금지시킬 것 등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중국은 북한에 싼값으로 원유, 비료 등을 수출하였는데, 韓中 수교 직후 특혜를 취소하였다. 中北 무역액은 1993년의 9억 달러에서 이듬해 5억5000만 달러로 줄었다.
      
      중국은 북한정권과의 군사동맹은 유지하고, 한국과 미국의 對北압박에는 제동을 걸고 있지만 韓中 경제 교류가 너무나 엄청난 규모로 커지고 있어, 지도부도 최근엔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 불가피하며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한다.
      
      韓中日 세 나라의 국가총생산을 합치면 미국과 유럽연합보다도 많다. 이 세 나라는 경제적으로는 밀접하지만 영토 및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다. 외교분쟁이 군사적 충돌로 악화되면 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다.
     
      韓中日 세 나라는 경제발전으로 영향력이 큰 나라가 되었지만 지도력이 큰 나라는 아니다. 지도력은 國力과 國格과 도덕성에서 생긴다. 영향력만 크고 지도력이 약하면 갈등이 풀리지 않는다. 自重自愛라는 말이 생각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