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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없는 민주당, 진보 없는 진보당
18대 대선에서 5060은 민주통합당에는 민주와 통합이 없고
통합진보당에는 통합과 진보가 없음을 한 눈에 꿰뚫어봤다.최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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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독의 정식 명칭은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이었고,
옛 동독의 정식 명칭은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이었다.또한 한국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고,
북한의 정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다.옛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수립된 북한과 옛 동독은 민주주의에 대한 근원적 열등감을 명분적(말장난) 우월감으로 호도하려고 그럴 듯하게 창씨개명(創氏改名)한 것이다.
권력을 독점한 공산당은 일당 독재를 영구화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궤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공산독재)가 부르주아의 독재(자유민주)를 대신하는 진정한 민주’라고 대대적인 세뇌 작업에 들어갔지만,
대외적으로는 차마 독재라는 말을 쓸 수 없었다.
'독일공산독재국', '조선공산독재국' 이렇게 당당히 밝혔으면 우선 대내적으로 도무지 말이 먹히지 않았을 것이고, 다음으로 서쪽이나 남쪽에선 유치원생도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았을 테니까!여말선초(麗末鮮初)의 성리학은 개혁과 민생의 빛나는 사상이었다.
어떤 신생 왕조의 이념에도 뒤지지 않는 푸릇푸릇한 철학이었다.
그러나 성리학은 조선 중기부터 백성의 삶과 동떨어지기 시작해서 권력층의 기득권을 합리화하는 욕망의 창과 방패로 전락했다. 그리하여 조선팔도에 실질은 없고 명분만 가득하게 되었다.
조선은 엽기적인 명분사회로 전락했다. 그 결과는 두 번의 큰 전란과 허망한 망국, 아주 작은 전투 한 번도 없이 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식민지화였다. 2천만 오합지졸 백의민족의 붓과 활과 지게막대기는 근대화한 고작 2천 일본군의 대검과 총과 대포 앞에 와들와들 떨었다.
군대와 경찰이 얼마나 허약했던지, 강아지 한 마리도 신고하고 들어가야 할 구중궁궐에서 곤히 잠자던 국모가 담이 무너진 여염집인 양 뛰어든 일개 왜놈 깡패에게 죽음을 당했고(1895),
졸(卒) 하나도 감당 못하는 장기판의 왕처럼 외통수에 몰린 국왕은 아라사(러시아)의 대사관으로 피신했다(1896). 주자가례를 쫙 펼쳐 놓고 논어맹자를 마구 흔들며 아무리 준엄하게 나무라야, 생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 같던 일본이 한 발짝 물러나는 척도 할 리 없었다.해방 후 조선 중기 이후의 성리학이 한국에선 자유민주로 바뀌었고 북한에선 인민민주로 바뀌었다.
둘 다 용어 자체는 훌륭하다. 뿌리 깊은 명분 사회라, 남북 양쪽에서든 다투어 민주를 내세웠다.
문제의 핵심은 실질이었다. 현실이었다. 1948년 한국은 보통(평등) 비밀(자유) 투표로 자유민주의 역사적 걸음을 내딛었지만, 소련군 대위가 일약 최고 권력자로 낙점된 북한은 애당초 인민도 없었고 민주도 없었다.
조선시대나 일제강점시대보다 퇴보했다. 인민(노동자농민)은 공산 노예로 전락했고, 민주(다수의 지배)는 전체주의로 전락했다.한국의 민주당은 자유민주 체제의 비판세력으로 건국 후 약 30년 동안 만만찮은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그러나! 문화권력은 이미 1980년대부터 자유민주보다 사회민주 또는 인민민주로 넘어갔고,
정치권력은 1990년대부터 (자유/사회/인민)민주의 통일전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
그것은 문화권력이 사회민주도 아닌 인민민주로 넘어가던 시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문화권력을 장악한 주체사상파는 인민민주라는 말은 절대 내세우지 않고, 한국인은 민주라면 자유민주라는 것밖에 모른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사악하게 웃으며, 그냥 민주를 줄기차게 내세웠다.
또한 공화적 개념인 국민 대신 계급적 개념인 민중(노동자농민)을 집요하게 조직적으로 퍼뜨리고,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의 애국적 반공을 매국적 친일본심과 반민족적 독재생얼로 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한편 북한 노동당에겐 눈 같이 흰 민족 외투를 선사하여 북한 주민의 노예화를 얼렁뚱땅 얼버무렸다.
그래서 북한인권만 문제만 나오면 저들은 먹던 꿀도 왁 뱉어내고 귓구멍으로 뭉클뭉클 연기를 피우며 발끈한다. 그것은 그들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와중에 슬그머니 민주당에서 민주가 사라졌다.늦어도 2011년부터 친북좌파 문화권력은 '희망 2013 승리 2012' 정치공작에 들어갔다.
이명박의 기회주의는 그들에게 좋은 밥이었다.
집권하자마자 백만 촛불에 권위의 수염이 홀랑 타버린 이명박은 5년 내내 남북합작의 쌍욕을 해마다 10의 100승 번은 족히 듣고서도 계속 아침이슬을 나직이 읊조리며 방송과 인터넷과 교과서를 저들에게 온전히 맡겼다. 절호의 기회였던 종편방송도 지지부진하다가 새마을방송보다 못한 사랑방방송으로 만들었다.
대신 자신에게 쌍욕을 절대 안 하는 정통우파는 나 몰라라 하고 당내 권력 장악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다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이명박당은 2011년 보궐선거에서도 참패했다.
이명박당으로선 도저히 안 된다는 게 명명백백해졌다.2012년 마침내 박근혜당이 떴고 총선과 대선 모두 이겼다. '
희망 2013 승리 2012'는 그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박근혜당이, 대한민국이 차지했다. -
총선 때만 해도 범 6.15파는 박근혜당을 이명박당과 똑같다고 보고 승리를 확신했다.
저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대중 매체를 총동원하여 막말과 욕설을 종횡무진 구사하며 선전선동을 퍼부으면 안철수에게 환호하는 열정적인 대학생처럼 국민이 와와 따라올 줄 알았다.
그래서 대담무쌍하게 범좌파 야당대통합을 추구했다. 과거 종북노선 차이로 민노당이 두 개로 갈라졌는데, 종북노선을 노골적으로 표방한 당의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스스로 추진했던 한미FTA, 제주해군기지건설도 진보 없는 진보당이 주장하는 대로 고스란히 받아들였다.이에 대해, 대중매체의 변두리에 맴돌고 있었지만 정통우파는 애국심으로 대동단결하여 즉각 적중률 높은 진실의 화살을 퍼부었다. 선거의 여왕도 황금 기회를 재빨리 낚아챘다.
여론조사와는 판이하게 저들은 2012 총선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6.15파는 대선 승리를 확신했다.
안철수가 있었고 조국과 공지영과 진중권이 있었다. '남측 정부' 총사령관 백낙청이 있었다.
90% 저들 편인 대중매체가 있었다. 최첨단 신무기 SNS가 있었다. 1% 통진당도 있었다.
오차 범위라고 볼 때 1%는 당락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1%는 마이너스 2%로 작용했다. 왜?2030대도 30% 정도는 민주통합당에 민주와 통합이 없고 통합진보당에 통합과 진보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민주는 조작과 꼼수, 거짓과 협박, 떼법과 선전선동에 의한 군중양떼몰이이고,
그들만의 진보는 '공산독재세습만세, 적화통일만세' 퇴보이고, 그들만의 통합은 국민 분열과 정통우파 증오와 끼리끼리 불그스레 통합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5060은 70%가 한 눈에 꿰뚫어 봤기 때문이다. -
민주통합당이 인민민주와 결별한다는 것을 당헌에서 명시하고,
곧 국가보안법 존중을 당헌에서 명시하고,
통합진보당이 대한민국의 역사야말로 세계가 찬탄하는 빛나는 진보요,
북한이야말로 UN의 190개국이 8년 연속 손가락질하는 캄캄한 퇴보임을 당헌에 명시하거나
옛 서독의 예를 따라 스스로 당을 해체하지 않으면,
조선의 양반이 삼강과 오륜을 존중하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헌법이 명시한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국민은
의구심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