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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각각 '충청 홀대론' '호남 소외론' 등을 내세우면서 정국이 때아닌 지역감정 블랙홀에 빠져들 조짐이 보인다.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우리 정치권의 '전가의 보도'이지만, 올해는 이렇다할 선거도 없는 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충청 홀대론'은 충남 청양 출신의 새누리당 이완구 전 원내대표가 국무총리로 지명되면서 불거졌다.
당시 당권 경쟁을 하고 있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 통합을 하려면 당연히 호남 인사를 (총리로) 발탁했어야 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충청권 지역지를 중심으로 소란이 일자, 문재인 대표는 이튿날 긴급 경제 관련 기자회견 직후 취재진과의 문답 과정에서 "그 분(이완구 후보자)이 충청 출신이라는 점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다"라며 "충청 분들에게 서운함을 드렸다면 송구스럽다"고 해명했다.
문재인 대표의 해명으로 잠복했던 '충청 홀대론'은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혹독한 인사청문회 와중에 다시금 터져나왔다.
새정치연합의 전북도당위원장인 유성엽 의원이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강희철 충청향우회 명예회장을 몰아붙이자, 강 명예회장이 "충청도에서 총리가 났는데 호남 분들이…"라며 불만을 표한 것이다.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대전 동구)도 12일 인사청문특위에서 경과보고서가 채택된 직후 "문재인 대표가 충청 총리는 안 된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는) 그러한 기조가 깔려 있다고 본다"며 "(야당의 반대는) 충청도 출신 총리에 대한 불만"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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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새누리당의 '충청 홀대론'에 대해 새정치연합은 '호남 소외론'으로 맞불을 질렀다.
새정치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은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광주광역시에 올해 9월 개관할 예정인 아시아문화중심전당을 지원하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이 교문위 법안소위를 통과한지 두 달이 넘도록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며 "새누리당이 이 법은 광주법이라 안 된다고 한다"고 심지에 불을 당겼다.
이어 "문화전당은 (경상북도) 경주의 역사문화중심도시와 함께 조성하기로 한 것"이었다며 "이제 와서 경주는 되고 광주만 브레이크를 거는 이유가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문재인 대표도 이례적으로 최고위원 모두발언이 한 바퀴 돈 뒤 다시 마이크를 잡고 "주승용 최고위원이 아시아문화전당을 말씀하셨는데 정말 중요한 문제"라며 "완공이 많이 늦춰졌는데 개관마저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는다면 정말 도리가 아니다"라고 거들고 나섰다.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현안 브리핑에서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지며 "박근혜 정부는 역대 정부 중 호남을 가장 소외시키는 정부가 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새누리당은 지역차별에 동조하지 말고 원칙대로 2월 국회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이 통과되도록 협조하라"고 강조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새삼 이 시점에 강조된 것은 새누리당이 이완구 후보자와 관련해 제기하고 나선 '충청 홀대론'에 대한 맞대항의 성격이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또, 2·8 전당대회에서 당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호남에서의 취약성을 드러낸 문재인 대표가 해당 지역을 챙겨야 할 필요성과 맞물렸다는 지적도 있다.
'호남을 가장 소외시키는 정부' '지역차별에 동조하지 말 것' '경주는 되고 광주만 브레이크' '광주법이라 안 된다' 등 강력한 표현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도 없는 해에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이 잇따르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여야 관계가 냉각될 수 있다"며 "민생 경제 살리기에 전념해야 할 때에 지역감정 논란이 자칫 정국의 블랙홀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