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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그 사람(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이 화면에 나오고 얘기를 듣는 것조차 정말 싫어요. 말 하기도 싫어요. 그래서 이런 얘기는 이제 묻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1월 16일 협회장직에서 물러난 남궁원(80ㆍ본명 홍경일) 전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은 1일 <뉴데일리>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규태(66·일광그룹 회장)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불쾌하다는 심경을 내비쳤다.뉴스에 대종상영화제 사무실을 거기(일광공영 빌딩)에다 가져다 놓은 게 나오더군요. 이게 뭡니까? 정말 영화인으로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합니다.
지난 2013년 4월 제 25대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돼 영화계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원로배우 남궁원은 지난 1월 돌연 사표를 내던지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명목상의 이유는 '건강 악화(저혈압 등)'였지만, 전대 회장(정인엽 감독)이 공금 횡령 비리로 수사를 받고, 부설 기구인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회와의 갈등이 불거진 것도 그의 사퇴를 앞당긴 배경으로 작용했다.
남궁원 전 회장은 당시 사퇴 입장을 밝히는 자리에서 "전대 회장이 만들어 놓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며 "전대 회장이 횡령한 돈(4억여원) 뿐 아니라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의 빚이 6억원"이라는 속사정을 토로했다.
그는 "대종상영화제를 제대로 진행하려면 최소한 6억원 정도는 필요한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1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한 것 외에는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규태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에게 복지 기금 명목으로 3억원을 받기로 했었지만, 이마저도 미뤄지면서 대종상영화제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해졌다"고 밝혔다
남궁원 전 회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종상영화제는 최소 운영 자금인 6억원을 확보하기는 커녕, 당장 갚아야 할 빚만 10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유일한 자금줄인 일광공영마저 그룹 총수가 방산 비리 혐의로 구속됨에 따라 1962년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한국 영화의 '간판' 역할을 해온 대종상영화제는, 졸지에 개최 여부조차 알 수 없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동안 남궁원 전 회장이 총대를 맸던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감독협회, 배우협회, 기술협회, 기획창작협회, 시나리오작가협회, 음악작곡가협회, 조명감독협회, 촬영감독협회 등 8개 협회를 산하 단체로 거느린 영화계 최대 단체다. 부설로 대종상영화제 사무국과 기획실을 두고 있다.
대종상영화제는 오랫동안 정부 주도(문광부 영화진흥위원회)로 개최되다 25회 대회부터 영화인 단체에서 운영을 맡고 있다. 공식 주최자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지난 2013년 일광그룹과 계약을 체결, 이규태 회장에게 대종상영화제의 운영 권한을 위임한 바 있다.
평소 원로배우 신영균(대종상영화제 명예조직위원장·한국영화인총연합회 전 회장)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규태 회장은 신영균의 간곡한 부탁으로 3년간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영화 관계자들은 지난 1년간 대종상영화제의 주최 측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와, 새롭게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규태 회장 간에 크고 작은 마찰이 있어 왔다고 말하고 있다.
대회를 조직화하는 과정에 전형적인 사업가인 이규태 회장의 '저돌적인' 경영 스타일이 문화계 인사들의 이해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양측간 갈등의 골이 패이기 시작했다는 것.
정진우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이 지난해 말 열린 제51회 대종상영화제 기자간담회에서 이규태 조직위원장과 남궁원 전 회장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도, 이같은 내부적 갈등이 심화돼 표출된 것으로 영화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남궁원 전 회장은 "이규태 조직위원장이 방산 비리에 연루됐다는 사실은 나중에 수사 발표를 통해 알게 됐다"며 "당시 인간적으로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사표를 던졌는데 얼마 후 이런 사고가 터진 것"이라고 밝혔다.
남궁원 전 회장은 "스폰서가 절실한 영화인총연합회 입장에선 이규태 조직위원장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면서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단지 많이 도와달라는 말만 했을 뿐인데, (이규태 회장으로부터)내가 영화인들 밥 먹이러 왔느냐는 핀잔만 들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남궁원 전 회장은 자신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직에 대해선 "누가 될지 참 걱정이 된다"면서 "(자신이)회장직을 팽개치고 나왔다는 사실 자체도 가슴 아프고, 무엇보다 영화인으로서 정말 창피한 일"이라고 밝혔다. -
다음은 남궁원 전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과의 일문일답- 선생님께서 올 초 대종상영화제의 재정 문제에 대해 한 마디 쓴소리를 하셨었죠?
▲나는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을 사임을 했어요. 사임을 해서 지금은 재정적으로 관여를 안해요.
나는 그런 사람과 일하기 싫어서 관뒀더니…. 난 그 사람이 그런 죄인인 줄 모르고, 인간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사표를 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런 사고가 난 겁니다. 그래서 아이고 하나님이 나를 돕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미 그런 사람하고 일하기 싫다고 사표를 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얘기는 내가 할 수가 없어요. 나는 이제 야인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 그래도 대종상영화제가 이대로 두면….
▲이제와서 옛날 얘기 할 필요도 없고. 돈이라는 건 조직위원회에서 결정을 해서 쓰는 거지, 그 사람이 (대종상영화제를 위해)돈을 많이 쓴 적도 없어요..
아무튼 그런 상태니까 더 이상 난 얘기할 게 없어요.
- 그럼 앞으로 영화제는 어떻게 되나요?
▲모르죠. 이제 누가 할지….
- 저희도 참 걱정이 돼서 그렇습니다.
▲영화인들도 걱정이죠. 정말 그렇게 (제가)팽개치고 나왔다는 자체도 가슴 아프고…. 하지만 그런 사람(이규태 같은)하고 더 일을 해봤자…. 그게 정말 창피한 일이죠.
대종상영화제 사무실을 거기(일광공영 빌딩)에다 가져다 놓은 걸 뉴스에서 봐도, 영화인으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해요.
난 이제 그 사람이 화면에 나오고 얘기를 듣는 것조차 정말 싫어요. 말 하기도 싫어요. 그래서 이런 얘기는 이제 묻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무기중개상이 영화판 '기웃 기웃'..왜?
지난 1985년 설립된 일광공영은 2001년부터 조금씩 다른 분야로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다. 모 사립초등학교를 인수, 일광학원을 세운 일광공영은 2005년에는 일광복지재단을 만들더니 이듬해에는 연예기획사 일광폴라리스(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이때부터 일광공영은 '일광그룹'이라는 이름 하에 ▲M아카데미 ▲대종상영화제 ▲일광폴라리스 ▲일광학원 ▲일광공영 ▲일광복지재단 ▲일진하이테크 등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사로 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연예기획사를 거느린 일광그룹이 대종상영화제에도 깊숙이 관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삭제돼 찾아볼 수 없지만 대종상영화제의 '이전 소개글'을 보면 일광그룹 혹은 이규태 회장과 관련이 있는 인사들이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회에 대거 포함된 사실을 알 수 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연예기획사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를 맡았던 김영한 전 기무사령관과 ▲일광그룹 계열인 청소년상담센터 '포사랑'의 이사장인 이희원 전 예비역 대장, ▲일광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김만복 통일전략연구원장 등 영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이 포진돼 있었다.
김만복 통일전략연구원장과 이희원 (사)포사랑 이사장의 다른 직함은 전직 국정원장과 전직 청와대 안보특보다. 이들 모두 국가 안보 분야에서 최고위직에 몸 담았던 인사들이다. 이들은 <대종상영화제 조직 운영을 도와주신 분들>이라는 항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국방-안보 인사들이 대체 영화제 운영에 무슨 도움을 줬다고 조직위원회 명단에까지 등재된 걸까?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해당 명단에는 정계-방송계-경찰 고위 관계자 등 각 분야 최고 실권자들이 '영화제를 빛낸 인사'들로 기록돼 있었다. 이는 이규태 회장의 인맥이 국방은 물론 방송이나 금융계까지 뻗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