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영업 정지된 7개 저축은행들의 대규모 불법대출 정황이 여러 차례 회계법인들에 포착됐던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법무법인들은 불법대출을 보고서도 ‘불법으로 볼 수 없다’며 안심시켰던 것으로 드러나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법무법인의 말과 달리 한 달 만에 7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5,000만 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투자자 1만4,000여 명이 수백억 원의 피해를 입게 됐기 때문이다.
25일 금감원에 따르면 A회계법인은 2010년 3월과 2011년 3월 경기도 일산 고양종합터미널의 시행사인 종합터미널고양㈜에 대한 2008∼2010 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서 제일ㆍ제일2ㆍ에이스저축은행의 우회대출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고양터미널의 공동사업자로 참여한 중소기업과 SPC(특수목적법인) 등에 저축은행들이 대출해준 것과 관련해 "특수관계자 명의로 차입해 실질적으로는 회사(시행사)가 사용하고 있다"며 "차입금에 대한 이자도 차입금의 실질적 이용자인 회사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제일ㆍ제일2ㆍ에이스저축은행이 공동사업자로 꾸민 업체들에 돈을 대줬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시행사가 한도초과 대출을 금지한 법을 피하기 위해 내세운 차명차주에 불과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실제 시행사의 전ㆍ현직 임원 4명은 공동사업자로 참여한 기업과 SPC 6곳의 임원을 돌아가면서 맡았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들은 이런 식으로 수십 개 위장 공동사업자에게 10여 년 동안 6,400억 원을 불법대출해 줬다.
회계법인은 보고서에서 시행사가 2년 연속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에 주목,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며 "(준공 후) 분양과 임대 사업에 차질이 발생하면 자산과 부채를 정상적으로 회수하거나 상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법무법인들은 이 같은 부분들을 발견해 놓고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의견을 내 저축은행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경영평가위원회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B법무법인은 8월 10일 제일저축은행에 대한 법률검토 의견서에서 고양터미널 대출에 대해 "대출한도를 위반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사료된다"고 밝혔다. 이 의견서는 금감원 출신 변호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B법무법인은 "시행사와 공동사업자들이 사실상 동일차주라는 논란이 제기될 수는 있다"고 지적해 놓고도 "사업이 중단돼 대출금 회수가 곤란해지고 민원으로 어려움을 겪느니 다수의 사업참여자(공동사업자)에 대출해 사업을 진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C법무법인도 8월 8일 "고양터미널 사업의 대출을 받은 공동사업자들은 동일차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내놨다.
이들 법무법인들은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는 것이며, 최종 판단은 의뢰인의 몫"이라고 답변했다.
금감원 또한 저축은행들에 대한 정기검사에서 초과대출 등의 문제점을 밝혀내지 못했다. 올해 7월 에이스저축은행만 한도초과 대출로 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을 뿐이다.
금감원 측은 "과거 금감원의 저축은행 검사에 일부 문제점이 있었던 점을 인정한다. 이번 경영진단에서 불법대출을 철저히 따져 잡아냈으며, 앞으로도 검사 관행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반면 법무법인의 의견에 대해서 금융당국은 ‘법률적 다툼이 예상되는 사안 앞에서 저축은행은 법무법인의 의견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쉽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측은 "명백한 불법대출을 ‘아니다’라고 왜곡한 건 다소 지나쳤다"며 "특히 금융회사의 부실은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으므로 법률자문도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금융당국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부실에 대한 문제제기는 앞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저축은행처럼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불법대출이 자행된 것은 아니지만 특정 사업(고양터미널)에 대규모 불법대출을 해줬다는 점, 저축은행 측이 회계법인과 법무법인들에 자문을 구하면서 불법 문제를 이미 인지했음에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