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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또 다시 대형 총기 사고가 발생했다. 배트맨 옷차림을 한 제임스 홈즈라는 24살 백인이 극장 관객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는 바람에 12명이 죽고, 59명이 중상을 입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트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사건이 발생한 극장은 1999년에 대형 총기 사건이 발생했던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언론들은 불과 13년 만에 이런 일이 또 반복되었다고 한탄하면서 총기를 쉽게 소지할 수 있도록 한 콜로라도 주의 총기소유법을 문제 삼고 있다. 콜로라도 주는 누구나 총을 차 안에 갖고 다닐 수 있으며, 심지어 대학 캠퍼스 안에서도 허가증만 있으면 총을 휴대할 수 있어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이다. 총기소유 허가증도 쉽게 발급되기 때문에 이런 참사를 예방하는 방법은 일반인들의 총기 소유를 완전히 불법화 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총기 소유는 미 헌법 개정안 2항이 보장하고 있는 미국인의 10개 기본권 중 두 번째로 명시된 권리이다.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 휘하에 모여든 병사들은 모두 자원병으로, 각자 자신의 총을 들고 나온, 군복도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이들 자원병들이 들고 나온 총기가 미국 독립에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인들에게 총은 개척 당시 인디언들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사냥을 하는데 중요한 필수품이었다.
1981년 3월 레이건 대통령이 25세의 청년이 쏜 총에 맞았다. 한 발은 레이건 대통령을 맞췄지만 치명상은 아니었고 다른 한 발이 마침 그 옆에 서 있던 백악관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췄다. 브래디는 기적적으로 생명은 건졌으나 말을 심하게 더듬는 반신불수의 몸이 되었다. 브래디의 부인은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미 전역을 다니면서 총기휴대 금지 운동을 벌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브래디의 총기휴대 금지법 (Hand Gun Control Act)이다. 이들은 의사당을 방문해 한국사회 같이 미국도 총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들이 들고 온 플래카드에는 총기로 희생당한 아이들, 그리고 부모들의 처절하게 우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거의 모두 이 법안에 찬성했지만 공화당은 국민에게 부여된 신성한 헌법 상의 권리를 헌법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총기법으로 규제하는 데 강하게 반대했다. 총이 문제가 아니라 총을 쏜 사람에게 책임을 지워 엄벌에 처하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 헌법을 개정하려면 상하 양원 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며, 이 절차가 끝난 뒤에도 50개 주 가운데 4분의 3인 38개 주가 주 상하 양원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따라서 개헌을 통해 총기소지법을 없애자는 법안은 사실상 통과가 불가능하다. 미국 총기협회(NRA)는 그 당시 배우 찰턴 헤스턴이 회장이었고 공화당 의원들에게 막대한 선거자금을 대주는 강력한 우파 단체다. 공화당원인 나도 이들에게서 도움을 받았었다. 나는 총기휴대 제한법을 지지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막상 민주당에 동조해 찬성표를 던졌다가 NRA 회원들과 보수단체들로부터 들을 빗발치는 비난의 목소리를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이튿날 아침 총기제한법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수당인 민주당의 노력으로 브래디 법안은 통과됐다. 법안은 18세 미만에게는 총기 소지를 허용하지 않고, 총을 구매하려면 엄격한 신원조사(background check)가 필요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된 지 1년 후 정부의 보고에 의하면 약 200만 명의 고위험 인물들(high risk people)에 대해 총기 구입이 거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콜로라도 사건으로 총기 규제법이 무색하게 되었다. 다시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공화당의 미트 롬니 대통령 후보나 오바마 대통령 모두 총기 소지를 더 강력히 규제하자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다. 결국 공화당이 졌지만 이긴 것이 되고 말았다.
최근에 총 판매량이 급속히 증가했다. 아마도 총기 규제법이 나오면 총기 구매가 더 힘들어질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행히 오랫동안 전통과 습관으로 시민들의 총기 휴대를 금지해왔다. 그 때문에 미국 같이 총기로 수 십 명을 한꺼번에 쏴 죽이는 대형 사고는 없다. 그 대신에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끔찍한 사건들이 가끔 있긴 하지만 그래도 총기가 없다는 것은 정말 천만다행이다. 우리는 계속 총 없는 사회를 유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