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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여, 전략제휴 위해 과거극복부터 하자
허문도 /전 통일부 장관 -
천황의 『전쟁책임』이나 과거 극복(역사청산) 문제는 그동안 일본안에서는, 학계나 저널리즘 쪽에서, 갖가지 계기에 수없이 논의되었고, 이미 방향도 잡혀있다. 현 천황의 부친인 소화천황은 만주사변에서 시작하여,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까지의 『15년전쟁』에 대해 『전쟁책임』을 져야하고, 『퇴위를 했어야』 했고, 그보다 더 무거운 『식민지 지배』에 대한 궁극의 책임 또한 천황에게 있다는 것이 결론으로 굳어있는 것이다. (해방전의 제국 일본에서 천황은 국가 그 자체였고, 단 한사람의 주권자 였으며 국민은 주권과 무관했다.)
천황의 『전쟁책임』을 따지는 학자를 일본정부가 어찌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는데, 한국대통령이 사과 하라 하니까 당장 발끈했고, 일본 정치인들도 ‘예의를 잃었다’, ‘무례하다’로 흥분하고 나왔다.
이를 통해 두가지를 알게된다.
첫째는 일본의 지배계층이 천황을 절대시하는 『제국의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둘째는 일본을 위로하고 한국을 아래로 하여 내려다보는 『식민지주의』 의식이, 국교를 정상화한지 반세기가 되어가는 데도 저들 골수에 배겨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역사청산을 아무리 미루어도,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시간이 가도 책임져야 할 두가지 사안이 있다.
하나는 명성황후의 암살과 그 유해에 가한 입에 올리기 어려운 능멸 사건,
또 하나는 한국인들로부터 나라를 강탈한 일이다. 여기에 다 들먹일 겨를은 없다.
명성왕후 능에 무릎 꿇고 빌어라
명성황후 암살은 한국에 주재하던 일본의 외교공관장이 야밤에, 그때 서울에 와있던 일본기자, 껄렁패 등을 끌어모아 왕궁담을 넘어 황후의 침실에 침입하여, 전 세계 외교의 역사에 공전절후 할 일대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
100년, 300년이 가도 일본 천황이 명성황후 능에 가서, 독일의 브란트 수상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밀집 거주지)의 학살 유대인 위령비에 무릎 꿇었듯이, 한번은 엎드려 빌어야 할 일이 남아있다.
일본의 대한제국 강탈 문제는, 강도가 강도 짓하면서 주인한테 총칼 대어놓고, 도장찍으라 하고선, 도장 받았으니 합법이라며 우기고 있는 꼴이다. 일본이 제대로 과거청산을 하려 한다면, 그 제일 첫조는 천황의 대한제국 강탈에 대한 사과라 할 것이다. 이 때에 도장 찍은 일본측 명의인이 천황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방한조건으로 천황사과를 요구하면서도 깊은 배려를 한 것 같다.
한일간의 과거 청산에서 천황과 관련된 가장 결정적인 위에서 본 두 가지 문제를 천황이 피해가도록 길을 터주고 있는 것 아닌가.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인한 동북아의 질서재편기를 맞아, 한일간의 과거사 청산은 더 이상 미룰수 없는 단계에 와있다는 것을 일본의 위정자들은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MB정권의 인기하락으로, 나라 밖의 문제로 일을 벌린다고, 그런 눈길이 일본 신문에 보인다. 한국인들의 민족혼 깊숙히 일본인들이 지난 시절 파놓은 트라우마를 한국측이 맨날 들먹이지 않는다고해서 잊으려 든다면 그건 막가파 심사이다. 동북아 평화를 위한 진정한 전략 제휴가 일본이 힘세다고 과거 다 덮어버리고 가능할 것이라 보는가.
일본서 청구권 자금 챙겨, 산업화하는데 급해, 과거를 덮고 지나온 세대도 이제 한국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역사의식과 전략감각을 겸비한 위정자들이 일본에 지금 필요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발언에 일본 위정자들이 보인 반응은, 한국의 대통령을 저들과 마찬가지로 심층심리 어딘가에서 『천황의 신민』쯤으로 여기는 제국의식이 남아있다는 얘기고, 이는 동시에, 역사청산이 얼마나 화급한 숙제인가를 알려주기도 한다. -
내셔널리즘 동원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발끈한 노다 총리는, 대통령에게 ‘유감’ 서한을 보내고 그 편지가 닿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언론에 공개하는 일이 있었다. 한국측은 일본측이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야단이다. 그보다는 일본총리 측이 정작 노린 것은 내셔널리즘 동원으로 보인다. MB의 발언이 일본 내셔널리즘의 좋은 꺼리인 영토와 천황문제를 제기했으니까, 이번 가을로 선거를 앞둔 약체 정권에게 안성맞춤의 타이밍으로 보였음직 하다.
그러나 현재의 일본의 내셔널리즘 동원은 한 정권 차원을 넘어서서 지배계층 전체의 어떤 몸부림으로 보여진다. 20일 동경의 중심가인 긴자(銀座)에 올림픽 선수단 귀환 퍼레이드가 있었는데 50만 인파가 넘쳐났다 한다. 국가 스포츠는 곧잘 내셔널리즘의 불쏘시개이기도 하지만, 이번 이벤트는 극우파로 이름 높은 동경 도지사 이시하라(石原愼太郞)가 특별히 밀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장기불황과 작년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자신 상실무드가 번져가고 있는 속에 내셔널리즘으로 캄플 주사라도 놓으려는가.
인기작가 이츠키(五木寬之)의 『하산(下山)의 사상』도 있지만, 심심찮게 21세기 일본문명의 하산기조(基調)가 입에 오르고 있다. 무연(無緣)사회, 무목표사회, 희망격차 사회 등의 표현으로 일본사회에서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기가 줄어들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일본의 한 유도 전문가가,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이 국기로 여기고 있는 유도 7체급에서 남자선수가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것에 상심해 하는 것이 얼핏 TV에 비쳤다.
그렇다고 지금 일본 내셔널리즘에 불 붙이는가. 지난 세기 자주 타올랐던 내셔널리즘 불길은 모두 이웃과 아시아 침략에 동원했던 역사가 있다.
일본이 아시아와 하나 되는 세상이 오고 있는 판에 내셔널리즘은 아닐 것이다.
MB의 독도 천황관련 발언이 한일간에 일으킨 파문은 서독의 바이제커 대통령이 85년 의회에서 행한 유명한 참회연설의 명구를 다시 한번 곱씹게 한다.
『과거를 눈 감는자는 결국 현재도 눈을 못 본다.』
과거극복 과제를 한국대통령이 들먹이니까 그게 싫은 일본 측에서는 아플것도 없는 「스와프」나 줄이겠다면서, 한번 준 선물, 도로 받겠다는 식의 치사함을 흔들고 있다. 과거를 피하자니 오늘 현재가 제대로 안보이는 것이다.과거극복을 통한 일본민족의 윤리적 부활이야 말로 일본 젊은이 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 않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