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20세기 戰史(전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인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나를 생각하며, 아직도 남아있는 역사의 아픔을 안고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보았다.
한마디로 現代史 공부는 안보차원에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정말 유익한 영화였다. 맥아더 장군의 표현대로 코부라처럼 공격해오는 적군(인민군)의 공세를 71명의 학도병이 죽음으로 막아내며 전쟁의 흐름을 돌려놓은 영화 ‘포화 속으로’를 봤을 때의 감동 바로 그것이었다.
친북좌빨들이 말하는 국뽕도 아니고 단순한 반공영화도 아니다. 어느 좌빨 평론가가 ‘美德(미덕)’이 없는 영화라고 악평을 했지만, 미덕이 넘치는 영화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대한민국국민, 특히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교육영화다. 그런 면에서 미덕이 넘친다.
처참했던 6.25전쟁이 가져온 우리민족의 삶과 죽음의 인간드라마를 사실 그대로 다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감독과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양심을 보았고, 첨보대원들의 신성한 분노와 순수한 애국심과 숭고한 군인정신이 관객 모두에게 감동을 주고, 조국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하고 교훈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영화는 보는 시각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평점도 천차만별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영화든 그 영화의 구성이나 완성도 이전에 그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이고, 배경이 무엇이며, 시대상황에 부합하느냐, 또 그처럼 긴 시간을 할애해가며 볼 가치가 있느냐를 평가기준으로 삼는 것이 옳은 평가태도일 것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재미있어야 하고, 전하는 메시지가 정확하고 정직하며 교훈적이어야 하고, 관객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더구나 그 바탕에 이념이 흐르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본다면 ‘인천상륙작전’은 10점 만점에 적어도 9점 이상은 받고도 남을 영화다. 그런데 국가적 고질병인 친북 좌빨들은 3점이라는 최악의 평점을 매겼고, 어떤 깡통 평론꾼은 ‘美德(미덕)’이 없어 평론가들이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9.3이라는 최고의 평점을 매겼다. 어떤 것이 정직한 평점인가?
좌빨들은 왜 ‘인천상륙작전’을 ‘국뽕’이라고 침을 뱉으며 미덕이 없다고 단말마적인 비명을 지르나. 북한의 惡魔性(악마성)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 그렇게도 억울한가? 아니면 ‘인천상륙작전’ 때문에 적화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이 천추의 恨(한)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인천상륙작전’에 미덕이 없다는 좌빨들, 너희들이 말하는 미덕의 개념은 무엇인가? 악마와 같이 춤을 추는 행위가 미덕이란 말인가? “악마의 얼굴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그 역시 악마와 다를 바 없다”는 영국의 종신 상원의원 데이비드 올턴 경의 말을 기억하라.
세계 공산화를 꿈꾸며 지구 절반을 지배하던 소련이 왜 망했는지 아는가? ‘악마와 같이 춤을 추는 행위’가 미덕이라며 인간을 좀비 취급하던 오만과 역사무시 태도가 종말을 가져왔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미덕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답고 갸륵한 德行(덕행)을 말한다. 좀 더 부언하면 인간의 존재방식이자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 한다. 따라서 가치와 善으로서의 미덕은 명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라고 설명해 준다. 그래서 앙드레 콩트 스퐁빌은 ‘미덕의 근원에는 사랑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에 미덕이 없어 3점을 줬다고? 왼쪽만 보이는 애꾸눈으로 뭘 본들 제대로 보이겠는가. ‘인천상륙작전’ 자체가 미덕이고, 진실을 담은 메시지가 바로 미덕 아닌가.
악마와 같이 춤을 추면 ‘미덕’이라는 金冠(금관)을 씌워주고, 악마와의 춤을 거부하면 수구꼴통이라는 구리(銅)관을 씌우는 좌빨들의 오만과
편견을 징벌하라는 의미로 관객이 매겨준 평점 9.3이 바로 미덕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관람할 때는 철저한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6.25전쟁의 진실이 무엇이고, 원인이 무엇이며, 원흉이 누구인가를 명확히 알고 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영화의 평가는 좌빨 평론꾼들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관객이 내린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 것이 또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가치가 충분한 권할만한 영화다.
왜 친공영화는 되고, 반공영화는 안 되는가? 왜 <화려한 휴가>,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은 되고, <포화 속으로>, <연평해전>,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은 안 되는가?
‘반공’이 아닌 ‘안보’ 차원에서 보라. 그 진가가 달라질 것이다. 충분히 역사적이고 교육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비딱한 머리도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문화권력을 통째로 움켜쥐고 제 멋대로 휘두르던 좌빨들의 횡포, ‘인천상륙작전’으로 상륙해 쓸어버릴 때가 된 것이다.
숨겨왔던 북한의 어둠의 실체가 들어나는 것이 그렇게도 두려운가? 좌빨들이 목숨 걸고 악평을 쏟아낼수록 ‘인천상륙작전’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진실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영화에는 맥아더 장군과 참호 속에서 비를 맞으며 제 위치를 지키는 국군 병사와의 가슴 뭉클한 대화 장면이 있다. (1950년 6월 29일)
맥아더 장군: “병사! 다른 부대는 다 후퇴했는데, 자네는 왜 여기를 지키고 있나?
국군 병사: “저는 군인입니다. 상관의 명령 없이는 절대 후퇴하지 않 는 게 군인입니다. 철수 명령이 있기까지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여기서 살 겁니다.” (이 대사는 실제 주인공 신동수 씨가 2006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증언한 내 용이다. 영화장면 대화도 거의 비슷하다)
좌빨들은 이 장면을 지나치게 애국심을 강요한 심파라고 입에 거품을 물지만, 이처럼 군인정신에 철저하고 책임감 강하며, 피부에 와 닫는 산교육이 어디 있나.
이런 정신이 국가를 살려냈다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그런 정신 때문에 적화통일을 못했다는 분통이 앞서서 심파라는 혹평을 쏟아내지만, 그럴수록 영화의 흥행가도에 탈력이 붙는다. 좀 더 심한 욕을 해주면 2천만을 향해 달릴 테니 제발 그래주길 바란다.
좌빨들은 ‘인천상륙작전’이 맥아더에 바치는 獻詞(헌사)라고 악평을 하지만, 맥아더 장군에게 바치는 헌사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敍事詩(서사시)이자 6.25참전 용사 모두에게 바치는 거룩한 헌사다.
이병주 선생이 그의 소설 ‘산하’에서, 역사적 사실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별빛에 비추면 소설이 된다”고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6.25의 사실(진실)들이 ‘인천상륙작전“이라는 햇빛에 바래 산역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천상륙작전‘은 역사적이고, 교육적이다. 정말 자신 있게, 양심을 걸고 권하고 싶은 영화다.
예상과는 달리 20~30대들의 관람비율이 가장 높다는 통계는 ‘인천상륙작전’이 주는 또 하나의 큰 선물이다.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
좌빨들의 혹평과는 달리 “최고의 감동, 애국심도 생기고 좋았다”는 관객의 긍정적 반응과 “인천상륙작전의 숨겨진 이면을 볼 수 있었고, 희생하신 분들의 조국애를 느낄 수 있었다”는 감동어린 평가 역시 이 영화의 큰 수확이다.
<‘인천상륙작전>, 흔히 있는 흥미위주의 전쟁영화로 보지 말고, 달빛에 물들어 신화가 돼 있던 역사적 사실들을 다시 역사로 살려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교육과 안보와 애국 차원의 눈으로 보기를 권한다.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조국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친공 정서에서 안보 정서로, 또는 애국정서로의 변화가 생길 것이다.
자녀들과 함께 관람하면 보다 큰 교육적 효과를 얻을 것이다. 온 가족이, 이웃이 같이 보면 더욱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결코 판에 박힌 반공영화가 아니다. 애국영화이고, 안보영화다. 그리고 철저한 교육영화다. <인천상륙작전>, 봐서 절대 손해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