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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한명숙 주저앉힌 박원순의 힘?
후보와 정책 모두 빼앗길 민주당의 위기
변희재, pyein2@hanmail.net
안철수 원장이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지지 선언을 했던 9월 6일, 의미심장한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상임이사는 오후 2시에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20분만에 안철수 원장은 출마를 포기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3시에 박원순 상임이사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한명숙 전 총리를 만나 후보단일화에 합의하며 기자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고는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오후 4시에 안철수 원장과 다시 기자회견을 하여 단일화를 발표한다.
한명숙과 문재인은 왜 박원순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가
아무리 정치가 역동적인 생물이라지만, 정치 초년생 박원순이 안철수와 한명숙이라는 유력후보들과의 단일화를 단 두시간만에 해치운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비상식적인 일이다. 특히 한명숙은 민주당 당원이자 지난해 서울시장 후보로서 오세훈 시장과 박빙의 승부를 펼치기도 했었다. 이런 한명숙이 민주당 소속도 아닌 박원순에 힘을 모아주기 위해 직접 나타날 필요가 있었을까?
그뒤 한명숙은 출마 의사를 언론에 흘리다, 결국 출마를 접었다. 한명숙이 오직 박원순 상임이사와 사진을 찍고 단일화를 합의했다는 점에서 사실 상 박원순 지지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3-5%의 지지율로 시작하여, 9월 6일 단 하루만에 안철수와 한명숙이라는 높은 지지율의 후보자를 모두 포기시키고, 야권단일후보로 우뚝 서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전혀 정보를 얻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당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인 한명숙의 박원순과의 만남에서부터 출마포기까지, 민주당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그러고나서도 손학규 대표는 박원순 이사와 만나 아예 그가 야권통합후보가 다 되었다는 듯이, 민주당에 입당해달라며 구걸하고 있다. 민주당 내 일각에서는 박원순 이사가 통합후보로 결정난 뒤라도 민주당에 입당시켜야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자당의 후보를 꺾은 외부후보를 다시 모시겠다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에서 출마를 선언한 천정배 최고위원, 출마를 고민하는 추미애 의원 입장에서는 불공정도 이런 불공정 경선이 없다. 자당의 유력후보가 사실 상 외부 후보를 지지하고 출마를 포기하지 않나, 당대표는 계속해서 입당해달라 구걸하고 다니는 상황에서 당내 경선이 제대로 치러질 수나 있겠는가. 현재로서는 안철수, 한명숙의 박원순 지지로 민주당의 경선은 마이너리그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야권통합 경선에서도 민주당 후보는 불쏘시개의 역할조차 제대로 못하고 사라질 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까지 박원순 이사의 서울시정에 대한 철학은 물론 정치적 노선이 민주당 혹은 야권에 걸맞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최소한 수도 서울의 시장으로서 대북문제, 한미FTA 정도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최소한의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물론, 정당인과 언론인들조차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그의 철학은 “노조가 생기면 아름다운가게는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발언 정도이다.
바로 이 문제이다. 박원순 이사는 검증도 되기 전에 안철수와 한명숙이라는 유력한 두 후보의 지지를 끌어내고, 사실 상 주저앉혔다. 특히 한명숙은 무소속도 아닌 제 1야당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였다. 검증 결과 박원순 이사가 야권이나 서울시장 후보로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도, 이미 유력후보들은 다시 나오기 어렵다.
민주당은 시종일관 무기력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손학규 대표는 애초에 민주당에 대한 애정은 없다는 식으로, 박원순 등 외부후보에만 눈을 돌리고 있다. 이는 한나라당 경력이 더 많은 손학규 대표 자체의 모순점이다. 손대표는 분당 선거에서도 당 대표이면서도 민주당 후보임을 적극적으로 숨긴 채 선거에 임하기도 했다. 이런 손학규 대표이니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이외의 민주당 후보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후보는 박원순에, 정책은 민주노동당에 빼앗길 처지에 놓은 민주당
마이너리그로 전락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들에게는 또 하나의 거대한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후보단일화의 대가로 과격 좌파식 정책합의서를 내놓을 이정희의 민주노동당이다. 지난해 지자체 선거에서는 정책합의문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는 한미FTA 폐기, 서울대 법인화 페지 등 과격한 정책을 늘어놓은 10대 정책합의문을 손학규 대표에 내놓고 좌파시민사회의 겁박을 통해 사인을 받아냈다. 그러나 선거 직후 박지원 원내대표 등이 정책합의문에 명시된 한EU FTA 비준거부 약속을 어기자, 집단농성에 들어가 다시 돌려놓았다.
민주노동당은 일찌감치 이번 서울시장 야권후보 단일화는 누가 되느냐보다 어떤 정책합의가 이뤄지느냐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박원순 상임이사야 당선을 위해 얼마든지 사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 1야당 민주당으로서는 다시 한번 민주노동당의 정책합의문에 사인을 하는 순간, 정당으로서 정책권한을 상실해버린다. 민주노동당의 재가없이는 어떤 정책협의도 여당과 할 수 없고,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보선을 통해 후보는 외부시민사회가 지정한 박원순 이사에 넘겨주고 정책은 민주노동당에 넘겨주며, 사실 상 식물 정당화될 위기에 처해있다. 또한 이런 위기 상황에서 당대표는 하필이면 한나라당 15년 경력의 손학규이다. 민주당을 살리고자 하는 애정이 있을리 만무하다.
후보도 없고 정책도 없는 정당이 과연 내년 총선 때까지 생존이나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서울시장 선거를 전후로, 야권단일정당 혹은 제3지대 신당창당 흐름에 밀려나,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지 않을까.
형식과 순서만 다를 뿐이지, 2003년도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인한 민주당 분당 때와 점점 더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