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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김정일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전일춘 39호실 실장이 5개월 만에 등장했다. 반면 김정남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았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이 두 사람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들은 김정일이 죽은 뒤의 ‘권력구도’에 집중했지만, 서방 정보기관들은 김정은 체제 안정에 가장 필요한 요소를 김정일의 ‘비자금’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정일 비자금 ‘40억 달러’에 묶여 있을까
한국, 일본과 서방 언론들은 김정일의 비자금 규모가 40억 달러 가량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6년 전 비자금 규모다. 2005년 9월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가 김정일의 돈세탁 창구로 지목되면서 이때 김정일 비자금 규모에 대한 추정이 나왔다.
당시 서방 정보기관들은 김정일 체제가 각종 무기 수출, 미사일 기술 수출, 양귀비 판매, 초정밀 위조지폐(슈퍼노트) 등의 국제범죄와 함께 금, 수산물, 노동력 수출 등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으며, 그렇게 모은 자금이 40억 달러 가량 될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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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정보기관들은 UN의 대북제재 결의안 등으로 김정일 비자금이 묶여 있다고 생각했다. 김정일 정권이 ‘방코델타아시아의 예금을 풀어달라’며 온갖 협박을 했기에 심증을 더욱 굳혔다. 하지만 만약 이런 김정일의 태도가 ‘거짓’이라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주목할 사람이 바로 김정남이다. 김정남은 1990년대 중반 평양 고위층 자녀들이 ‘오너’였던 ‘불법기업소’를 모아 외화벌이에 투입했다. 평양에서는 이들을 ‘제3경제세력’이라고 불렀으며, 김정남은 곧 이 기업소들을 39호실 산하기관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김정남이 2001년 5월 일본에서 붙잡혔고 ‘유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정남은 그 전부터 일본과 한국의 제주도, 마카오와 홍콩, 중국, 유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었다. 김정남이 없으면 39호실도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웠다. 그런 김정남을 김정일이 너무 쉽게 내쳤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움에도 서방 정보기관과 언론은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내세워 ‘김정남이 유배당했다’는 소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만약 ‘김정남 유배설’이 ‘틀렸다’면 김정일 비자금에 대한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김정일 풋옵션’과 ‘드래곤 스트라이크’
첩보세계에서 쓰는 말 중 ‘역정보(Disinformation)’라는 게 있다. 거짓정보를 흘려 적에게 혼란을 주는 것이다. ‘역정보’에 중점을 두고 김정일 비자금을 생각해 보면 김정남의 행동 중 의심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다.
김정일의 아들들은 모두 스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서방국가의 시스템이나 금융업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김정남은 90년대부터 무기수출 대금을 수금하러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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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이 주로 지내는 마카오는 중국령이면서 북한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마카오의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89)는 김정일과 막역한 사이다. 그가 운영하는 여러 개의 카지노에서 하루에 세탁이 가능한 돈은 4억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스탠리 호의 카지노는 김정일 비자금 창구로 의심을 받아 왔지만 중국 정부의 비호로 쉽게 제재할 수가 없었다.
이런 조건을 생각하고 김정남이 제대로 비자금을 관리하고자 자청해서 2001년 5월 일본에서의 일을 꾸몄다고 생각해 보자.
우선 김정남은 ‘김정일’이라는 ‘레테르’를 떼어 버리고, ‘망명객’처럼 활동하려 했을 것이다. 또한 돈세탁도 가능하고 중국과 북한의 보호가 가능하면서 언론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지역을 ‘근거지’로 삼았을 것이다. 이런 곳 중 마카오만한 곳이 없다.
그 다음 김정남은 돈도 굴리면서 남한과 미국을 압박하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좋은 방법이 ‘남한 증시에 투자’하는 것이다.
한국 증시는 북한과 긴장이 조성되면 출렁거린다. 1999년 4월 연평해전 당시 전투는 우리 해군의 확실한 승리였지만 증시는 풋옵션(미래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 하락장에서 가치가 오른다)이 종일 강세를 보이며 출렁거렸다.
이후 2002년 6월 서해교전,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등 북한의 도발이나 한반도에서 위기감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 증시는 출렁거렸다. 이와 함께 선물 거래에서의 매도 포지션, 풋옵션에 투자한 사람들은 막대한 돈을 벌었다. 때문에 여의도에서는 ‘김정일 풋옵션’이라는 단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이런 방법은 1997년 8월 출간된 ‘드래곤 스트라이크’라는 책에서도 소개됐다. <BBC> 중국 특파원을 지낸 험프리 헉슬리 등이 쓴 책이다. 중국군이 베트남, 필리핀 등을 침공하면서 세계 증시에 선물투자를 한다. 전쟁은 7일 만에 끝나지만 중국 공산당은 각국 증시에 투자한 선물로 수천억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내용이다.
‘검은머리 외국인’ 한국인만 있을까
김정일 일가가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외환위기 후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 시가총액의 30~35%(약 300조 원)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자금 출처를 일일이 조사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됐다.
물론 대부분의 자본이 유럽과 미국 투자은행을 통해 들어온 돈이지만 주주를 알 수 없는 ‘사모펀드’의 주인은 알 수가 없다. 미국이나 유럽계 투자은행이 만든 ‘사모펀드’라 하더라도 케이먼 군도나 룩셈부르크, 라부안, 만 아일랜드, 버뮤다, 파나마 등 ‘조세피난처’를 2중3중 거치면 돈의 출처를 잡아내기 어렵다. 때문에 증시 전문가들은 재벌 오너들이 무역을 빙자해 비자금을 만든 뒤 ‘조세피난처’에 은행이나 펀드를 만들어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국내 증시를 흔든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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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국내 증시의 약점을 김정일 정권이 전혀 이용하지 않았을까. 앞서 언급한 ‘드래곤 스트라이크’라는 책도 ‘금융시장이 전쟁 등 외부변수의 영향을 받을 때는 그 공격자가 가장 유리한 포지션에 있다’고 역설한다.
김정일 일가가 ‘상식’이나 ‘공명정대’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이라는 점,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변수 등을 고려해 보면 김정남이 제3국이나 서방 투자은행을 통해 한국 증시에 투자한 뒤 수십억 달러 이상을 벌어 그 돈으로 북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니다.
특히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남의 행적이 묘연하다는 점은 의심스럽다. 일각에서는 2009년 4월 김정은이 보위부 요원들을 동원, 김정남 측근들의 회합장소(우암각)을 급습한 뒤로 김정은과의 관계가 매우 나쁘다는 점을 들어 김정남이 북한에 안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두가 속았다면? 김정남을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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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정남이 김정일 체제 유지에 꼭 필요한 비자금을 관리하려 ‘가짜 망명객’으로 위장했다면, ‘공식 참배’는 안 하는 게 당연하다. 위조여권을 사용해 온 김정남이 북한으로 몰래 들어가 이미 김정은을 만나고, 향후 비자금 관리 등에 대해 논의했을 수 있다. 사실 <조선중앙TV>에서 보여주는 사람들이 참배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한편 24일 홍콩의 중국 준관영언론 ‘봉황위성TV’ 인터넷 사이트는 ‘19일 김정일 사망 후 중국 인민해방군 선양군구가 육․해․공군을 포함, 2개 집단군 산하 응급 기동부대를 국경부근에 배치해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해 군과 정보, 외교, 안보 분야 책임자로 구성된 전담 소조(小組)를 구성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중국의 태도가 진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에 몰래 들어간 김정남의 신변안전을 위한 ‘압력’인지는 알 수 없다.
결국 10년 가까이 한국 등 서방 정보기관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김정남의 행적 속에 김정일의 ‘나머지 비자금’과 향후 북한 체제를 전망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