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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세계 20여 개국에서 선거 또는 정권교체가 있다. 한국, 중국, 러시아, 미국도 포함돼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은 차세대 지도부의 성향 때문에 눈길을 끈다. 중국의 새 지도부가 북한 김정은 체제를 그대로 놔둘까.
中 차세대 지도부는 韓美동맹에 ‘강경’
지난해 10월 19일부터 사흘 동안 중국 공산당 중앙위 제6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여기에서 2012년 권력을 승계할 차기 지도부의 윤곽이 나왔다.
그 핵심은 시진핑 국가부주석과 리커창 부총리다. 시진핑은 공산당 중앙위 제6차 전체회의에서 당 군사위 부주석이 됐다. 세간에서는 시진핑이 2012년 10월 국가주석이 되고 리커창은 총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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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상무위원 7명에는 혁명 원로그룹의 자녀들이 ‘권력을 세습’한 태자당, 장쩌민 前국가주석과 리카싱 등 화교자본들을 등에 업은 상하이 출신 공산당원들의 세력인 상해방, 공산당 청년조직 출신의 신진관료 파벌인 공청단이 나눠 가질 것으로 전망됐다.
시진핑 국가 부주석은 태자당의 핵심인물로 불리고 있다. 그의 아버지 시중쥔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절에 모두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기 때문이다. 시진핑 부주석 뒤로는 왕치산 부총리 등 4명이, 상해방에는 장더장 부총리와 장가오리 톈진 당서기, 공청단은 리커창 부총리를 중심으로 리위안차오 조직부장 등 3명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2010년 10월 제19기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후진타오 주석 등 현 지도부를 대신해 중국을 통치하게 된다. 문제는 ‘제5세대’로 불리는 차세대 지도부의 성향이 현 지도부 보다 反美․反韓이면서 親北이라는 점이다.
시진핑 부주석은 넓은 인맥을 무기로 인민해방군을 ‘장악’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11년 1월 1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홍콩 언론들은 ‘J-20 스텔스 전투기의 시험비행 등 일련의 무력시위는 시진핑의 작품’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홍콩 언론들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고 항공모함 건조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에 걸맞은 대우를 받겠다는 뜻도 숨기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당시 관유페이(關友飛) 국방부 외사판공실 부주임은 홍콩 언론들에게 ‘국방 및 군대 건설의 총체적 계획에 따라 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주권과 안보 수요에 따른 것’이라며 “(다른 나라들이) 중국의 군사력 발전을 정확하게 평가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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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중국 인민해방군의 첫 항공모함 ‘바랴그’의 시험운항, 도련선 전략의 가시화 등에도 시진핑 부주석 등 차세대 지도부의 ‘속내’가 숨어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 지도부 교체를 보는 키워드 ‘파벌’
이 같은 중국 차세대 지도부를 조금 더 수월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나누는 ‘파벌’을 살펴야 한다. 앞서 말한 상해방과 태자당, 공청단이 중국 지도부를 지배하는 ‘파벌’이다.
가장 세력이 크다는 ‘상해방’은 상하이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했거나, 장쩌민 前공산당 중앙 위원회 총서기와 개인적 인연을 맺은 정치 엘리트를 가리킨다. 장쩌민이 중국 최고 지도자로 재직하던 1989년부터 2002년 사이에 중국 정치의 핵심 파벌로 성장했다.
이 파벌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장쩌민이 총서기로 재직하던 2002년까지 상하이에서 활동한 정치 엘리트들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황쥐(黃菊), 우방궈(吳邦國), 쩡칭훙(曾慶紅), 주룽지(朱鎔基) 등이 있다. 다른 하나는 상하이에서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장쩌민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진 이들이다. 자칭린(賈慶林), 리창춘(李長春), 쩡페이옌(曾培炎)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장쩌민이 공산당 총서기에서 물러난 뒤 쇠퇴하고 있다고 하지만 장쩌민으로부터 총서기를 물려받은 후진타오 시기에도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5명(우방궈, 자칭린, 쩡칭훙, 황쥐, 리창춘)을 차지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2007년부터는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3명(우방궈, 자칭린, 리창춘)이 상하이방이다.
지금도 상하이 시장 한정(韓正),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왕후닝(王滬寧), 후베이 성 당서기 리훙중(李鴻忠) 등도 상하이방으로 알려져 있다.
‘태자당’은 중국 공산당의 고위층 자녀들 중 정치인을 말한다. 이 파벌은 1989년 천안문 사건의 원인으로 간부의 부패와 특권층의 횡포라고 공산당이 지목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태자당’은 1949년 중공 수립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고위직을 차지했던 '혁명 간부(revolutionary cadre)'들의 후광에 힘입어 1949년 중공에서 동년배보다 상대적으로 특권을 누리고, 부모의 인맥을 활용해 승진 등 여러 부분에서 특권을 누렸다.
이 ‘태자당’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혁명 관료들의 직계 자녀들이다. 장쩌민, 리펑(李鵬), 쩡칭훙, 보시라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장쩌민, 리펑, 쩡칭훙은 '혁명 열사'로 분류되는 장상칭(江上青), 리숴쉰(李碩勳), 쩡산(曾山)의 자녀다. 보시라이는 국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한 보이보(薄一波)의 자녀다.
두 번째는 혁명 관료 자녀와 결혼 등으로 맺어진 이들이다. 쩌우쟈화(鄒家華), 다이빙궈(戴秉國), 왕치산(王岐山) 등이다.
현재는 시진핑과 판웨(潘嶽), 류위안(劉源), 왕이(王毅) 등이 ‘태자당’에 속한다. 판웨는 철도사령부 부참모장을 지낸 판톈(潘田)의 자제이면서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류화칭(劉華清)의 사위이고, 류위안은 류샤오치(劉少奇) 前국가 주석의 아들, 왕이는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비서를 지낸 쳰자둥(錢嘉東)의 사위다.
‘공청단’은 공산당 청년 조직인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中國共產主義青年團)의 중앙 위원으로 재직했던 이들이 후진타오의 정치적 성장과 더불어 조직된 파벌이다.
‘공청단’은 후진타오와 같이 중앙 위원회에서 활동한 이들과 공청단에서 주요 직위를 맡았던 이들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후진타오, 류윈산(劉雲山), 왕러취안(王樂泉), 류옌둥(劉延東), 리커창, 왕양(汪洋), 리위안차오 등이 있다.
중국 공산당 파벌들은 이처럼 서로 얽혀 있다. 1949년 중공 발생 이후 지금까지 고위층들의 ‘끼리끼리’를 통해 권력을 ‘세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세대 지도부, 내부 문제 풀려 외부 갈등 조성
2012년 10월 새로운 지도부가 전면에 등장하면 파벌 간의 권력투쟁에 집착할 겨를이 없다. 중국 사회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먼저 경제다. 중국은 2005년부터 남동부 지역에 집중된 경제성장의 과실이 공산당원에게는 어느 정도 돌아갔다고 판단,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이용해 ‘서부 개발 계획’을 세웠다. 동쪽 서해지역에서 시작해 신장위구르 지역에 이르기까지 고속철도를 깔고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해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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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위안화 가치가 낮아야 한다. 위안화 가치가 낮아야만 중국이 계속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외국인 직접투자를 끌어들이고 연 평균 경제성장률 8% 이상을 유지하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7년 중국이 美재무성 채권과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을 대거 내다팔면서 서방 진영과의 ‘화폐전쟁’을 시작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2조 달러가 넘는 美재무성 채권을 가졌던 중국은 ‘채권자’인 자신들이 ‘화폐전쟁’을 시작하면 미국과 서방 진영을 ‘위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부메랑’이었다. 이어 세계 각국이 ‘중국제 유해론’을 내놓으면서 위안화 절상을 요구했다. 중국 공산당은 위안화 절상에 동의했다.
‘화폐전쟁’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지면서 중국 내수시장도 타격을 입었다. 중국 공산당은 2009년 1,000조 위안을 내수시장에 풀어 서부 지역에 대규모 신도시를 짓는 등 경기부양책을 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중국 내수시장에 풀린 1,000조 위안은 거의 다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이 가진 공기업이나 공산당원들이 주인인 건설업체로 흘러 들어갔다. 중국 기업들은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불법부실공사에 혈안이 됐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아파트만 잔뜩 지었다. 공산당원들은 이렇게 빼돌린 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치품을 구입했다.
중국 공산당이 계획도시로 건설한 수십 군데의 신도시는 기본적인 인프라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유령도시’가 됐다. 英 <BBC>는 12억 달러 가까운 돈을 들여 건설한 내몽고 자치구의 신도시 ‘캉바시’를 취재해 보도하기도 했다.
中차세대 지도부, 명치유신 뒤 일본처럼?
결국 중국 공산당은 2012년 경제성장률을 7.5% 수준으로 낮춰 잡기로 했다.
중국은 경제성장률이 8% 이하일 경우 부동산 거품 붕괴, 내수시장 위축 등이 초래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가 목표를 낮춰 잡자 ‘경제성장률을 현실에 비해 높게 잡았다가 경제는 물론 정치 상황까지 불안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과 함께 2012년을 ‘대외개방의 해’로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중국의 행보를 보면 ‘대외개방’이라는 게 서방 국가의 그것과는 다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중국은 2008년 4월에는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세계 20여개 나라에서 ‘폭동’을 기도하다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외국인과 내국인의 평등을 내세워 외국기업들에 대한 세율을 높이고, 외국기업이 자국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없도록 노동법을 개정한 바 있다. 이때 외국 기업 수천 곳이 중국을 떠났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때는 북한 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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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에는 우리나라 EEZ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 선장이 우리 해경을 흉기로 살해했음에도 ‘문명적인 단속을 하라’고 주장하며 유감표시조차 않다가 비난을 받았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은 그대로 묵인하고 있다.
중국을 연구해 온 군사전문가들은 이런 태도와 함께 2011년 1월 게이츠 美국방장관의 방중에 맞춰 J-20 스텔스 전투기 시험비행을 한 점이나 2007년 9월 티모시 버튼 美태평양 사령관의 방중 때 시진핑의 ‘측근’들이 미군에게 ‘태평양 서쪽에서 하와이까지 물러날 것’을 요구한 점 등이 ‘차세대 지도부의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중국 소식통들은 시진핑 등 차세대 지도부가 후진타오 등에 비해 훨씬 국수주의적이며 공격적이라고 전한다. 중국 공산당 소속 매체에 출연하는 ‘전문가’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부 소식통은 중국의 현재가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 제국주의 국가로 변신하던 때와 비슷하다고 평하기도 한다.
中차세대 지도부, 北흡수해도 ‘원로들’은 못 막아
한편 북한도 2012년부터 본격적인 지도부 교체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이 국가 전반을 통치할 경험과 능력이 부족한 탓에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이 김정은을 ‘보좌’하는 식으로 ‘수렴청정’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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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변수’는 김정남과 장성택이다. 중국은 북한의 무기밀매와 각종 범죄자금을 세탁하는 김정남을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게 김정남은 북한 체제를 움직이는 중요한 ‘지렛대’다.
중국 새 지도부에게는 김정은 체제의 유지․안정도 중요하지만 ‘도를 넘어서는 대남도발’과 핵개발 기술의 무차별적 확산,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 대한 도발 행위를 자제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때문에 중국 지도부에게는 친중파인 김정남과 장성택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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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정은이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한 뒤 고모부(장성택)의 말을 거스르고, ‘배 다른 형’인 김정남에게 자금관리를 모두 ‘공화국’으로 넘기라고 요구하면 심각한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이때 중국은 ‘김정남 보호’와 ‘북한 체제 안정’을 빌미로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김정남 체제나 장성택 체제를 세우려할 수 있다. 그 후에는 마치 일제가 조선왕조를 없애듯 북한을 흡수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 그동안 한국에 우호적이던 중국 원로들은 아무 소리 없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에서의 ‘국가원로’란 별 의미가 없다. 서방 국가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교체한다. 국민의 여론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국가원로’의 영향력도 살아 있다. 반면 권력을 ‘승계’하거나 ‘세습’하는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살아 있는 권력’만 ‘법’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전경웅 새해진단] 임진년- 세계 변혁의 해
1. 한국 좌파, 내각제 선택하나: 한국 총선과 대선, 좌파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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