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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3일 15시 30분, 강용석 의원에게 제보됐던 MRI가 ‘박주신을 찍은 MRI가 맞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보 MRI가 “유령인물(알려지지 않은 제3의 인물)을 찍은 MRI일 것”이라는, 거의 모든 의사들의 생각이 깨져나갔다.
이 날 이 순간은 문제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 이전에는 병역비리 의혹 문제였다. 그러나 이 순간 이후에는 의료윤리 문제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한의든 양의든, 수십만 의사들에게 직업윤리(professional ethics)의 문제, 가치관의 문제, 영혼의 문제가 된 것이다.
1. 유령인물을 찍은 MRI에는 의료윤리 이슈가 존재하지 않는다
2월14일, 강용석은 ‘박주신’이라는 이름이 붙은 MRI를 공개했다.
등, 목에 무려 3센티 이상의 지방이 붙은 고도비만 케이스.
또한 심각하게 디스크가 튀어나온 케이스.
몸무게가 130킬로쯤 나가고 꼼작 없이 누워서 지내야 하는, 병든 은퇴한 씨름선수 쯤으로 보이는 케이스였다. 누구도 이 MRI가 마른 체형으로 보이는 20대 청년을 찍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사들이 앞다퉈 나서서 이렇게 주장했다. “박주신은 다시 신체검사를 받아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어느 의사도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다.
“환자의 MRI를 유출한 것은 매우 심각한 의료윤리(의료법) 침해 행위이다. 강용석 의원은 이같이 불법으로 유출된 자료를 공개해선 안 된다. 강용석 의원의 공개 행위는 의료윤리 훼손을 조장하는 짓이다.”
환자의 진료기록을 유출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는 의사면허가 날아가고 감옥에 가야 하는 일이다. 이는 의사로서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짓이다. 그런데 의사들이 왜 의료윤리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을까? 제보 MRI가, ‘박주신’이라는 레이블이 붙어 있을 뿐 실제로 박주신을 찍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보 MRI가 유령인물을 찍은 것이라면 유출되든 공개되든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없다. 포토샵으로 MRI 파일 조작해서 뿌린들? 혹은 ‘홍길동을 찍은 MRI’에 ‘박주신’이라는 이름표를 붙인들? 일반인의 사기행위일 뿐 의사들의 의료윤리 문제는 아니다. 의료윤리는, 의사나 테크니션이 진짜 의료데이터를 유출했을 때에만 존재한다.
2. MRI가 진짜이기 때문에, 의료윤리 문제가 되었다아, 그런데 거의 모든 의사들의 판단이 깨져나갔다. 제보 MRI는 진짜로 박주신을 찍은 것이었다. 이 사실이 밝혀진 2012년 2월 23일 15시 30분, 대한민국 의료윤리 전체가 저울에 올랐다. 다음과 같은 매우 곤혹스런 질문이 대한민국의 수십만 의사들에게 던져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사나운 정치판으로 환자의 의료데이터가 유출될 수 있지?”
“어떤 미친 의사 혹은 테크니션이 이런 짓을 하지?”
“박원순은 왜 자기 아이의 MRI 유출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지 않는 거지?”
“자생한방병원은 ‘MRI 유출이 없었다’고 주장할 뿐 왜 자체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고소고발 하지 않는 거지?”
“우리 의사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 행동을 취해야지?”
의사들은 지금 위와 같은 질문들에 정직하게 대답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저울에 올라선 것이다. 저울은 의사들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
“자, 당신 근수를 보여 봐! 당신은 과연 최소한의 직업윤리(professional ethics)라도 가지고 있는 존재야? 아니면 영혼과 정신이 썩어 문드러진 까닭에, 호시탐탐 의료범죄를 저질러서 한탕 하려는 양아치야? 당신의 직업윤리가 강간 당한 이 사건에 대해 새된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용기가 있어? 아니면 그냥 혼자만 꿍꿍 앓는 비겁자야?”
3. 1백억분의 1 확률로 축복받은 대한민국“고도 지식기반사회(knowledge-base society)가 순조롭게 유지될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문지식인의 직업윤리(professional ethics)이다.”
위대한 사상가 뒤르깽(Durkheim)의 핵심 명제이다. 뒤르깽은 ‘직업윤리’라는 개념을 정립한 사람이기도 하다. 의사, 변호사, 교수, 교사, 회계사, 관료, 엔지니어, 예술가와 같은 전문지식인들이 확고한 직업윤리를 가지고 있는 사회는 번영한다. 그렇지 못 한 사회는 쇠락한다. 세 끼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사회, 예를 들어 북한에서는 직업윤리가 이토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 않지만, 고도화되어 있는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직업윤리야말로 사회 운영의 핵심 원리이다.
이번 MRI 사건은 작게는 의료윤리, 크게는 직업윤리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혁명적 사건이다. 의료윤리는 직업윤리의 부분집합이기 때문이다.
박주신 MRI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수십만 명에 달하는 최고급 전문지식인 직업집단에게 한 방에, 명확하게 직업윤리 이슈를 제기한 사건이다. 그래서 ‘혁명적 사건’이라고 불러야 한다.
60년 전 지구에서 가장 비참했던 나라인 대한민국은 지금은, 지구에서 가장 번영하고 있는 지식기반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번도 전문지식인 직업집단 전체가 직업 윤리의 문제로 저울에 올라 선 적은 없다. 이번이 첫 사건이다. 이 저울을 잘 통과하면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원칙은 한 걸음 크게 전진할 수 있다. 그래서 ‘박주신 MRI’를 ‘백억분의 1 확률에 의한 축복’이라 불러야 한다.
왜 백억분의 1인가? 거의 모든 의사들이 ‘유령인물을 찍은 MRI’라고 판단했다가 2월 23일 15시 30분 한 순간에 ‘진짜 MRI’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 백억분의 1이다. 한번 간단히 살펴 보자.
(문) 20대 청년이 겉으로는 마른 체형인데, 목과 등에서 전화번호부가 잡힐(고도비만일) 확률은?
(답) 1천만분의 1.
(문) 20대 청년이 MRI 상으로는 중증 디스크 환자인데, 실제로는 전혀 치료받은 적이 없이 정상적 사회활동을 하는 무통증, 무증상 디스크인 경우는?
(답) 1천분의 1.
(문) 두 경우가 한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날 확률은?
(답) 10,000,000 x 1,000 = 10,000,000,000 1백억 분의 1.
‘제보된 MRI’가 박주신을 찍은 MRI가 아닐 확률은 99.99999999% (ten nine)이고, 진짜 MRI일 확률은 0.00000001% 였다. 이는 정말 희귀한 케이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의사들이 MRI 유출에 관한 의료윤리 이슈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MRI가 박주신을 찍은 것이 아니라면, 진짜 ‘박주신의 데이터와 프라이버시’는 침해된 바 없기 때문에 아무런 의료윤리 이슈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또한 이 때문에 수 천 명의 의사들이 “제보된 MRI는 박주신을 찍은 것이 아니다. 유령인물(제3의 미지의 인물)을 찍은 것이거나 뽀샵 질을 한 것이다. 떳떳하게 재검을 받아서 의혹을 해명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 15시 30분에 진짜 MRI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의사들은 찬물을 뒤집어 썼다. 고열에서 가열했다가 순식간에 찬물에 넣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공분이, 순식간에 직업윤리, 의료윤리에 관한 자괴감으로 바뀐 것이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열기와 냉기, 양지와 음지, 빛과 어둠, 진짜와 가짜—한 마디로 위대한 콘트라스트이다.
모든 콘트라스트는 위대하다. 삶의 역동성, 비극성을 또렷하게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치 강제소용소에서 죽은 인류학자 호이징가(Huizinga)의 가르침이다.
“가짜가 틀림없다”는 믿음을 “진짜가 맞다”라는 사실로 순간적으로 바꾼 콘트라스트는 무엇을 또렷하게 떠오르게 만들었나? 우리 사회의 직업윤리, 의료윤리 문제를 급부상시켰다.
우리사회가 명실상부한 선진 지식기반사회로 도약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선 지금, 그 핵심 원리인 직업윤리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것, 이것이 축복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백억분의 1짜리 축복이다. 포커 칠 때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를 잡을 확률이 0.000154% 이다. 대충 1백만 판을 쳐야 한 번 잡을 확률이다. 1백억분의 1 확률의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두 판 연속해서 한 번은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 다른 한번은 포카드를 잡고도 남는다는 소리이다.
4. 진짜여서 죄송합니다수십만 의사들을 엄혹한 저울로 올려 보낸 사람은 강용석이다. 강용석은 이제 의사들에게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답은 코미디언 이주일에게 있다.
이주일은 위대한 천재였다. 3류 나이트클럽 밤무대에서 출발한 그는 코메디의 역사를 다시 썼다. 대한민국 코메디의 역사는 이주일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그 전에는 구봉서, 배삼룡과 같은 약간 엽기적인 엉터리짓을 과장되게 연기하는 것이 코메디로 불렸다. 이주일은 판을 바꿨다. 전두환 군부 정권의 서슬이 시퍼랬던 시절, 그는 삶의 애환을 풍자했다. 그렇다. 풍자가 코메디가 되었던 것이다.
김지하였던가? 60년대 최고의 시인 김수영을 평하면서 “풍자냐 자살이냐?”라고 부르짖었던 천재가? 인간은 웃는 동물이다. 웃음 중의 으뜸은 풍자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풍자에서 나오는 웃음, 즉 코메디—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가장 숭고한 행위이다. 그래서 단테는 자신의 작품에 “신의 코메디”(The Divine Comedy)라는 제목을 붙였다. 근엄하고 머리나쁜 일본 지식인들이 이를 자못 엄숙하게 ‘신곡’이라 불렀을 뿐이다.
삶의 애환을 풍자해서 웃음을 만들어낸 이주일. 그래서 나온 카피가 이렇다.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풀어서 말하면?
“그래, 나 못 생겼어. 그래서 어쩌라구?”
진짜 MRI를 가짜라고 생각하고 공개했던 강용석은 이제 이주일을 넘어서는 카피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가짜가 지배하는 세상을 한 방에 보내버리는 카피다.
“진짜여서 죄송합니다.”
풀어서 말하면?
“그래, 나 진짜를 가짜인 줄 알고 당신에게 보여줬어. 가짜일 확률이 99.99999999%였어. 아, 글쎄 그런데 진짜래! 그래서 어쩌라구?”
5. 의사들이 나서야 한다이제 제보 MRI가 박주신을 촬영한 MRI란 게 드러났음에도 의사들이 가만 있는다면, 대한민국 의료계 전체가 그 영혼과 정신과 직업윤리가 뿌리째 썩었다는 소리가 된다. 대한민국 의사들 전체가 아무런 직업윤리(professional ethics)가 없는 ‘잠재적 현재적 의료범죄자들’이란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대한민국 의사들의 영혼, 정신, 직업윤리가 그토록 끔직하게 타락해 있다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이제 의사들이 들고 일어날 게다. 이렇게 외칠 게다.
“MRI 유출자를 철저히 수사해서 밝혀라!”
“만약 유출자가 의사라면 의료법에 의해 면허를 박탈하고 감옥에 보내라”“만약 유출처가 병원이라면, 그 병원의 모든 환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내 데이터가 유출됐을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엄청난 정식적 피해를 봤다’는 이유로 그 병원을 상대로 집단 소송해야 한다”
“만약 유출처가 병무청이라면, 국방장관, 병무청장, 고급 군인, 관료들이 줄줄이 옷을 벗어야 한다!”
6. 자생병원의 전문직이 유출했다필자는 처음부터, “MRI 유출이 윤리적인가? 이 자료를 사용한 강용석의 행위는 윤리적인가?”라는 문제를 주목해 왔다. 그래서 “유령인물을 촬영한 것이라면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없다. 그러나 박주신을 촬영한 것이라면 대한민국 최악의 의료윤리 침해 사건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동안 집요하게 MRI 유출 경로를 추적해왔다. 필자가 자생병원을 주목한 것은 MRI 공개 직후인 2월 14일에 “박씨의 MRI 사진을 제공한 적이 없다. 강 의원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발표한 후(이 조차 나중에 오보라고 주장했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7일 자생한방병원은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MRI(자기공명영상) 유출 의혹을 부인했다. 이 병원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환자의 동의 없이 의료기록을 유출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엄청나게 크고 유명한 병원이다. 그런 병원이라면, 자기 병원에서 찍은 데이터가 외부에 돌아다니면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팔걷고 나서서 그 진상을 밝히고 진료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데에 앞장서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MRI 자료는 한두 장이 아니라 백수십장이 파일형태로 통째로 유출되었다.
필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의문 1) 왜 자생병원은 스스로 팔 걷고 나서지 않을까? 2월 14일에 곧바로 이렇게 말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 않았나?
“우리 병원이 찍은 것이 맞다. 이 자료의 유출은 심각한 의료윤리 위반 사안이다. 이 자료의 공개는 심각한 개인프라이버시 침해이다. 유출 경위에 대한 내부 감사를 벌여서 그 결과를 수사기관에 제출하겠다. 또한 강용석의원을 개인프라이버시 침해로 고발하겠다.”
(의문 2) 영상자료 백 수십장이 통째로, 파일째 유출될 수 있는 곳은 자생병원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자생한방병원은 왜 아직까지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가?
모든 선후배와 지인들 인맥을 동원한 결과, 필자는 자생병원 해당분야의 전문직 종사자 K가 파일을 통째로 유출해서 강용석 의원에게 제공했다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는 자생병원에 권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얼른 내부 감사 자료를 공개하고 그 동안 자생병원을 아끼고 이용해 온 고객에게 사과하십시오. 대한민국 의사들 전체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십시오. 유출자를 고발하십시오. 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자생병원은 국민의 지탄과 외면 속에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7. MRI는 규정 위반 문제의 초점을 흐리게 만들었다박주신 4급 판정은, 규정위반 의혹으로 얼룩져 있다.
병무청은 이와 같은 규정위반 의혹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또한 행정 프로세스에 오류가 있었다면 마땅히 박주신을 재검해야 한다. 강용석은 원래 이 규정 위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었다. MRI 소동은 오히려 문제의 초점을 스스로 흐리게 만들었을 뿐이다. 지난 2월 14일, 강용석이 MRI를 공개하는 대신에 ‘병무청이 저지른 규정 위반’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지금쯤 병역비리에 관한 의혹이, 정확하게 그 전모를 드러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새옹지마이다. 세상은 돌고 굽이치고 꺾이면서 나아간다. MRI 소동이 없었다면 전문지식인의 직업윤리의 문제—이 경우, 의사들의 의료윤리 문제—가 이토록 명확하게 저울에 올라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 원래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의혹—병무청이 저지른 규정 위반을 한 번 정리해 보자.
첫째, 병무비리 전력이 있는 의사가 병사용진단서를 끊었다. 이는 규정 위반이다.
둘째, MRI 촬영 병원과 병사용 진단서 발급 병원이 다르다. 이 역시 규정 위반이다.
셋째, 디스크를 이유로 현역을 보충역으로 변경할 때, 근전도 검사를 하지 않았다. 이 역시 규정위반이다. 디스크가 튀어나온 것을 흔히 ‘디스크’라 부르지만 신경줄기를 건드리지 않으면 실제적으로는 디스크가 아니다. 이 경우 아무런 치료 기록이 없다. 통증/증상이 없으며 정상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이롱 디스크’라고 할 수 있다. 근전도 검사는 통증/증상이 있는지, ‘나이롱 디스크’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한 검사이다. 박주신의 경우에, 병원 치료 기록이 없으므로 당연히 근전도 검사를 더욱 더 엄격하게 했어야 되었다.넷째, 현역을 보충역으로 변경할 때 규정상 위원회를 개최하여야 하는데 심판관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 역시 규정 위반이다.
8. 저울 축제를 벌일 것인가 혹은 덫 속으로 기어들어갈 것인가?이제 대한민국의 의사들 전체가 저울에 올라섰다. 축제다. 장관이다. 한방, 양방 가릴 것 없이 수십만 명의 의사들이 스스로의 자긍심과 직업윤리에 대해 입장과 행동을 취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우리는 숨죽인 채 이들의 결단을 기다린다. 이들의 모범을 기다린다. 이들의 결단과 모범은 의사윤리를 넘어서 우리사회 전문지식인 전체가 가져야 마땅한 직업윤리를 우뚝 세우게 될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축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의사들이 혼자서 꿍꿍 앓으면서 아무런 결단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아, 그들은 덫 속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들의 꽁무니를 따라 우리 사회 전체가 덫으로 기어들어가게 된다. 환자 MRI 파일이 통째로 유출된 사건에 대해 수십만 명의 의사들이 꿀먹은 벙어리인 사회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내일이 없다.
“모두를 용서하겠다”는 박원순의 말을 듣고 필자는 소름이 끼쳤다. 지금이야말로 MRI 유출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를 촉구하고 고발을 해야 하는 시점인데! 지금이야말로 병원과 의사에게 의료윤리 위반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시점인데! 그의 말은 필자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필자의 착각, 환청이기를 바랄 뿐이다.)
“오, 참으로 지능적인 덫이여! 나는 덫에 걸린 그대들을 모두 용서하겠다.”
한바탕 신나는 저울 축제를 벌일 것인가? 아니면 사악한 덫 속으로 기어들어갈 것인가? 선택은 대한민국 의사들에게 달려있다.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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