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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이정희 민통-통진 양당연대 후보가 서울 관악을 국회의원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정희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면서 “모두 내 책임”이라고 말했지만, 여론은 다른 문제로 발칵 뒤집혔다.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자생적 주체사상파 세력’의 실체 때문이다.
‘경기동부연합’ 실세들, 학연․이념 등으로 뭉쳐
이정희 후보의 여론조사 조작사건이 빌미가 되어 여론의 관심을 받게 된 ‘경기동부연합’은 그동안 종북 좌파 정치운동권에서는 ‘금기어’였다고 한다. ‘경기동부연합’은 좌파운동권 단체 ‘전국연합’ 소속이었던 지역조직들, 즉 인천연합, 광주․전남연합, 울산연합과 함께 통합진보당내에서 거대 계파를 이루고 있다. ‘경기동부연합’은 광주․전남연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면 ‘경기동부연합’은 통합진보당 내 주체사상파(주사파=NL, 자칭 ‘자주파’) 계열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조직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경기동부연합’의 ‘최대주주’로 이용대 前민노당 정책위원장을 꼽는다. 어떤 이는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정형주 경기도당 위원장을 꼽기도 한다. 그 뒤를 이은 주사파의 실력자로는 ‘울산연합’의 최대주주라는 김창현 통합진보당 울산 북구 후보가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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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동부연합’ 소속으로 알려진 이로는 이정희 후보 외에도 비례대표 2번과 3번을 받은 이석기 ‘민중의 소리’ 前대표, 청년비례대표로 뽑힌 김재연 前외국어대학 총학생회장, 이재명 성남시장인수위 대변인을 지낸 윤원석 씨 등이 꼽힌다. 이들 모두 한국외국어대학 동문이다. 특이하게도 ‘경기동부연합’에는 외국어대학 출신이 많다고 한다.
23일자 ‘조선닷컴’ 보도에 따르면 통합진보당 내에 ‘경기동부연합’으로 분류되는 사람의 수는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경기동부연합’은 1990년대 ‘전국연합’ 시절부터 공장 등이 많은 경기 성남시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용인시 등 인근 도시도 이들의 ‘세력권’이라고 한다.
이들은 2000년 이후 지금까지 민노총과 산별 노조, 전농 등 거대 좌파 운동권 조직에 들어간 뒤 해당 단체의 사무처를 장악하고, 마지막에 민노당을 장악했다고 한다. 2008년에는 자신들의 ‘얼굴’로 이정희 대표를 내세웠고, 정치권 진출을 위해 여론조사회사까지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경기동부연합의 모체 ‘전국연합’이란
경기동부연합은 처음에는 ‘전국연합’이라는 조직의 하부 구성원들끼리 모여 있는 지역조직에서 시작한 것이다. ‘전국연합’의 정식 명칭은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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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1일 창립식에서 ‘전국연합’은
① 우리는 민중생존권을 수호하고 사회 전 영역의 민주개혁을 실현한다.
② 우리는 반독재 민주역량을 총집결시켜 진정한 민주정부를 수립한다.
③ 우리는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민족자주권을 쟁취한다.
④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적 민족통일을 이룩한다.
⑤ 우리는 민족민주세력의 통일단결과 국내외 민주세력과의 연대를 촉구한다.
등을 내새운 강령을 만들었다.그들은 또 국가보안법 철폐, 한반도 비핵지대화, 안기부(국정원)·기무사 해체를 ‘당면 과제’로 설정하고 활동했다.
이들은 결성 선언문에서 “전국연합은 온 힘을 다하여 민중생존권을 수호하고 사회 전영역의 민주개혁을 실현하며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민족 자주권을 쟁취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적 민족통일을 이룩해 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전국연합’은 1989년 1월 만들었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활동이 흐지부지되면서 만든 연합단체다. 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전농’으로 잘 알려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한총련의 전신) 등 14개 운동권 단체와 서울·부산·광주 등 13개 지역 운동권 조직이 모여 만들었다.
‘전국연합’은 2006년 한국진보연대가 출범한 뒤 2008년 2월 공식 해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전국연합’ 이름만 사라진 것이지 지역 조직이나 운동권 단체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경기동부연합’ 또한 지역 조직을 기반으로 했기에 그대로 남았다.
PD계열이 정당 만들자 파고들어 장악…‘전국연합’은 애벌레 파먹는 나나니벌?
‘경기동부연합’은 그 태생부터 NL이라고 알려져 있다. 흔히들 ‘주사파’라고 말하는 NL계열의 시작은 1980년대 초반이지만 거대 세력이 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중반부터다.
1980년대 중반 운동권 내에서는 CNP 논쟁(일명 ‘민주변혁논쟁’)이 벌어졌다. CD, ND, PD로 불리는 ‘노선’ 간의 주도권 다툼이었다. 이후 CD 계열은 잠깐 정치와 거리를 두고 ‘시민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지만, ND와 PD는 계속 ‘혁명지향적 운동권’으로 남았다. 이후 ND 계열 학생들은 NL(정확하게는 NLPDR=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노선. 본질은 결국 北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노선)로 바뀐다. PD는 여러 분파를 거치면서 노동운동과 국제사회주의 운동에 동참했다.
PD계열은 1990년대 초중반 동구권의 붕괴와 몰락을 겪으면서 일부 세력이 이탈하기도 했지만 노동운동 등을 통해 민노총을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1997년 만든 ‘국민승리21’을 보강해 민노당을 창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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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이 공식출범한 2000년에는 당내 주도세력이 PD계열(일명 국민파)이었다. 하지만 NL계열(일명 자주파)이 가만 두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 총선 당시 ‘울산연합’은 울산 북구지역에 출마할 내부 경선에서 PD계열인 노동운동권 후보가 우세를 보이자 기습적으로 자기네 편인 최용규 후보를 후보로 밀어 출마시켰다고 한다. 최 후보는 결국 총선에서 패배했다.
2001년에는 ‘인천연합’이 민노당 용산지구당을 장악하기 위해 당원 숫자를 모두 파악한 뒤 위장전입을 시작했다. 당시 내부자들의 말에 따르면 마치 ‘거마대학생’처럼 한 집에 수십 명이 전입신고를 한 채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민노당 내부에서도 큰 문제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2001년 9월 22일 충북 보람원수련원에서 열린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10년 내에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을 건설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자”고 결의했던, ‘군자산의 약속(일명 9월 테제)’을 철저히 따르는 이들이었기에 당내 여론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2002년 대선 때는 공동선거대책본부에서 활동하던 서울연합, 한총련 소속 일부 NL계열 인사들이 자기네 후보가 아닌 노무현 후보를 지지해 물의를 빚었고, 2003년 노무현 정권 때는 민노당 고문인 강태훈 씨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공작금을 받고 활동하다 붙잡혔다. 이때 NL계열은 강 씨 징계에 반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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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연합’ 출신 인사들이 민노당 내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방법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2004년 ‘1인 7표제 선거’를 실시한 것이다. 실제로는 1인 12표제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NL계열인 ‘전국연합’ 출신들이 주도권을 쥐게 됐다고 한다.
이런 ‘전국연합’ 출신 중 가장 강한 세력을 자랑한다는 ‘경기동부연합’의 행태 또한 상식 밖이다. 경기지부 선거파행 등은 점잖은 편이었다. 2004년 민노당과 민노총, 전농의 대외협력부서의 수련회 자리에서 경기동부연합 소속 인사 2명이 여성당직자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맥주병을 깨 협박하고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폭행한 2명은 4년 자격정지 조치만 받았다고.
경기동부연합은 또한 2005년에는 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의 편집장을 해고한 뒤 자기네 사람을 편집위원장, 기관지 위원장 등에 앉혀 당 기관지를 ‘주사파 잡지’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전국연합’ 출신의 각 지역 ‘연합’ 세력들은 결국 2006년 최기영 당 사무부총장이 당원 300여 명의 명부를 북한에 넘긴,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됐다. 2006년 12월 검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일심회’ 조직원들은 북한을 ‘조국’으로 부르고, 우리나라를 ‘적 후방’이라고 부르며 여러차례 충성맹세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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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일이 벌어지자 민노당 일반 당원들은 최 부총장의 제명 및 출당을 요구했으나 민노당 지도부는 그 요구를 무시했다고 한다. 민노당의 주도권은 이미 ‘연합’에 넘어간 뒤였다. 이때 국제사회주의자 조직이라는 ‘다함께’('고대해적녀'가 이곳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는 최기영 부총장을 철저히 감싸 함께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진중권조차도 ‘종북주의’라 부르는 ‘연합’들. ‘본사’는 어디?
이런 ‘연합’들의 횡포 때문에 좌파 진영 내부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높다. ‘자칭 자유주의자’라는 진중권 동양대 교수조차도 이들을 ‘종북주의자’라고 비난한다.
진중권 교수는 다음과 같은 ‘연합’ 세력들의 글을 소개하며 ‘종북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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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성장에 겁을 집어 먹은 미국은 지난 2002년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을 와해 말살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미국은 문국현과 같은 사이비진보세력을 내세워 민주노동당의 성장을 가로막으려 하였으며 대선 이후에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을 와해, 말살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신지배전략을 바로보지 못하고 조승수, 김형탁, 한석호, 진중권 등 진보진영 내에 반북세력, 사이비진보세력들은 시대착오적인 종북주의 논쟁, 진보판 마녀사냥인 소위 일심회 출당 요구, 진보운동을 내부로부터 와해하는 분당놀음을 벌여 놓고 진보진영의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
진 교수는 “이것은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이자 총선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하는 분이 공식적으로 내놓은 성명이다. 이런 시각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은 그쪽 사람들이 꽤나 좋아하는 ‘통일학 연구소’의 한호석이라는 분의 견해”라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이후 이어지는 글을 통해 “물론 자주파 내에도 다양한 분파가 있다. 다만 나는 위로 보고할 ‘본사’가 없어서, 누구처럼 자주파들의 성향을 11개로 섬세하게 분류할 동기를 갖기 못했다”고 설명해 ‘자주파’라는 ‘연합’ 출신 주사파들끼리도 다양한 세력다툼이 있음을 암시했다.
진 교수는 또 다른 ‘자주파’인 ‘전국회의’의 ‘글’을 인용해 이들 ‘연합’ 출신 주사파들이 확실한 ‘종북주의자’임을 그대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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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뉴스에 올라오는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에 관한 글을 읽어보면,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투쟁 할 당시의 행적이 나오는데, 당시 반일 무장부대 중에서는 민족주의자이면서 골수 반공주의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은 김일성 주석이 이끄는 항일 무장 대오를 습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다.”
진 교수는 다음과 같은 글로 ‘자칭 자주파’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농담이 있다.
‘주사파 3단 논법. 1. 국가보안법은 악법이다. 2. 악법에 의해 처벌받는 사람은 선량하다. 3. 그러므로 일심회 사건에 의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주사파도 선량하다.’
‘노빠 3단 논법 1. 조중동은 못된 신문이다. 2. 못된 신문에 의해 비판받는 것은 오히려 잘 했다는 증거다. 3. 그러므로 조중동에게 비판받는 노무현은 잘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삼단논법이 논리적 오류논증이라는 것을 알 게다.”이 같은 ‘무수한 말’들이 인터넷 곳곳에 흘러 넘치고 있음에도 지난 23일 사퇴한 이정희 후보는 “경기동부연합이 뭔지 잘 모르겠다”며 그 연관성을 부정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그 말은 소녀시대가 이수만을 모른다는 말 같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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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과거 민노당원이었던 네티즌들의 ‘주장’과 ‘폭로’가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면서 이정희를 대신해 새로운 후보로 등장한 이상규 씨 또한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정희 후보가 ‘얼굴’이라면 이상규 후보는 ‘몸통’이다”라며 이들의 비밀스럽고 복잡한 조직관계를 전했다.
이정희 “경기동부연합이 뭔지 모르겠다”…네티즌 “소녀시대가 이수만 모른다는 말”
한 네티즌은 개인적 경험이라며 “예전에 어떤 안보 관련 모임에 참석하게 됐는데 한 참석자가 공안당국이 경기동부연합과 간첩단 ‘왕재산’, ‘일심회’ 등의 연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주장에 다른 네티즌들은 “지금까지 공안당국이 조사한 바는 ‘실선’으로 나타나지 않고 ‘점선’에 불과해, 이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를 확보하고 배후를 캐기 위해 ‘일망타진’하지 않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네티즌들은 이정희 후보의 사퇴를 문재인 후보의 ‘공로’로 '뻥튀기' 보도를 하며, ‘경기동부연합’과 ‘전국연합’, 그리고 주사파 등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는 좌파 언론에 대해서도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