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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왜곡/ 침략의 뿌리
임진왜란은 '실지회복' 복수전이다?
“그래서요? 옛날 일본천황이 백제인이든 가야인이든 그게 지금 무슨 소용...?”
‘역사 올레길’(뉴데일리 발행「시장경제신문」 연재중)을 읽는 독자 한분이 필자에게 이런 불만을 전해왔다. 망한 집안 자식이 조상 기와집을 들먹이듯 꼴사납다는 말이다. 일단 옳은 지적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왕조까지 ‘야만 왜X’으로 무시해왔던 일본, 그들의 피와 역사가 누구 것이든 일본은 벌써부터 선진국 일본이다. 더구나 우리가 집안싸움으로 허송한 세월에 일본은 자기혁명을 거쳐 보란 듯이 근대화에 성공했고, 우리는 36년이나 그들의 식민노예로 살아야 했다. ‘명치유신’이후 서양 대국 흉내로 강해지자 식민지 쟁탈도 따라 했던가. 그렇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일본의 조선왕국 식민화는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주의와 그 내면이 좀 다르다.
자원 영토와 시장 확보? 그 보다는 ‘복수의 DNA'가 더 뿌리 깊었던 것은 아닐까.
일제시대 떠들던 ‘내선동조론(內鮮同祖論)’이나 ‘내선일체(內鮮一體)’ 구호에는 1200여년간 쌓이고 쌓인 역사적 원한이 배어있다.(內:일본=내지(內地), 조선=변방, 일본 우대명칭)
“조선과 일본의 조상은 같다. 한 몸이다.” “기마민족국가 일본은 조선의 형이다. 선진그룹이 열도까지 진출해 일본을 세웠고 후진그룹이 조선반도에 남아 분열을 일삼았다.” 이런 왜곡 선전이 없다. 식민지배때나 패전후에나 끈질긴 일본우위 선전. 신라보다 천년 늦게 통일국가를 이룬 일본은 입헌군주국이 되자 황국사관(皇國史觀)을 만들어내 자국민과 세계인들에게 심어온 이미지, 한국이 아무리 잘 나도 일본의 하위국이 되어버린다. -
사실 일본의 역사조작은 진작 시작되었다. AD660년 백제 멸망, 그 10년후 ‘일본’ 국호제정, 30년후에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잇따라 편찬한다. 이 역사책들은 망명 백제왕실이 만들었다. 열도의 백제 ‘구다라’와 합쳐 ‘일본’으로 변신한 백제연합은 역사도 합쳐버렸다. 한반도 백제 역사를 마치 일본열도에서 일어난 역사처럼 꾸몄다. 이때, 신생 일본은 먼 옛날부터 한반도 삼국보다 월등한 ‘종주국’이었던 것처럼 환골탈태 시킨다. 신처럼 모시던 본국(本國)백제는 열도의 분국(分國)백제와 뒤바꿔 ‘신하국’으로 전락된다. 칠지도(七支刀)를 비롯한 천황의 신물(神物)들, 불상들과 갖가지 유물들은 본국의 ‘하사품’에서 ‘조공품’으로 둔갑한다.
헤아릴 수 없는 왜곡-조작이 대대로 이어졌다. 특히 명치유신 정권은 “천황국의 만세일계(萬世一系)”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광개토대왕 비문이나 동거울등 유물의 문자조차 깎아내고 가공의 천황들을 줄줄이 엮어 빈자리에 끼워 넣었으며 가짜 천황릉도 축조했다.
일본과 한반도의 관련 지명과 인명을 고치고, 급기야 전조선인의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하기에 이른다. 옛부터 4글자 성명이 통일신라가 당나라 식을 따라 3글자(성을 한글자로 통일) 되었으니 이제 일본식 옛날 성명으로 원상복귀하자고, 그러면서 갖다 붙인 말이 ‘내선동조’론이다.
한반도에서 쫓겨난 가야-백제세력, 그리고 고구려-신라 유민 집단이 결합된 열도는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한(恨)이 깊어진 탓일까. 패배감-상실감-열등감-증오-보복욕구등이 혼재된 집단 컴플렉스가 찾아낸 탈출구, 신라보다 우위에 선 고대국가의 꿈-이를 조작하려는 욕심이 제멋대로 가공 윤색한 가짜 역사를 만들었다. 그것을 익히면서 천년세월이 지나자 가짜가 진짜로 굳어졌다.
풍신수길(豊臣秀吉: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예를 보자.
임진왜란때 조선침략을 위해 각지 영주들을 동원하면서 했다는 말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의 대업을 우리가 완수하자!” 천년전의 신화가 전쟁을 일으킨다. 도대체 ‘삼한정벌(三韓征伐)’이란 무엇인가. 일본서기에 보면, 왜왕 중애(仲哀)의 왕비 신공(神功)은 남편이 죽자 신라를 공격하러 북구주(北九州를 떠난다.
요약하면 “배가 뜨자 풍신이 바람을 일으키고 해신이 파도를 일으켰으며 물고기들이 떠올라 배를 떠받치니 순식간에 신라 성문에 이르렀다. 신라왕은 기겁하여 성문을 나와 조공과 충성을 맹서했다. 이 소문을 들은 고구려 왕과 백제 왕이 달려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영원히 서번(西藩)이 될 것을 서약했다. 이에 신공은 신라 땅에 내관가(內官家)를 정하고 귀환했다.” AD300년대의 일이다. 100살을 살았다는 신공의 이름은 기장족희(氣長足姬), 부산 기장지역에서 건너갔던 ‘세오녀’의 일본판 각색드라마라고 한다. 문제는 이 ‘내관가’ 설치를 <임나일본부>의 근거로 삼아 일본의 고대 남한 지배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일본은커녕 ‘왜’로 불리던 시절의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다. 가야나 백제의 유민 관리소라면 몰라도.
임진왜란을 일으킨 국민적 심리전 동인 ‘삼한정벌’설은 300년후 ‘정한론(征韓論)’의 불꽃이 되어 한일합방 때 또 한번 화력을 발휘한다. 침략전쟁은 실지회복(失地回復)이란 성전(聖戰)으로 오도되어 일본식 식민지배를 정당화 해온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일본 교과서 왜곡파동이 해마다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독도나 정신대 문제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그 사이 일본은 ‘삼한정벌’ 이야기를 명치 때부터 역사교과서에 화려한 해전도와 함께 실어놓고 어린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이 순간에도 그것은 일본국민의 '조선지배' 의식화 교재로 쓰인다. 요컨대 일본의 잠재적 소유욕의 뿌리는 계속 자라나고 있다는 말이다. 거꾸로 된 한일 고대사(古代史)의 진실을 복원해야할 이유, 이것 말고도 많다. 더불어 혹시라도 북한 핵의 불장난이 잠자는 일본의 침략근성에 불지르는 건 아닐는지.
인보길 /뉴데일리 발행인, 이승만 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