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전 주지 명진 “갔지만 계율 지켰다”..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참회정진"
  • 최근 유명 승려들이 호텔방에서 도박판을 벌인데 이어 룸살롱을 드나들며 성매수까지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 최근 유명 승려들이 호텔방에서 도박판을 벌인데 이어 룸살롱을 드나들며 성매수까지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이번엔 승려들의 ‘룸살롱 성매수’ 파문이다.

    조계종 고위직 승려들의 억대 도박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스님이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성호스님은 15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명진스님과 자승스님은 과거 신밧드 강남 풀코스 룸살롱에 가서 성매수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것을 가지고 조계사 앞에서 3달 넘게 1인 시위를 벌인 적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명진스님은 자기만큼은 (성매수를) 한 적이 없으며 좀 빼달라고 해서 빼드렸는데 자승 스님은 한 마디가 없었다”고 했다.

    앞서 명진스님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승스님과 룸살롱에 간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중으로서 계율은 지켰다”며 성매수 사실은 부인했다

    성호스님은 승려들 사이에 ‘집단 폭행’이 일상화 돼 있는 현실도 언급했다. 성호스님은 “1인 시위를 할 때 다른 승려들이나 조계사 신도들은 저를 진짜 격려해줬지만, 진짜 격려해줘야 할 토진스님은 총무원 스님들과 함께 저를 집단 폭행했다”고 말했다.

    또 “과거 자승스님이 원장에 출마하기 전 처자식을 숨겨놓은 은처승이고 승랍을 3년 동안 도둑질한 도둑놈이라는 문건이 전국적으로 배포가 됐다. 뒤에서 제가 만들고 뿌렸다고 해서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도박 파문에 대해선 “외국에 나가서 필리핀, 마카오,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승복을 갈아입고 도박을 한다. 외국 나가서 포커로 몇 백억 잃은 스님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15일부터 100일 동안 108배 참회정진을 시작했다.

  • 지난 1월, 성호 스님이 청와대 앞에서 '명빈, 자승 스님 물러나라'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성호 스님
    ▲ 지난 1월, 성호 스님이 청와대 앞에서 '명빈, 자승 스님 물러나라'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성호 스님

    ◆ 성호스님은 누구? = 성호스님(전 금당사 주지)은 "명진스님과 자승스님 등이 룸살롱에 간 적이 있어 '산문출송'하고 구속수사하라"며 지난해 11월부터 1인시위를 해왔다.

    '산문출송'이란 승려들이 큰 죄를 지었을 경우 승권(僧權)을 빼앗고 절에서 내쫓는 제도다. 성호스님은 "룸살롱에 간 것은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징계도 필요없이 내쫓아야만 하는 문제"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룸살롱 사건'은 2001년 강남 신사동에 있는 룸살롱에서 나오는 명진-자승스님 등을 우연히 본 신도가 인터넷에 이 사실을 올리면서 기사화 됐던 사건이다.

    앞서 정대스님은 "룸살롱 출입은 사실이다. 거기 핵심이 호법부장 등 조계종을 쥐락펴락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못 건드린다"고 한 바 있다. 또한 명진스님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룸살롱에 갔던 것은 맞지만 중으로서 계율은 지켰다"며 '룸살롱 출입'이 사실임을 밝혔었다.

    시위 과정에서 성호스님은 당시 조계사 주지 토진스님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토진 스님은 이번 도박사건에도 연루됐다.

    성호스님은 "조계사 관계자가 자꾸 시위를 방해한다"며 지난해 11월 조계사 일주문에서 청와대 입구로 시위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조계사 종무실장은 '이 사람은 스님이 아니다'란 피켓을 목에 걸고 성호스님을 따라다니며 맞대응을 했었다.

    성호스님은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1인시위를 수차례 방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호스님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토진스님(조계사 주지)과 여러 스님으로부터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호스님은 "조계사 종무실장 등 여러 사람들이 나를 밀치고 에워싸며 차도까지 나를 밀쳐 교통사고의 위험스런 상황까지 만들었다"며 또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조계사 이세용 종무실장은 "폭행한 적이 없다. 저 분은 스님이 아니고 원래 저런 분이라 신경쓸 필요가 없다"며 "조계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시위하라고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성호스님이 토진스님으로부터 폭행당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당시 토진 스님은 지방 행사 때문에 지역에 내려가 계셨다"며 "저 분은 병원에 입원했다가 아무 이상이 없어 병원에서 쫓겨났다"며 성호스님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호스님은 "토진스님의 얼굴을 내가 모르겠느냐. 목격자도 있고 CCTV에도 분명히 찍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폭행을 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도 저렇게 나를 매도하고 있다”며 진단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 경찰은 목격자의 진술과 조계사 CCTV를 확보한 상태이며 "추후 조사를 통해 사건의 경위를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성호스님은 1958년생으로 1976년 금산사로 출가, 송월주 스님의 총무원장 시절 사업국장 등을 지냈다. 2009년 총무원장 선거때 현재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과 관련된 괴문서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승적박탈이 됐지만 법원에서 제적 징계의 효력 정지 판결을 받은 바 있다.

  • 조계사 앞에서 성호 스님과 조계사 종무실장이 함께 서있다.
    ▲ 조계사 앞에서 성호 스님과 조계사 종무실장이 함께 서있다.

    ◆ 명진 스님은 누구? = 

    명진 스님은 2006년 11월 8일 23대 봉은사 주지로 임명됐다 11월 떠났다. 당시 봉은사는 신도만 25만명에 달하는 거대 사찰이고 재정 규모도 130억 원에 달했다.

    당시 명진 스님은 직영사찰 전환에 반발하며 정치권 외압설까지 제기했지만 '거짓말'로 드러나기도 했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은 중앙종회가 총무원의 종무 집행에 대해 합법적 절차를 통해 승인해 의결한 것"이라고 밝혔다.

    명진 스님은 당시 시줏돈을 천문학적으로 번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은 "마음대로 공금을 1억씩 쾌척해도 탈이 없는 것인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용산 참사를 일으킨 노동자들에게 1억원정을 기부하고, 간첩의 전과가 있는 자들이 다수 모였다는 ‘진실의 힘’ 등 같은 단체에 이사장으로 맹활약을 했다.

    특히 조계종 산하 '민족공동체추진본부(민추본)' 본부장 및 좌파 잡지 <민족21>의 발행인을 맡기도 했다.

    <민족21>은 기사교류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통일신보>,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기사를 직접 게재하고, 평양당국자 주장을 비판 없이 인용해 김정일 정권을 미화해왔다. 특히 과거 노무현 정권 당시 <민족21>의 북한체제에 대한 묘사는 ‘선군(先軍)정치’를 옹호하는 수준에 이른다.

    "선군정치는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고 인민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이다...(북한이 말하는 핵무기보다 더 강한 것은) 바로 군민일치, 일심단결의 선군정치를 의미한다."
    -2005년 10월호 ‘선군정치 없었다면 이라크 꼴 났을 것’이라는 기사 中-

    <민족21>의 북한에 대한 표현은 비판이 없다보니 일종의 선전에 가깝다.

    "북은 미국과 밖의 영향이 밀려들 때 그들이 지켜온 아름다운 사랑공동체가 망가지지는 않겠는지 염려할 정도로 아름답고 건강한 사람들의 사회였다. 나는 그분들이 갖고 있는 그 맑고 깨끗한 ‘순수함(purity)’을 지킬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06년 5월호 평양체류 외국인 다니엘과의 인터뷰 中-

    "자신들(북한노동자들)이 그곳의 노동자라는 사실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평양산원’을 다녀온 여성 참가자들은 여성복지에 대한 부분은 북이 오히려 더 잘되어 있다면서 부러워하더군요."
    -2006년 6월호 '북의 노동절은 축제. 투쟁하며 보내야하는 남과는 정반대'라는 기고문 中-

  •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62) 스님이 2월13일 광주 서구 치평동 CMB 강당에서 노무현재단의 초청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62) 스님이 2월13일 광주 서구 치평동 CMB 강당에서 노무현재단의 초청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추본은 6·15선언 직전인 2000년 6월8일 조계종 내에 설치됐다.

    이 단체는 표면적으론 ‘북한동포돕기를 위한 인도적 지원 사업’ 등을 목표로 한다. 물론 상대는 북한주민이 아닌 조불련과 같은 조선로동당 대남조직이다. 

    민추본은 2009년 12월15일 조불련에 쌀 300가마(40kg)와 의약품(감기약, 구충제) 115박스 등 총 5천만 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했다. 강냉이(옥수수)도 배급되지 않는 북한에서 쌀과 의약품은 북한의 군-당이 독식하며 남는 것은 몇 배 높은 가격으로 중국과 장마당에 내다 판다.

    민추본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고, 북한정권은 물론 반국가단체인 재일조총련과도 회합해왔다.

    윤이상 평화재단 창립 기념음악회, 범민련 후원회, 민화협 후원의 밤, 참여연대 후원의 밤, 미군주둔 60년 남북해외 반미(反美)사진전 등 좌파 관련 연대단체 행사에 이들 좌파 승려들이 참석하고 후원금 전달하는 등 '물주 노릇'도 톡톡히 해왔다.

    민추본이 연대단체로 언급한 범민련은 북한정권의 대남적화노선을 실천해 온 이적단체이며, 민화협은 대남선전기구다. 반미(反美)사진전에 후원금을 전달했다는 행적 역시 민추본의 노선을 추정케 해준다.

    1995년 사망한 윤이상은 독일 유학생 오길남 신숙자 씨 내외가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돼 월북하는 과정에 개입한 통영 출신의 '종북 음악가'. 이들 좌파 승려들은 윤이상의 꾐에 빠진 '통영의 딸' 문제에는 철저히 입을 닫고 외면하고 있다.

    아울러 민추본은 ‘만경봉-92호’에 대해 "인도주의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고 격찬한 바 있다. 하지만 ‘만경봉-92호’는 분단 이후 9만3천여 명의 재일교포를 북송시킨 ‘만경봉호‘ 등의 후신이다.

    재일교포들은 환상을 품고 북한에 왔지만, 억류된 인질 신세로 전락했다.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에 살던 습관으로 북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불만세력으로 취급받았고, 대부분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

    명진 스님은 지난해 12월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말글빛냄 펴냄)를 통해 정부 정책과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는 책 부제를 '서이독경(鼠耳讀經·쥐 귀에 경 읽기)'이라고 붙이기도 했다.

    1장 '허언필망(虛言必亡)'에서 '대통령의 말, 서푼짜리 동전만도 못하다', '몰염치, 파렴치, 후안무치의 삼치가 MB정신' 등 노골적인 용어를 동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을 향해 '쥐구멍에 물이나 들어가라' '뼛속까지 친미(親美)라니 국산 쥐는 아닌 듯' '차라리 청와교회라고 부르자'고 저급한 독설을 퍼부었다.

    5장 '최악의 대통령'에서는 '전두환보다 나쁜 최악의 대통령' '고소영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국민 편가르기' '알고 보니 전과자에 사기꾼' '투잡 뛰는 MB, 부동산 투기로 나서라' '도곡동, 내곡동 찍고 통곡동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